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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전문] '2007년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대응'

고 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2007년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대응
-고 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1. 정치권은 왜 요동치는가?

먼저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도대체 한국정치는 왜 이렇게 요동치는 것일까? 식민지배, 전쟁, 독재, 경제 환란과 같은 거대한 외적 격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포연 가득한 가두의 운동정치도 사라진 이 마당에 한국정치가 왜 이렇게 요동치는가 말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누구도 상상 못한 일들이 펼쳐졌다. 먼저 2002년에는 민주세력의 재집권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거대한 대중의 열망이 선거과정에 투입되면서 극적인 민주세력의 재집권이 이루어졌다. 뒤이어 47석짜리 초미니 여당이 탄핵사태를 계기로 과반수 정당으로 발돋움하는가하면 해방 후 처음으로 좌파진보정당이 10명씩이나 국회에 진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속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거의 죽음이라 일컬을만한 절박한 상황에 몰렸다가 겨우 기사회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후에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민주개혁진영에 거대한 위기가 닥쳐왔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그 지지도가 바닥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선거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싹쓸이를 당하고 식물이나 진배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민주노동당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동운동의 쇠락과 함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로서는 차기 총선을 기약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하였다.

특히나 열린우리당의 부상과 몰락은 참으로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열린우리당의 존립의 토대를 아예 없애버릴 만큼 중대한 귀책사유였는가’ 생각해 봤을 때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도대체 무엇이 대중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감정을 분출하게 만든 것일까? 그것이 흔히 말하는 경제침체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양극화 때문일까? 그것 때문이라면 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가?

필자가 여기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어떤 답을 도출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명료한 답이 도출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추정키로 분명해 보이는 것은 지금 정치권의 요동은 단순한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치시장의 구조 자체에 모종의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물음표를 가지고 이 글은 ‘오늘날 한국정치의 구조와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내년 대선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진보세력은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가’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현재 한국정치가 새로운 전환점을 경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환점의 특징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의 괴멸로 인해 한국정치에서 “한 쪽의 균형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균형축이 무너진 자리는 단순한 정치적 이합집산을 통해서 복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균형축의 붕괴는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판도 전체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괴멸은 열린우리당 내지 서부권 정당벨트의 재편을 넘어 정치권 전체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초래할 것이다. 그런 과정은 정치세력들 간의 갈등․경쟁․협력의 상호작용을 매개로 한국정치의 일정한 모습을 만들어낼 것이다.

2. 정치지형의 변화 동인과 변화 트렌드

사실 정세 변화에 대한 해석은 대단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정세라는 것이 워낙 수많은 변수들이 교차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떤 계량화된 공식 속에 집어넣어 돌린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세란 끊임없는 분석과 예측, 정치적 실천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피드백과 수정을 통해 정치적 흐름의 어떤 구조를 찾아내서 정치적 주체의 노선과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기 위한 데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국정치의 전개를 규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동인(動因)들과 그 동인들이 엮어내는 핵심적인 트렌드를 제시하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현재의 한국정치의 흐름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개념 사용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라는 두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흐름의 구조를 이해한다는 목적에서 보면 ‘중기지속성’으로서 현재까지 나온 개념들 중에서는 이 개념이 그래도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 97년 체제와 복선적 정치구조

‘87년 체제’는 87년 이전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간 대결구도의 연장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양대 세력 간의 불균형한 힘 관계가 균형적인 관계로 전화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 동안 이 체제 하에서는 사회운동에 의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꾸준히 일어났으며, ‘민주주의’와 ‘개혁’의 사회담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발전국가체제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요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87년 체제의 동력을 상당한 정도로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97년 체제’는 87년 체제 속에서 성장해 오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요소가 1997년 IMF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지구화된 경제체제’로의 편입이 완성되었으며, 내부적으로도 신자유주의 경제모델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의 재생산구조에 중대한 변형이 일어나고 대중의 가치관에도 일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담론지형에도 중요한 변동을 초래하였는데, ‘시장’, ‘기업’, ‘경쟁’, ‘세계화’, ‘규제완화’, ‘유연화’와 같은 담론들이 사회전반의 흐름을 규정하는 헤게모니적 지위를 획득해 나갔다.

