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밥 먹는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무상급식 먹는 대신에 '급식도우미', "학력신장 예산은 펑펑"
앞서 3월19일에는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무상 급식 받는 애도 '내가 부모님이 조금 형편이 안 되니까 나라에서 지원 받는구나' 하는 정도이지,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하는 일은 지금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월30일자 <부산일보>의 <"네 가난을 증명해 봐" 가혹한 대가 요구하는 '공짜밥'>라는 기사는 교육현장의 현실은 이들의 주장과 180도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무상급식을 신청했다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해 점심을 굶는 제자들과 함께 단식을 해온 최은순 교사의 이야기를 다뤄 최 교사의 단식 13일만에 부산교육청의 백기항복을 받아낸 <부산일보>는 이번엔 무상급식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 문제'를 조명했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전문계A고 3년 이모군은 1학년 내내 반에서 가장 늦게 점심을 먹었다. 반 아이들의 배식 당번인 '급식도우미'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밥을 다 퍼주고 나면 반찬 그릇이 휑하니 비는 날도 있었다. '적절한 배식에 실패'한 날엔 반찬 없는 밥을 먹기도 했다."고생이 많다~"고 비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식욕 왕성한 친구들은 "반찬을 더 주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밥을 먹는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A고는 각 반 1~2명씩 급식도우미 신청을 한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면제해주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 군도 이렇게 해서 급식비를 면제받았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공개해가며 밥을 퍼주고 그 '대가'로 맨 마지막에 먹는 밥은 처연했지만 이 군은 급식도우미로 두 학기를 버텨냈다.
B여고에도 급식비를 면제받는 '급식도우미'들이 있다. 인문계고교는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서 점심, 저녁 두끼 급식을 해야 하지만 급식비 지원은 초·중·고교 모두 중식에 한정돼 있다. 담임교사들은 저녁 급식비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점심, 저녁 도우미 명단에 올려 급식비를 면제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학교 급식비 지원 시스템은 이처럼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가려 '시혜'를 베푸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대상 학생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늘 뒷전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로 '선별'돼 '시혜'를 받는 과정도 간단치 않다. 해마다 3월, 반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담임이 대상자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는 모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기준에 따라 추가 서류도 내야 한다.
C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선생님한테 줄 거 있는 사람 다 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결국 알만한 학생들은 다 알게 된다"고 말했다. 담임이 급식비 지원 대상자로 추천하기 위해서는 대상 학생을 '최대한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 추천서를 써야 한다. 그는 "추천서를 쓰려면 가정 형편을 소상하게 물어 볼 수 밖에 아이에겐 가난을 새삼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질문하는 담임도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공짜밥'의 절차는 이게 다가 아니다. 담임교사들은 지원 대상 학생들이 방학 때는 어떻게 밥을 먹길 원하는 지도 매번 확인해야 한다. 부식을 구입할 쿠폰으로 받을지, 인근 식당에서 먹을지 등 몇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B여고 교사는 "학년마다 연계가 안돼 해마다 급식비 지원 신청 과정을 되풀이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여름방학을 앞두고 한 조사를 겨울방학 전에 또 해야 하는 등 같은 조사를 하고 또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부산시민운동본부 김정숙 공동대표는 "'부자급식' 논란이 있지만 학교 현장을 제대로 들여다 보면 왜 무상급식 확대가 필요한 지 알 수 있다"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가 어렵다면 급식비 지원을 원하는 학생은 다 지원해주는 형태로 가야 현행 지원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예산이 부족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꼭 그것만도 아니다.
부산지역의 경우 올해 43억원을 추가 확보해 총 248억원을 들여 기초생활수급자과 월소득 최저생계비 기준 상위 120% 이내 가정 초·중·고교생 5만9천명(전체의 12.8%)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중 부산시교육청 예산이 227억6천만원으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정숙 대표는 "교육청이 학력신장 프로그램에 한해 56억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데, 수천만원씩을 배정 받은 학교들은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몰라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정독실 운영에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 예산 체제 내에서 불요불급한 지출만 줄여도 급식비를 상당 수준 확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