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생님이 점심 굶는 사연, "내 제자가 굶는데..."
정부여당 "굶는 아이 없게 하겠다", 실상은 '굶는 아이들 속출'
야권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여당이 전면 무상급식은 '부자 급식'이라고 비난하며 한 약속이다. 그러나 <부산일보>가 23일 보도한 최은순(47.여) 교사의 '단식 이야기'는 이런 약속이 얼마나 공허한 약속인가를 실감케 하고 있다.
최은순 선생님이 점심을 굶는 이유
<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 북구 A 중학교 최은순(47·여) 교사는 점심시간이면 반 아이들의 배식을 도와주러 교실로 간다. 아이들의 밥을 퍼주고 나면 교무실로 돌아와 물 한잔을 마신다. 점심을 굶은 지 오늘로 열흘째. 오후 수업시간엔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다.
A 중학교는 지난 12일 담임 교사들에게 학교 급식비 지원 신청을 했던 학생 106명 중 75명밖에 지원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신청 학생 중 31명이 올해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탈락자'중에는 최 교사의 반 아이 1명도 포함돼 있었다. 최 교사는 가정환경을 꼼꼼하게 조사해 지원이 꼭 필요한 아이들만 신청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아이들이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서류를 갖다 내고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던 그 과정을 떠올리니 눈물이 핑 돌았다.
최 교사는 '차라리 내가 한끼 굶고 아이의 밥값을 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14일부터 점심 단식을 시작했다. 거창한 대의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주눅들어 서류를 내밀던 아이들의 눈빛이 떠올랐고 '상처를 더 줄 순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점심 굶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자괴감 때문에 밥을 굶으면서도 암담해질 때가 많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급식 지원 탈락자 명단을 받던 그날은 하필 이 학교가 진로 상담 특색사업 지원금을 받아 관련사업 계획서를 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학력 신장 프로젝트에는 그렇게 많은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급식비 지원은 줄이는 교육청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한끼 굶어서라도 지원을 못 받게 된 아이의 밥값을 내주고 싶다…." 최 교사는 학교 전 교직원들에게 보낸 메신저다.
'소리없는 저항'에 응원의 손길이 서서히 늘었다. 교장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고 독지가의 도움으로 '탈락자' 중 13명이 연말까지 급식비를 지원받게 됐다. 교사들의 급식비 지원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선생님의 점심 단식 사연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아이들의 응원도 늘어갔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단식중'이란 걸 안 최 교사 반 아이는 괜히 최 교사를 툭 치고 도망가거나 '선생님~'하고 크게 불러놓곤 머리에 하트를 그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의 서투른 표현이 오히려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최 교사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런 상처를 주지말야 할 것"이라며 "심각한 이념 투쟁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살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목표를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탈락됐던 아이들이 모두 올해 급식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대책이 생길 때까지 점심을 굶을 생각이다.
최 교사는 "학교 급식비 지원 문제는 개별 학교들이 각각 후원금을 확보하는 방식 등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학년이 바뀔 때마다 '가난해서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해가며 급식비 지원을 받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가 올라도 예산은 그대로...부산 곳곳에서 아이들 밥 굶어
<부산일보>에 따르면, 밥을 굶는 아이들은 A중학교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 아니다.
학교 급식 지원 문제는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서 하루 두끼를 해결해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더욱 심각하다.
부산지역 A고교는 지난달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217명을 올해 학교 급식비 지원자로 신청했지만 이중 110명만 지원을 받게 됐다. 107명의 '탈락자'가 생긴 것이다. 이 학교는 지난 3,4월에만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이 142명(중복 미납자 1명 처리)이나 됐고 이들이 내지 못한 급식비는 1천580만원에 달한다.
고교 급식 단가는 2천500~2천600원선. 중식, 석식을 모두 학교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1인당 월 급식비는 11만원 가량 된다.
학교마다 급식 시스템이 다르지만 학생들이 급식 카드를 찍고 밥을 먹도록 하는 학교들도 있어 급식비 미납 학생들은 끼니 때마다 급식비를 내지 못한 '슬픈 처지'를 공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고교는 급식비 지원 신청 후 탈락한 학생들의 급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 후원 등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지역 초·중·고 저소득층 무상급식 지원 대상자(차상위계층까지 포함)는 전체 10.8%인 5만3천171명(연말 실질 지원자수)으로 이들에게 지원된 급식비는 184억6천200만원이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 예산과 같은 184억6천200만원(방학중 소요 예산 제외)을 올해 저소득층 무상급식 지원금으로 배정했지만 그동안 급식비 단가가 올라 올해는 같은 금액으로 4만6천947명(예측 인원·전체 9.7%)만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보다 무려 6천224명이나 지원자를 줄여야 할 상황이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가 이처럼 급감하자 일선 학교에서는 이미 신청받은 학생들 중 '누가 누가 더 어렵나'를 가려 '지원 불가'를 통보하게 된 것이다.
B고교 교사는 "무상급식 대상자수나 지원 예산을 해마다 미리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 지원을 하다 보니 정말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제대로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사전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교육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면 무상급식 실현 가능성은 결국 돈 문제에 달려있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교에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초등학생 1조632억원, 중학생 9천32억원 등 총 1조9천664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무상급식에 편성된 예산은 5천425억원이다. 따라서 전국의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려면 1조4천억원이 더 필요한 실정이지만 현재 27조원 안팎의 교육 예산 중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고 쓸 수 있는 예산은 연간 5조원 이하에 머물고 있다.
부산지역의 경우 올해 부산시교육청 예산 184억원과 시 전출금(방학중 급식 예산) 등 총 205원의 예산을 들여 초·중·고교생 4만6천947명(전체의 9.7%)에 한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초등학교 680억원, 중학교 558억원 등 1천200여억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최은순 교사의 단식 소식은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도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식을 접한 민주당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최 교사의 단식이야말로 전면적 무상급식이 왜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점심 단식'에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에 허남식 부산시장은 "재원확보 문제가 있어 전면적 무상급식을 당장 실시하기는 어렵다"며 "점진적인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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