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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로펌들, 대형로펌에 도전장

[김진원의 로펌이야기] <17> 전문성, 저비용, 빠른 서비스 경쟁력

보통 100명이 넘는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대형 로펌들은 흔히 백화점에 비유된다.

분야별로 많게는 수십명의 전문변호사들이 포진한 가운데 기업법무의 핵심 분야인 회사법과 금융을 중심으로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로펌의 홈페이지엔 기업 인수 · 합병(M&A), 정보통신, 공정거래, 노동, 지적재산권, 보험 · 해상, 환경, 국제무역, 전자상거래, 해외투자, 조세, 송무, 형사 등 수십개의 업무분야가 길다랗게 이어지고 있다. 말그대로 법률백화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 업계엔 백화점만 있는 게 아니다. 일당백(一當百)의 전문변호사들로 팀을 꾸려 특정분야의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점들도 적지 않다. 통상 부띠크(boutique)로 불리는 전문 로펌들이다. 대형 로펌보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높은 전문성과 발빠른 서비스를 내세워 대형 로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수금액만 3조4000억원에 달했던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건은 2005년에 있었던 국내 M&A중 가장 큰 딜로 꼽힌다. 하이트맥주는 산업은행 등 국내외 20개 금융기관으로부터 1조원의 돈을 빌려 인수자금을 조달했다. 법률자문은 금융 분야의 부띠크로 유명한 법무법인 평산이 제공했다. 소속변호사가 12명 밖에 안 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평산이 대주(貸主)쪽을 맡아 1조원의 인수금융(acquisition financing)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것이다.

평산은 2001년 3월 김수창 변호사가 설립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전신인 법무법인 한미에서 오랫동안 파트너 변호사로 활약한 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금융전문 변호사로 통한다. 2001년 한미가 광장과 합칠 때 합류하지 않고 한미를 나와 평산을 세우고 독립했다. 국내 최초의 민자유치사업인 인천신공항 제2연육교 사업에서도 금융쪽을 맡아 활약한 평산은 얼마전 홍콩의 법률잡지인 <아시아로>(Asialaw)가 분석한 국내 로펌 평가에서 선박금융(shipping) 분야 1위를 차지하는 등 금융전문 부띠크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띠크는 김 변호사처럼 대형 로펌에서 전문변호사로 활약하던 중진급 변호사들이 기존 로펌을 탈퇴해 세운 게 많다. 종합병원 · 대학병원에서 활약하던 전문의가 전문클리닉을 내고 독립하는 비슷한 모습이 로펌업계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대형 로펌으로선 전혀 반길 일이 아니지만, 이런 핵분열을 통해 업계는 넓어지고 고객의 법률회사 선택의 폭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올 3월 컨테이너 화물을 잔뜩 싣고 홍해 부근을 항해하다가 화재가 발생한 현대 포춘호 폭발사건을 맡아 얼마전 선주책임제한절차 개시결정을 이끌어 낸 법무법인 세경은 해상 · 보험 · 항공 분야가 텃밭이다. 1997년 1월 김&장법률사무소 출신의 최종현 변호사와 법무법인 한미에서 활약한 김창준 변호사가 손을 맞잡고 창업의 깃발을 들었다. 두 사람 다 해상 · 보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 분야의 베테랑들로 10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또 2003년 2월 법무법인 세종 출신의 송현웅 변호사와 원태연 미국변호사 등 4명의 변호사로 출발한 에버그린 법률사무소는 회사법 전문으로 시작, 부동산 등의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변호사 수가 22명에 이를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올초 사외이사 선출방식을 놓고 맞붙은 KT&G의 경영권 분쟁에서 칼 아이칸은 에버그린이 맡고, KT&G는 에버그린의 친정에 해당하는 세종이 대리하고 나서 세종과 세종 출신 변호사의 맞대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초 KT&G의 경영권 분쟁에서 세종 출신이 설립한 에버그린이 칼 아이칸 측 대리인을, 세종이 KT&G를 대리하는 맞대결을 펼쳤다. 사진은 당시 대전지법에서 열린 ‘주총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을 놓고 법정대결을 벌인 에버그린 송현웅 변호사(왼쪽)와 세종 박교선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 연합뉴스


