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명시 <청춘>
[시 읽는 CEO] "스무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를 쓴 것은 78세 때였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훨씬 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통해서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종군기자 프레더릭 팔머는 필리핀 마닐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찾아갔다. 맥아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팔머는 우연히 책상 위의 액자 속에 들어 있던〈Youth〉라는 시를 보았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수년 전 선물 받았다는 이 시를 맥아더는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다.
시는 결국 팔머의 손을 거쳐 〈리더스 다이제스트〉 1945년 12월 호에 ‘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How to stay young)’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이후 그것을 본 오카다 요시오라는 사람이 이를 번역해 책상에 붙여놓았고, 또다시 그의 친구가 신문을 통해 일본 지식인층에 소개해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를 읽고 나자 98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의 이름은 조지 도슨. 미국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쉬쉬해야 했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자리를 얻을 때마다 표지판이나 노동지침 같은 것들을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 몽땅 외워버리곤 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은 그에게 더없이 ‘고통스러운 비밀’이었지만 생활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긴 세월 동안 힘이 되어준 믿음이 있었다.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최선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결심으로 ‘못 배운 설움’을 이겨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흑인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실상 사회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핍박받았다. 게다가 그는 죄 없이 백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형 때문에 10세 이후로는 백인들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차였다. 그래서 그는 21세 때부터 미국 전역과 캐나다, 멕시코를 오가며 부두 노동자와 도로 공사장 인부 등 수십 개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혼자 낚시로 소일하던 어느 날, 그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낚싯대를 내던지고 학교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나이 98세였다. 그는 알파벳 26자를 몽땅 외우고 ‘장례식 때문에 빠진 사흘’을 제외하고는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리고 101세가 되던 해 자신만의 책을 펴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으로, 그의 인생 여정이 오롯이 담긴 자서전이었다.
그가 책을 내기까지는 초등학교 교사인 글로브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컸다.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온 글로브먼이 그의 인생을 책으로 만들자고 설득하자, 도슨도 90여 년 전의 다짐을 깨고 백인과 힘을 합쳐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만년에 발견한 독서의 기쁨과 세상과의 교감은 그에게 있어 어떤 것보다 값지고 아름다운 행복이었다. 그는 무려 3세기를 관통한 풍부한 경험과 열정으로, 여러 학교와 선도기관 등에 강연을 다니며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삶의 교훈을 온몸으로 보여준 ‘청춘’의 주인공인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영원한 청춘’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약골로 태어났음에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경영인’에 뽑혔다. 화로가게 점원이던 그가 22세에 무일푼으로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할 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그의 손에서 당대 최고의 기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지독한 가난, 허약한 몸,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신화를 이룩했는데, 그 비결은 바로 ‘늘 푸른 청년 정신’과 ‘역발상의 지혜’였다. 어린 나이에 점원이 되었으니 상인의 몸가짐을 빨리 익힐 수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다보니 남에게 일 부탁하는 법을 배웠으며, 학력이 모자라다 보니 항상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이후 그는 자서전을 내면서 그 제목도 《영원한 청춘》이라고 정했다. 그는 사무엘 울만의 말처럼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승진뿐만 아니라 더 큰 결실도 얻을 수 있으니 ‘왕성한 탐구심’과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아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든 기업이 휘청거렸던 금융공황 때마저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고, 대담하면서 섬세한 조화경영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청춘’을 증명했다.
필자 소개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시인, 1988년 입사 후 주로 문화부에서 문학, 출판 분야 담당. 한경닷컴에 '고두현의 그래 이 책이야!' 칼럼 연재.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서 <독서가 행복한 회사>.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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