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있어도 기 죽지 말그래이"
[시 읽는 CEO] 격려야말로 소통의 통로
하석근 아저씨(고두현)
참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제 그만 올라가 보자고
이십 리 학교 길 달려오는 동안 다 흘리고 왔는지
그 말만 하고 앞장 서 걷던 하석근 아저씨.
금산 입구에 접어들어서야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너 아부지가 돌아가셨……
그날 밤
너럭바위 끝으로
무뚝뚝하게 불러내서는
앞으로 아부지 안 계신다고 절대
기죽으면 안 된대이, 다짐받던
그 때 이후
살면서 기죽은 적 없었지요.
딱 한 번, 알콩으로 꿩 잡은 죄 때문에
두 살배기 딸 먼저 잃은 아저씨
돌덩이 같은
눈물 앞에서만 빼면 말이에요.
그 날 이후.
중학교에 들어간 첫해 여름이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의 절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 절에는 땔감 할 나무를 베고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하석근이라는 처사가 있었다.
어느 날, 하씨 아저씨가 학교로 찾아왔다.
“…너그 아부지가… 돌아가셨…….”
금산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산길을 오르는 동안 차츰 눈앞이 흐려졌다. 발이 돌부리에 채이고도 아픈 것을 몰랐다. 발자국 소리에 산 꿩이 놀라서 푸드득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산에서 자랐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재가 매우 슬프고 두려웠다. 나는 가끔 적막한 산이 싫었다. 오밀조밀 모여 앉은 세속 동네의 단란한 모습이 부러워 일부러 끼니때가 되도록 친구 집에 눌러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국밥을 얻어먹곤 했던 터라, 아버지의 부음은 내 어린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고 아리게 했다.
그날 밤늦게 하씨 아저씨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감나무 옆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손마디만 뚝뚝 꺾다가 한참 뒤에야 말을 꺼냈다.
“그때 난 니보다 더 어렸는데, 아부지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기를 못 펴고 살았다.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들을까 늘 마음을 졸였지. 니는 절대로 그러지 마라.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기죽으면 안 된대이.”
그날 밤 아저씨가 해준 한마디는, 이후로 아버지의 존재 자체만큼이나 큰 무게로 다가왔다. 불콰해진 얼굴로 다독거려주던 그 더벅손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를 학교 뒷산 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온 날 밤, 아저씨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절대 기죽지 말그래이.”
나는 힘들거나 예기치 않은 난관에 빠질 때마다 그때 그 손을 생각한다. 그는 나에게 힘들고 지칠 때마다 기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졌을 때 아픔을 나누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그의 삶과 얼마나 겹쳐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때 그 말 한 마디가 내 일상생활의 뿌리가 되었고, 나중에는 〈하석근 아저씨〉라는 시까지 낳게 해주었다.
그는 학벌도 경력도 재산도 없는 산골 처사였지만, 슬픔의 밑바닥을 토닥이며 뜨거운 심장으로 나를 일으켜준 ‘격려의 멘토’이다. 그는 격려가 필요한 상황에는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많은 말보다는 한마디 진심으로 상처를 도닥여준 사람이었다. 지금껏 나는 그만큼 가슴에 남는 격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심장의 뿌리를 덥혀주는 것
‘격려(encouragement)’라는 말은 라틴어 ‘심장(cor)’에서 나왔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심장을 준다’는 것, 즉 뜨거운 심장을 주듯 마음의 뿌리를 덥혀주는 것이 바로 격려다. ‘용기(courage)’라는 말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니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격려의 힘》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사업가 돈 베넷은, 한쪽 다리를 잃고도 목발에 의지해 해발 4,392미터의 레이니어 산을 탔다. 가장 큰 고비는 빙원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일반 등반가들은 양쪽 발에 아이젠을 쓰면 되지만, 그는 발이 하나밖에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자기 몸을 얼음 위로 넘어뜨린 다음 최대한 끌어당겨 전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나간 뒤 또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넘어져야 했다. 말 그대로 그 넓디넓은 빙원을 온몸으로 건너야 했다.