97년 체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탈산업화와 지식기반사회의 출현이다. 세계화의 진행과 궤를 같이하여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의 경제적․계급적 구조의 발전이 완만해지고 지식·정보·서비스산업이 사회의 주력산업으로서의 비중을 점차 확장해 왔다. 그에 따라 인구학적 구성에도 큰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산업화시대의 사회적 범주로 구분하기 힘든 새로운 인구학적 집단이 사회의 새로운 주력계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새로운 가치성향과 시민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집단들이 한국정치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은 ‘87년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진보의 확장을 추동해 온 정치지형을 상당부분 무력화시켰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개혁세력들은 이 같은 변화를 포착해 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87년 체제의 수준에서 계속 답보상태로 머물러왔고, 새로운 대안적 미래비전이 제시되지 못하였다. 민주개혁세력의 중심축인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형용모순적 조어를 내걸고 좌→우, 우→좌로 스윙을 반복해 왔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그 같은 참여정부의 잘못된 리더십에 안주한 채 무기력하게 끌려 다녔다. 민주개혁세력의 또 다른 한축인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매몰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좌파노선에 집착하여 시대 흐름에 뒤쳐져 갔다.

‘97년 체제’의 정치경제적 조건은 분명히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킨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97년 체제가 반드시 보수세력의 헤게모니를 일방적으로 추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 내재된 모순적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와 진보를 새롭게 확장․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풍부하게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확대를 통해 자율, 경쟁, 선택, 책임을 증진시킨다는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재화의 규모에 의해 사회적 지위와 경쟁의 결과가 결정되는 과점체제로서 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제약하고 있다. 단적으로 시장의 과잉 속에서 부동산 가격폭등과 교육양극화가 빚어내는 현대판 신분제도의 부활은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모태인 시장과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많은 대중의 집단적 체험 과정이 있었다. IMF사태를 비롯해서 그 후 진행된 사회양극화에 대한 집단적 체험은 신자유주의적 사회문제 해결방식과는 다르거나 혹은 그것을 변형시키려는 다양한 차원의 지향과 시도를 산출한다. 바로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복선적이고 유동적이며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내화된 체험을 가진 집단들이 여전히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97년 체제의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정치지형의 변화 트렌드

앞에서 살펴 본 97년 체제의 복선적 정치구조는 사회세력들 간의 상호작용을 매개로 일정한 방향의 정치지형의 변화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그 트렌드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첫 번째 변화 트렌드는 ‘중도화’이다. 우리 사회에는 과거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재생산해 왔던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대립이 약화되면서, 이와 함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유권자들의 당파적 충성심이 많이 약화되어 어느 정당도 일방적으로 합리적 태도를 벗어나는 정책결정과 행위를 지속할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기든스(2002)의 표현을 빌면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계산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정치적 선택에 대해서 조용하게 도구적 접근을 취하게 됨을 말한다.

②두 번째 변화 트렌드는 ‘이념적 분화’이다. 과거에 유권자의 정치균열구도는 ‘개혁-수구’로 양극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구도는 자유주의-권위주의라는 대립을 빼면 사실상 이념적 간격의 차이라는 것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자유주의-권위주의 대결구도가 약화되면서도 이념적 성향들은 권력정치를 매개로 한 양극화된 정치경쟁구도 속에 매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의 트렌드는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이 일정한 이념과 노선을 따라 분화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층의 분화, 열린우리당 지지층 내부에서의 분화는 이미 오래 전에 진행되어 온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념적 분화가 지연되어 왔던 한나라당과 그 지지층도 지형의 분화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③세 번째 변화 트렌드는 ‘생활정치․공공성’이다.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에 나타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현상은 고용, 주택, 의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일상생활 영역의 이슈들을 매개로 한 ‘생활정치’ 담론의 부상이다. 이는 ‘87년 체제’ 하에서 정치운동이 정치개혁, 지역주의타파, 재벌개혁 등 거시 담론 중심의 변화를 주로 지향해 왔던 이슈공간의 특성과 비교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일상생활 이슈의 등장이 단순히 사적 영역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공공성(publicness)’ 개념의 적용을 통한 삶의 안정과 질적 향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공성에 대한 지향이 아직은 명확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세력화되어 있지도 않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사회문제 해결 방식과는 다른 혹은 그것을 변형하려는 지향성이 대중의 의식 속에서 하나의 좌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흐름의 중요한 토대는 바로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들의 증대이다. 특히 탈산업화 속에서 새로운 주력계층으로 등장하고 있는 신중산층의 존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리라 추정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진보적 이념성향을 보이면서도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을 지향한다는 것, 개인적 자아실현에 중점을 두지만 비판적 사고능력을 구비하고 정서적 감응보다는 토론적 설득에 공감하고 수평적 연대에 개방적이라는 존재적 특성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의 정치적 토대가 실재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3)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과 2007년 대선 국면의 특성

