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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 로펌 '김&장' 성공신화

[김진원의 로펌 이야기] <10> 한국의 최대 '법조 파워'

1972년 12월 하버드 로스쿨 J.D.(법학박사) 출신인 김영무 변호사가 서울 광화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국제 관련 일을 많이 다루는 국제변호사 사무실이다. 설립 순서로 국내 네번째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가 출범한 것이다.

이후 김&장은 늘 업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내로라 하는 변호사들이 속속 합류하며 국내 로펌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안 가 먼저 설립된 '김 · 장 · 리', '김 · 신 & 유'를 따라잡은 데 이어 국내 최대 규모의 로펌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국내외 변호사만 3백여명. 국내는 물론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도 이만한 규모의 로펌이 없다. 동양 최대 규모다.

김&장 법률사무소를 창시한 김영무 대표 변호사. ⓒ연합뉴스


규모만 그런 게 아니다. 전문화된 법률서비스를 내세우는 김&장은 사건 수임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사건 파일들을 들춰보자. 기업 자문, 송무를 가리지 않고 대형 사건의 한쪽 대리인엔 으례 김&장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제중재로 번진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건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예금보험공사를, 김&장이 한화를 대리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등 9개 시중은행이 맞붙은 우리은행 상호 분쟁은 김&장이 특허전문인 법무법인 다래와 함께 우리은행을, 법무법인 화우가 9개 시중은행을 대리한 가운데 2라운드가 진행중에 있다.

이외에도 법원에 제기되는 큰 소송의 원고 또는 피고 대리인란에서 김&장의 변호사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형 형사사건도 로펌의 단골 사건이 되면서 김&장이 변호인으로 많이 선임된다.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가운데 재판이 진행중인 정몽구 현대차 · 기아차 회장과 항소심이 진행중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모두 김&장이 맡아 변호하고 있다. 또 얼마전 관련 피고인 전원에게 집행유예 판결이 선고돼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인 두산 비자금 사건은 김&장이 박용성 전 회장측을, 법무법인 로고스가 박용오 전 회장을 맡아 변론을 펼쳤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김&장의 깔끔한 법률서비스는 외국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적인 로펌들도 김&장이 상대방의 대리인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면 부담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어떤 점이 김&장의 빠른 성장을 이끌었을까.

무엇보다도 설립 초기부터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넘어 회사 형태의 법률사무소 시스템을 도입하고 투자에 나선 게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다른 로펌 관계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김 · 장 · 리'를 세운 김흥한 변호사나 '김 · 신 & 유'의 김진억 변호사는 초기 로펌 업계를 주도한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두 법률사무소는 개인변호사 사무실의 성격이 짙었다는 게 여러 사람들의 지적이다. 법률사무소를 회사로 보고, 투자 개념을 도입해 실천한 곳은 김&장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로펌은 회사와 마찬가지로 투자가 많이 필요한 조직"이라며, "김&장은 종래의 국제변호사 사무실과 달리 일찍이 이런 데 눈을 떴고, 그 점이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투자는 먼저 우수한 인재의 영입으로 나타났다. 설립 1년 후인 73년 판사 출신의 장수길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김&장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 16회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김영무 변호사와는 서울대 법대 동기 사이다. 한 사람은 법관이 돼 서울민.형사지법의 판사를 역임하고, 또 한 사람은 사법시험 합격후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국제변호사가 돼 미국식 로펌을 만들어 보자고 서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후 34년째 김&장을 함께 이끌어 오고 있다.

김&장의 장수길 대표 변호사. ⓒ연합뉴스


이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젊은 변호사들이 속속 김&장에 몸을 실으면서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급 변호사들이 잇따라 합류할 만큼 김&장의 리쿠르트 전략이 주효했다.

76년 정계성 변호사를 시작으로 79년 김용갑, 조대연, 80년 정경택, 신희택, 양영준, 정병석, 81년 현천욱, 허익렬, 82년 박준, 전강석, 최재경 변호사 등이 한 식구가 됐다. 대학 수석 입학 · 졸업, 사법시험 수석합격 또는 최연소 합격,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 등 '똑똑하다'는 레테르를 한 두개씩 달고 다닐 만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길게는 30년의 경력이 쌓인 이들 초창기 멤버들은 지금 김&장의 지휘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후에도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의 합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다른 로펌에도 확산돼 이들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에 의해 국내 로펌업계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의 로펌행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도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김&장에 몸담았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조 변호사는 연수원을 다니다가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어 73년 여름 긴급조치 4호가 발동돼 6년간의 도피생활에 들어간 조 변호사는 79년 10.26이 터진 후에야 복권돼 80년 '서울의 봄'때 사법연수원을 다시 다니게 됐다.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 김&장에서 연구 및 조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던 조 변호사는 연수원에 다니면서도 김&장에서 리서처 일을 계속했다. 82년 8월 연수원을 마친 후 김&장에서 본격적으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약 1년6개월이 지난 84년초 독립해 이후 줄곧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천 전 장관도 김&장에 있다가 85년 조 변호사와 합류해 인권 변호 활동을 폈으나, 또다시 김&장에 복귀해 1년 정도 더 일하기도 했다.

80년을 전후해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리쿠르트에서 잇따라 성공한 김&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80년대 중반 '김 · 장 · 리'의 첫 고객이었던 체이스 맨해튼 은행이 김&장으로 차를 갈아 탔으며, 시티은행도 일찌감치 김&장의 단골고객이 됐다.

이쪽 업계를 잘 아는 변호사들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김&장이 업계 선두로 올라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상당수를 김&장이 대리하고 있으며, 국내 대기업중에도 김&장을 고문으로 쓰는 곳이 많다.

또하나 김&장의 경쟁력 제고와 관련,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문화 추구이다. 단순히 변호사 수만 늘려온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는 전문화를 통해 법률서비스의 질을 끊임없이 높여 왔다고 김&장 변호사들은 강조한다. 전문분야도 다른 어느 로펌보다 세분화돼 있다고 한다.

실제로 김&장의 인터넷 홈페이지(www.kimchang.com)를 보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된 전문화의 정도를 엿볼수 있다. ▲기업법무와 국제거래 ▲금융 ▲지적재산권 ▲소송/중재 ▲조세 ▲해상으로 크게 업무분야를 나눈 데 이어 각각의 분야마다 십수개의 구체적인 업무 분야를 들며 담당변호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수한 인재의 영입과 고도로 전문화된 법률서비스를 통해 국내 최정상의 로펌의 자리에 오른 게 김&장의 35년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1등은 프리미엄이 있는 반면 책임도 무거운 법이다. 대형 사건이 1등 로펌으로 몰리는 게 경쟁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로펌들로부터 시샘섞인 소리가 나오는 데도 김&장은 귀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6 8
    여의도

    그렇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로펌이 일찌기 열렸고
    그런 연유로 김앤장이 명성이 자자하여
    김대표님의 기사를 보고 많이 배웁니다.
    꾸뻑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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