이 특별한 등반에 함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딸 캐시였다. 캐시는 팀 리더가 얼음에 구멍을 뚫어 베넷이 눈 위로 넘어질 수 있도록 하는 네 시간의 사투 내내,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눈 위로 넘어질 때마다 이렇게 소리쳤다.
“할 수 있어요, 아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빠, 아빠는 할 수 있어요!”
베넷은 딸의 목소리에 힘을 얻었고 사력을 다해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눈물겨운 노력 끝에 드디어 정상을 밟았다. 캐시가 가진 믿음과 격려의 외침이 그의 가슴에 결의와 용기를 북돋운 것이다.
격려는 소통의 통로다
격려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잃었을 때, 하씨 아저씨의 격려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로 나는 동료나 부하들을 감동시키는 ‘격려의 힘’이야말로 깊고 깊은 인간관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곤 한다.
이 격려의 마력은 혼자만의 세계가 아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영역에서 더욱 빛난다. 그것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나, 제법 노련해진 사회인이나, 중년 고개를 넘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이들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의 말을 건네 보라.
“지금도 잘하고 있어. 자넨 우리의 희망이잖나!”
당신이 회사에 다닌다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신입사원에게 후원하는 셈치고 따뜻한 한마디를 던져 보라. 미처 생각지 못한 엄청난 결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있어서 난 참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이 한마디에 아내와 남편 모두 엔돌핀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살다 보면 처음에는 ‘눈치’도 보다가, 점차 자기 내부의 시각으로 바깥세상을 재단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서러운 것이 있다면, 이처럼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닫힌 벽에 창을 내고 소통의 문을 만들어주는 통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대화’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통로가 ‘격려’다.
격려의 힘은 시소와 닮았다. 받을 때와 줄 때 시소도 높낮이가 달라지듯이, 인간관계도 서로의 균형을 잡아주고 함께 갈 때 아름다운 힘이 솟는다.
사실 우리는 늘 격려를 필요로 하는 ‘결핍’의 주인이자, 누군가에게 격려를 해줄 수 있는 ‘배려’의 친구이다.
필자 소개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시인, 1988년 입사 후 주로 문화부에서 문학, 출판 분야 담당. 한경닷컴에 '고두현의 그래 이 책이야!' 칼럼 연재.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서 <독서가 행복한 회사>.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참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제 그만 올라가 보자고
이십 리 학교 길 달려오는 동안 다 흘리고 왔는지
그 말만 하고 앞장 서 걷던 하석근 아저씨.
금산 입구에 접어들어서야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너 아부지가 돌아가셨……
그날 밤
너럭바위 끝으로
무뚝뚝하게 불러내서는
앞으로 아부지 안 계신다고 절대
기죽으면 안 된대이, 다짐받던
그 때 이후
살면서 기죽은 적 없었지요.
딱 한 번, 알콩으로 꿩 잡은 죄 때문에
두 살배기 딸 먼저 잃은 아저씨
돌덩이 같은
눈물 앞에서만 빼면 말이에요.
그 날 이후.
중학교에 들어간 첫해 여름이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의 절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 절에는 땔감 할 나무를 베고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하석근이라는 처사가 있었다.
어느 날, 하씨 아저씨가 학교로 찾아왔다.
“…너그 아부지가… 돌아가셨…….”
금산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산길을 오르는 동안 차츰 눈앞이 흐려졌다. 발이 돌부리에 채이고도 아픈 것을 몰랐다. 발자국 소리에 산 꿩이 놀라서 푸드득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산에서 자랐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재가 매우 슬프고 두려웠다. 나는 가끔 적막한 산이 싫었다. 오밀조밀 모여 앉은 세속 동네의 단란한 모습이 부러워 일부러 끼니때가 되도록 친구 집에 눌러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국밥을 얻어먹곤 했던 터라, 아버지의 부음은 내 어린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고 아리게 했다.
그날 밤늦게 하씨 아저씨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감나무 옆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손마디만 뚝뚝 꺾다가 한참 뒤에야 말을 꺼냈다.
“그때 난 니보다 더 어렸는데, 아부지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기를 못 펴고 살았다.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들을까 늘 마음을 졸였지. 니는 절대로 그러지 마라.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기죽으면 안 된대이.”