한국사회는 이상에서 살펴본 정치지형의 변화 트렌드 속에서 정치세력들 간의 새로운 헤게모니투쟁 국면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이전과는 매우 다른 유권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로 이 새로운 정치시장의 압력이 기존의 정치집단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정치집단들은 새로운 시장을 향하여 움직이면서 그것의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민주개혁세력의 위기는 바로 이 같은 커다란 사회적 전환과 세력 변동을 포착하는 것에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이런 흐름을 적어도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잘 활용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공동체 자유주의에 입각한 ‘선진화’ 담론(박세일, 2006)의 제시나 진보진영의 가치에 가까웠던 ‘생태’, ‘공영(공공성)’ 담론을 역이용한 청계천복원-교통관리체계개편, 최근 아파트 반값 정책의 당론채택 등 일련의 현상들은 한나라당이 더 이상 수구세력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도’와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설령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파괴할지라도 새롭게 형성되는 유권자시장의 정치적 편익에 대한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들의 충동을 제어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은 2007년 대선이 지난 2002년 대선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이다. 2002년대선 국면은 대중의 집단적 열정이 예기치 않게 선거 과정에 투입되면서 가장 극단화된 개혁-수구의 정치구도가 펼쳐졌다. 그래서 2002년 대선에서는 도덕적 열정과 가치가 선거를 지배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은 2002년 대선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 양극화된 정치균열구도가 더 이상 지배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보수세력들의 최근 동향을 보면 다소 모순적이다. 즉 한편에서는 진보개혁세력의 약화에 편승하여 극우 보수세력이 준동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중도에 대한 공략을 가속화하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자의 측면은 보수세력 내부의 긴장과 갈등의 요소이다.

얼마 전 뉴 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을 둘러싼 보수진영 내에서의 상반된 시각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양자의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을 확장시키는 쌍끌이 어선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앞으로 이 양자 사이의 모순이 어떤 정치적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정치적 분화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타협점을 찾아 동거체제를 구성할지, 동거체제를 지속한다면 어느 쪽을 중심으로 하게 될지는 딱히 단정하기 어렵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경우든 내년 대선 구도는 2002년 대선 구도의 재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2007년 여러 가지 대선 구도 시나리오

지금의 시점에서 내년 대선 국면을 예측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양상이 매우 많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정계개편과 대선 구도를 결합하여 가능성 높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을 예측해 보기로 하자. 대선 시나리오는 크게 세력중심의 구도와 인물중심의 구도, 그리고 이슈중심의 구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인물중심의 구도는 세력중심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정치권 밖 인물을 영입하는 소위 제3후보론은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기서는 세력중심의 구도와 이슈중심의 구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세력중심의 구도

먼저 세력중심의 구도는 주요 정당세력들의 분열과 통합(유지)를 교차시켰을 경우 생기는 매트릭스조합에 의해 크게 네 가지 경우의 구도를 상정할 수 있다.

①한나라당유지-범여권통합의 구도이다. 이것은 한나라당후보-통합신당 혹은 오픈프라이머리후보-민노당후보가 경합하는 구도이다. 민노당과의 선거연합 가능성은 이하 모든 경우에서 논외로 하기로 한다.

②한나라당유지-범여권분열의 구도이다. 이것은 한나라당후보-열린우리당후보-민주당후보(고건)-민노당후보가 경합하는 경우와 한나라당후보-친노당후보-반노․친호남통합신당후보-민노당후보가 경합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③한나라당분열-범여권통합의 구도이다. 이것은 한나라당(박근혜)-보수신당(이명박)-범여권통합후보-민노당후보가 경합하는 구도이다.

④한나라당분열-범여권분열의 구도이다. 이것은 한나라당(박근혜)-보수신당(이명박)-친노당-반노.친호남통합신당-민노당으로 사분오열되어 각개 약진하는 구도이다. 그리고 이들이 각개약진하면서 기존 정치구도와는 거의 무관하게 합종연횡을 통해서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게 된다.