에버그린 보다 조금 늦게 문을 연 SL파트너즈는 중국, 베트남 등에의 해외투자와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 및 국내기업 지분인수, M&A 등 회사법 분야의 전문 부띠크다. 마찬가지로 세종 출신인 송창현 변호사와 보스톤 칼리지에서 J.D.를 한 임석진 미국변호사의 주도로 올초 마무리된 하이마트의 해외 매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 미국계인 프랭클린 템플턴의 국내 자산운용사 설립과 자산운용펀드 설립을 자문했다. JP모건의 국내 자산운용사 설립건도 맡아 진행중에 있다.

이외에 법무법인 한미와 김&장의 해상 · 보험파트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서동희 변호사가 이끄는 해상 · 보험 · 항공 전문의 법무법인 정동국제와 전자상거래가 전문인 법무법인 아람, 6년전 벤처기업에 대한 전문서비스를 표방하고 출범한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IBC) 등이 대형 로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더해 가고 있는 성공한 부띠크들로 꼽힌다.

법무법인 아람은 특허 전문인 중앙국제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0년간 특허와 국제거래 전문변호사로 활약한 경력의 손경한 변호사가 93년 설립했다. 일본 오사카대에서 '전자상거래분쟁의 해결'이라는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손 변호사는 특히 아람에서 사이버 스페이스법에 지적재산권을 결합시킨 사이버 지적재산권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일아이비씨는 김&장 출신의 최영익 변호사가 설립했다. 서울 테헤란로에 벤처 붐이 한창 일었던 2000년 4월의 일로, 'IBC(Integrated Business Counsel)'란 통합된 기업 법률 서비스를 의미한다고 한다. 얼마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해 또 한번 뉴스를 탔다.

이에 비해 특허 전문으로 이름이 높은 법무법인 다래는 이들 로펌과는 설립 경로가 다른 부띠크라고 할 수 있다. 특허법원의 판사와 변리사들이 처음부터 부띠크를 지향하며 함께 법복을 벗고 나와 법률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허법원의 같은 재판부에서 좌, 우 배석판사를 지낸 박승문, 조용식 변호사와 특허법원 기술심리관과 특허심판원 심판관을 역임한 윤정열, 김정국 변리사가 주인공으로, 이쪽 업계에선 '특허 4인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99년 8월 문을 연 이후 7년만에 곽동효 전 특허법원장 등 변호사 10명, 변리사 14명이 포진한 중견 로펌으로 성장했으나, 여전히 특허 전문의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전문성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부턴 그동안 축적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조사 · 기술평가 서비스를 시작해 또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외국기업 등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거나 특허를 추진중인 기술을 국내에서 개발했다가 나중에 특허침해 시비 등에 휘말려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특허 유무나 특허 출원 준비상황 등을 미리 조사하고 평가하는 서비스로, 기술 개발을 추진중인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올초 전자택(tag)의 일종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과 관련, 외국의 특허 보유 여부를 조사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자문했다. 또 얼마전엔 RFID협회에 보고서를 제공했으며, 한 IT업체로부터도 비슷한 용역을 받아 수행중에 있다고 한다.

9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부띠크들은 전문성 외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변호사 비용과 신속한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변호사들이 층층시하 포진하고 있는 대형 로펌과 달리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틀어쥐고 고객을 직접 상대해 가며 순발력있게 대응하다보니 고객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한 대형 로펌의 경우 변호사들에게 '전화 빨리 받기'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로펌의 대고객 서비스는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는 게 요즈음이다.

"대형 로펌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갖가지 조사와 검토를 거친 끝에 고작 감기라고 결론지을 경우 고객이 과연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요."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부띠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부띠크는 소수의 전문가가 신속하게 사안을 분석해 곧바로 감기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발빠른 서비스가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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