그날 밤 아저씨가 해준 한마디는, 이후로 아버지의 존재 자체만큼이나 큰 무게로 다가왔다. 불콰해진 얼굴로 다독거려주던 그 더벅손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를 학교 뒷산 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온 날 밤, 아저씨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절대 기죽지 말그래이.”
나는 힘들거나 예기치 않은 난관에 빠질 때마다 그때 그 손을 생각한다. 그는 나에게 힘들고 지칠 때마다 기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졌을 때 아픔을 나누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그의 삶과 얼마나 겹쳐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때 그 말 한 마디가 내 일상생활의 뿌리가 되었고, 나중에는 〈하석근 아저씨〉라는 시까지 낳게 해주었다.
그는 학벌도 경력도 재산도 없는 산골 처사였지만, 슬픔의 밑바닥을 토닥이며 뜨거운 심장으로 나를 일으켜준 ‘격려의 멘토’이다. 그는 격려가 필요한 상황에는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많은 말보다는 한마디 진심으로 상처를 도닥여준 사람이었다. 지금껏 나는 그만큼 가슴에 남는 격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심장의 뿌리를 덥혀주는 것
‘격려(encouragement)’라는 말은 라틴어 ‘심장(cor)’에서 나왔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심장을 준다’는 것, 즉 뜨거운 심장을 주듯 마음의 뿌리를 덥혀주는 것이 바로 격려다. ‘용기(courage)’라는 말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니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격려의 힘》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사업가 돈 베넷은, 한쪽 다리를 잃고도 목발에 의지해 해발 4,392미터의 레이니어 산을 탔다. 가장 큰 고비는 빙원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일반 등반가들은 양쪽 발에 아이젠을 쓰면 되지만, 그는 발이 하나밖에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자기 몸을 얼음 위로 넘어뜨린 다음 최대한 끌어당겨 전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나간 뒤 또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넘어져야 했다. 말 그대로 그 넓디넓은 빙원을 온몸으로 건너야 했다.
이 특별한 등반에 함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딸 캐시였다. 캐시는 팀 리더가 얼음에 구멍을 뚫어 베넷이 눈 위로 넘어질 수 있도록 하는 네 시간의 사투 내내,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눈 위로 넘어질 때마다 이렇게 소리쳤다.
“할 수 있어요, 아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빠, 아빠는 할 수 있어요!”
베넷은 딸의 목소리에 힘을 얻었고 사력을 다해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눈물겨운 노력 끝에 드디어 정상을 밟았다. 캐시가 가진 믿음과 격려의 외침이 그의 가슴에 결의와 용기를 북돋운 것이다.
격려는 소통의 통로다
격려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잃었을 때, 하씨 아저씨의 격려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로 나는 동료나 부하들을 감동시키는 ‘격려의 힘’이야말로 깊고 깊은 인간관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곤 한다.
이 격려의 마력은 혼자만의 세계가 아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영역에서 더욱 빛난다. 그것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나, 제법 노련해진 사회인이나, 중년 고개를 넘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이들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의 말을 건네 보라.
“지금도 잘하고 있어. 자넨 우리의 희망이잖나!”
당신이 회사에 다닌다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신입사원에게 후원하는 셈치고 따뜻한 한마디를 던져 보라. 미처 생각지 못한 엄청난 결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있어서 난 참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이 한마디에 아내와 남편 모두 엔돌핀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살다 보면 처음에는 ‘눈치’도 보다가, 점차 자기 내부의 시각으로 바깥세상을 재단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서러운 것이 있다면, 이처럼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닫힌 벽에 창을 내고 소통의 문을 만들어주는 통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대화’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통로가 ‘격려’다.
격려의 힘은 시소와 닮았다. 받을 때와 줄 때 시소도 높낮이가 달라지듯이, 인간관계도 서로의 균형을 잡아주고 함께 갈 때 아름다운 힘이 솟는다.
사실 우리는 늘 격려를 필요로 하는 ‘결핍’의 주인이자, 누군가에게 격려를 해줄 수 있는 ‘배려’의 친구이다.
필자 소개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시인, 1988년 입사 후 주로 문화부에서 문학, 출판 분야 담당. 한경닷컴에 '고두현의 그래 이 책이야!' 칼럼 연재.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서 <독서가 행복한 회사>.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