위의 시나리오들에 대해 부여설명을 덧붙이면, 현재로서는 ③, ④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①, ②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①시나리오와 ②시나리오는 동시적으로 양립가능한데, 이를테면 ②를 통해 ①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의 시나리오들은 민주세력의 승리 비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모두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상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도 승리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대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인 수도권 중산층(중간층)이 그런 구도에 참여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설령 한나라당이 두 개 아니라 세 개로 쪼개져도 필패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어느 경우의 구도도 승리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은 열린우리당 나아가 서부권세력 내부에서 정계개편을 둘러싼 내부 싸움을 결말이 없는 지리한 양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면서 범여권세력은 분열과 자중지란을 거듭하면서 완전히 고사해 버릴 가능성도 있다.

2) 노선-이슈 중심의 구도

그렇다면 다음으로 노선이나 이슈 중심의 구도를 살펴보자.

①개혁-수구구도의 복원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이 패착을 두거나 한나라당 내 수구세력이 당을 주도하는 경우에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어떤 내적 필연성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인 요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과 효과 모두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②참여정부심판(혹은 진보개혁세력심판)의 구도이다. 이는 이미 지난 5.31지방선거에서 그 위력을 무섭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현 정치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내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③일자리, 주택, 교육, 의료 등 생활정치이슈 중심의 선거구도이다. 이것은 여러 중소형 이슈들로 전선이 산재되는 구도와 생활정치이슈들이 전체적으로 ‘성장 vs 복지’, ‘시장 vs 공공성’과 같은 거대담론을 통해 집중화된 전선이 생겨나는 구도로 나눌 수 있겠다.

④외적 상황의 돌변에 의한 거대 이슈가 출현하여 선거양상을 결정하는 구도이다. 이를테면 북한 핵문제나 제2의 경제 환란 같은 대형이슈가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이슈중심의 구도에 대해 몇 가지 부연하자면, 내년 대선국면은 기본적으로는 ②와 ③을 기본으로 ①, ④가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결합된 속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재로서 진보개혁세력은 그 어느 선택도 간단치 않은 상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진보개혁세력의 대응 방향 모색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세력이 맞고 있는 전례 없는 위기의 핵심은 ‘전선(front)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문제 혹은 어떤 세력에 대한 대결과 극복을 통해서 표현되는 진보세력의 존재 의미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거 진보세력을 하나로 묶어줬던 ‘반(反)수구-반(反)한나라당전선’은 역사적 가치와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새로운 전선을 짤 것인가? 무엇을 대중노선으로 삼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앞으로 진보세력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진보개혁세력은 이 문제의 해결을 완전히 방치하고 있다. 현재 열리우리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를 둘러싼 움직임들은 거의 열린우리당의 이념과 노선 그리고 정책에 대한 검토 없이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절반을 넘는 반(反)한나라당 혹은 비(非)한나라당 유권자들을 묶어내면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의 실체를 아직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함을 입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이념과 노선의 불투명, 정책의 비일관성, 지도력 구심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민주당과의 분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민주당과의 분당이 미친 영향을 들라면 본질적인 문제의 5분의 1도 안 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민주당, 고건세력과의 통합을 통해 지지율을 높여보겠다는 발상은 기존의 위기를 더욱 부추겨 혼란, 분열, 자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원칙과 명분을 잃어버린 채 아무 세력이나 끌어 모으는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사례가 선명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과 명분이 분명하다면 덧셈의 정치보다 뺄셈의 정치가 훨씬 위력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는 이쪽저쪽을 불문하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 열린우리당은 기득권을 버리는 자세로 임하지 않는 한 결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역대 세 번에 걸친 민주정부들을 모두 실패로 몰아넣은 구체제를 극복할 대안 없이는 어떤 신당 논의도 무의미하다. 대중의 정치적 동원과 열망의 투입에 의한 집권 과정, 집권 이후 관료가 지배하는 국정운영 과정, 그리고 개혁의 파행과 레임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대안 없이 또 다시 당을 깨고 신당을 만들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민을 또 다시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계개편 논의는 국정 파탄을 막지 못한 열린우리당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반성이 따른 후라야 한다.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파탄을 가져온 요인은 무엇인가? 부동산가격폭등에 대처하지 못한 정책노선의 한계는 무엇인가? 사회양극화의 심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와 재벌에 끌려 다닌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리더십에 도대체 어떤 근본적 문제점이 있었는가?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대안적 해결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민주노동당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여러 보수정당들과 확실한 대립전선을 구축하지도 못하고, 때로는 열린우리당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도 못하면서 제반 정치 아젠다에 대해 ‘항의만 하는 정당’으로 기능한다는 데에 있다(임운택, 2006: 112).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한 대응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그런 이면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득권에의 안주(安住) 같은 것이 감지되기도 한다. 당 내부의 정파갈등이 진보가치의 현대화를 봉쇄하기 시작한 것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다.

내년 대선은 진보개혁세력의 자기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자기반성을 멀리하고 실책의 사유를 외부세력이나 구조적 여건에 돌리는 것에 급급해 있다. 특히 노무현대통령과 그 직계그룹의 상황인식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2006년 12월 3일자 노무현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정실패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책임은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야당의 발목잡기와 여당지도부의 차별화 시도를 질타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노무현, 2006.12.3).

열린우리당 역시 자칭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는 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데에서는 참여정부 못지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이런 과거의 잘못된 정책노선과 행태를 반성하기는커녕 세력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을 대변하는 정치권 정당들의 문제점을 그들 스스로 바로잡기는 난망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미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이든 정책노선개편이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거의 상실한 듯하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을 주도하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하게 되어 있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정계개편과 정책노선 전환을 위해 진보적 시민사회와 지식인그룹들이 적극 개입하고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구체제의 전철, 즉 최장집교수(2006)가 말하는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끊기 위한 ‘정치혁신운동’의 고리를 만들어야 할것이다. 이념과 정책노선에 대한 전면적 검토를 요구하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나아가서는 민주노동당을 총체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진보개혁적 정치권 정당들의 현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위기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책노선에 대한 성찰적 반성으로부터 부동산, 교육, 일자리 등 생활정치이슈에 대한 선명하면서도 실현가능한 정책적 태도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 및 보수세력의 가치와 진보개혁세력의 가치 사이의 대립이 무엇인지를 대중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낡은 반(反)수구-반(反)한나라당전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전선=새로운 대중노선을 창출해야 한다.

집토끼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핵심지지기반은 완벽할 정도로 소실되어 있다. 민주노동당 또한 뚜렷한 지지기반이 없다. 외연확장형 통합보다는 집토끼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외연확장은 집토끼를 만들어 중심을 잡고 난 연후라야 한다. 이념적.정치적.조직적 구심이 확고하다면 그 때에는 일시적인 선거연합이든 정책연합이든 정부연합이든 유연하게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5. 맺음말

최근 일본형 정계개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의 군소정당으로의 전락, 보수세력의 지형 확장과 진보개혁세력 일부의 흡수를 통한 분가(分家)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최근 보수세력 내에서 나타나는 중도에 대한 정치마케팅 현상을 보면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닌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건에 입각해 볼 때 일본형 정계개편으로 귀착될 가능성은 낮다. 먼저 보수세력의 미래지향적 비전이 부재하다. 물론 간단치 않은 문제이기는 하나 보수세력이 중도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보수세력 내부의 발전적 분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뭉뚱그려진 채 반사이익의 섭취에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강하다. 보수세력은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넘어서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가치를 제시 못하고 있다.

이명박의 경우도 감동 없는 실적주의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구시대 패러다임을 겉만 포장한 수준에서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괴멸로 발생한 세력공백을 대체하려고 했던 시도들(이를테면 고건)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는 것 같다. 이런 조건들이 한국에서 ‘보수혁명(conservative revolution)’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게 하고 있다.

또한 진보적 가치에 대한 대중의 지향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속에서 움트고 있는 잠재적이지만 역동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최근의 여론조사 지표들은 정치권의 보수적 변화와는 달리 시민사회 속에서 ‘성장’과 ‘경쟁력’ 담론의 반대편에 고용, 주택, 교육 등의 사회영역들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시민적 담론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보수가 지향하는 차별과 배제의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집단적 기억 효과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민주.진보.개혁세력의 기반은 민주주의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단지 구심을 잃고 분산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런 조건들에서 진보개혁세력들이 고용, 주택, 교육 등 일상영역에서 질 높은 생활을 향유하는 “합리적 공공성의 정치” 속에서 승부를 걸고, 사회정책의 혁신을 통해 다양한 민주세력 전체를 진보적으로 결합시키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언제든지 집권 가능한 강력한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신진보세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진보개혁세력들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를 몇 가지로 정식화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① 공공성의 가치에 의한 정치구도의 재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집단들의 이념적 배치를 새롭게 해야 한다. 그것은 구체제의 산물인 권위주의-자유주의의 대결구도를 넘어서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성과·실적’-‘분배·복지’의 신자유주의적 대결구도 역시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구도는 ‘공공성’을 중심으로 각 정치집단들이 재배열되는 이념지형이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공공성’과 ‘진보주의적 공공성’과 같은 경쟁구도를 말한다.

공공성이란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적 개념일 수도 있고, 그것을 뛰어넘는 지평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공공성이 민주주의에 대해 갖는 핵심적 의미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토대인 ‘사회적 시민권’(Marshall, 1996)의 확립과 관계된다. 그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준에서 오랫동안 답보해 온 ‘87년 체제’를 당면한 사회경제적 구조(이를테면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와 사회적 역학관계에 맞게 더욱 진전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획이기도 하다.

② 리더십의 혁신이다. ‘엄숙’, ‘주의(主意)주의’의 리더십과 자유주의적 ‘탈권위’의 리더십은 모두 한계에 직면했거나 실패했다. 새로운 가치 리더십의 창출이 필요하다. 탄핵사태 이전의 정치발전단계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 창출이 필요하다. 리더십의 혁신에서는 정치와 경제 관계의 재조직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개혁적 정치리더십이 중요했고, 사회경제적 아젠다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경제적 아젠다의 내용이 아주 중요해졌고, 거기에 과거와는 다른 어떤 가치를 결부시키느냐(이를테면 ‘안정’, ‘책임’, ‘신뢰’의 가치 리더십)가 중요해졌다.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니즘이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역사적 뿌리가 다른 두 개의 가치를 결합시켜 신보수주의 리더십을 창조하여 보수혁명을 일으킨 것은 진보개혁세력의 리더십 혁신에서도 참조할만하다(Ball & Dagger, 2006: 215-220). 사회경제적 아젠다의 방향과 관련해서 한마디만 더 부연해 보자.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중도’와 ‘실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특히 여권의 지도자들에게는 자기 선택을 스스로 좁히는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아젠다를 내세우되 그것을 추구하는 형식, 절차, 방법은 유연하게 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치트렌드와 부합하는 리더십 전략이다.

③ 사회적 연합정치(coalition politics)의 혁신이다. 개혁정책의 성공은 사회적 연합정치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 날 민주정부 하에서 사회적 연합정치는 민주(개혁)-반민주(수구)라는 정치적 균열구도와 자본-노동이라는 계급적 균열구도가 중첩되는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그 같은 연합정치의 구도는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전사회적 확산, 탈산업화의 진행과 지식기반사회의 등장, 그리고 노동계급 내에서의 계급적 분절현상과 새로운 시민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인구학적 집단의 출현 등이 사회적 연합정치와 관련하여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런 조건에서 산업화시대의 사회적 범주에 입각한 개혁지지연합의 구축은 얼마나 유의미한가? 이것이 지난 시기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실패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④ 국가전략노선의 혁신이다. 새로운 국가전략모델로서 새로운 진보적 공공성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의 자유’(경쟁)와 ‘기회의 공정성’(사회정의)이 조화를 이루는 국가전략이며, ‘재화의 크기’가 경쟁의 결과를 사실상 결정해 버리는 과점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를 넘어, 공공성의 강화를 통해 신자유주의보다 훨씬 더 지속가능한 세계화와 시장질서 형성을 가능케 하는 기획이다. 그것은 성장-분배의 이분법적 논쟁 지형을 극복하고 신뢰, 자율, 협력, 경쟁의 네트워크경제체제 확립을 통한 신(新)성장전략을 창출하는 것이다.

바로 이상과 같은 핵심과제들을 향한 전진의 발판이 내년 대선국면을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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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 2006.12.3.
박세일(2006).『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서울: 북21.
송호근(2005).『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서울: 21세기북스.
임운택(2006) “민주노동당의 정체성 위기와 진보정치의 과제”. ≪신진보리포트≫4호.
최장집(2006).『민주주의의 민주화』. 서울: 후마니타스.
Ball, Terence & Richard Dagger. 정승현외 옮김(2006).『현대정치사상의 파노라마: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이념』
Giddens, Anthony(2000). The Third Way: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 Oxford: Polity Press.
Giddens, Anthony(2002). Where Now For New Labor. Cambridge: Polity Press.
Marshall, T. H.(1996).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London: Pluto Press.
Viroli, Maurizio. 김경희&#8228;김동규역(2006).『공화주의』. 서울: 인간사랑.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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