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언론들 "MB가 전국에 '반정부' 자초"
<뷰스칼럼> MB정권의 구조적 숙명은 '반쪽 여대야소'
친이계 정의화 최고위원 겸 세종시특위위원장이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서울을 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정부의 세종시 특혜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의미다.
"영남, 반정부 지역이 된듯한 분위기"
익명을 요구한 PK의 한나라당 초선의원도 "PK 최대유력지인 <부산일보>와 TK 최대유력지인 <매일신문>을 보면 요즘 영남이 과거 호남처럼 완전히 반정부 지역이 된듯한 착각이 들 지경"이라며 "영남 여론이 이렇게 바뀌면 세종시 수정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영남 신문을 보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갔다.
한 예로 23일자 <부산일보>는 "세종시 수정을 위한 정부의 대책들이 세종시에 강력한 특혜를 부여해 기존 결정사항들을 뒤집는 방식으로 진행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신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며 "위기를 일시적으로 만회하려다 전국에 '반(反)정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셈"이라며 최근의 영남 민심을 '반정부'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날자 <매일신문> 역시 "행정도시 세종시가 카멜레온처럼 온갖 색으로 덧칠되면서 대구경북이 최대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다"며 "정부가 지방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까지 세종시를 '교육+과학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법 개정을 마칠 그림을 그리고 있어 대구경북은 미래의 꿈인 의료는 물론 '교육'과 '과학'까지 다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며 지역민심을 자극했다.
<매일신문>은 이날자 사설을 통해 "수십 년 동안 먹고살 거리를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지방을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세종시 수정으로 피해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지방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이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력 경고하기도 했다.
이들 지역은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을 꺼냈을 때만 해도 수정 찬성 여론이 원안 고수 여론보다 높던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영향력이 큰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의 신의"를 명분으로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데다가, 최근 정부가 부산 삼성전기 증설공장, 중이온가속기, 매머드 의료과학시티 등을 세종시에 세우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풍향이 완전 급변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TK 여론조사에서 세종시 원안 고수 여론이 수정론을 앞질렀다는 결과까지 나올 지경이다.
"영남 분위기, 지난해 4월 총선때와 흡사"
이런 영남의 난기류는 지난해 4월 총선 때와 흡사하다.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자행되면서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가 대거 탈당, 무소속 출마를 했을 때 영남 언론들은 MB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친박의 저항을 "찻잔 속 태풍"에 비유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밖에 안되는 데 무슨 놈의 저항이냐고 일축했다. 중앙언론들 기류도 비슷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큰 이변'은 없을 것이라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지역언론들은 달랐다. '물밑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현장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역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중앙언론들과 자못 달랐다. 친박계 상승기류가 무서울 정도며, 친이계가 참패할 것 같다는 조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결국 투표함을 열었을 때, 지역언론들의 관측이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의 힘'의 승리였다.
'말 바꿔타기' 조짐까지?
"지금 현지 정치권 분위기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보다 더 심각하다."
영남권의 한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험악한 지역여론에 당황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친이계 의원, 단체장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21일 발표된 주간 <시사IN>이 <리얼미터>를 통해 실시한 대구경북 여론조사가 상당히 큰 충격을 가했다. 세종시 논란과 관련, 박근혜 전 대표의 '원안+α’ 쪽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응답이 47.5%인 반면, 정부의 ‘과학 또는 기업도시’로 수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28.4%에 그쳤다.
더 충격적인 것은 TK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57.4%가 나온 반면, 이 대통령은 6.6%밖에 안나왔다. 이 대통령이란 답은 유시민 전 장관(10%)보다도 낮았다. 경북에서도 박 전 대표는 54.3%였으나, 이 대통령은 11.4%에 그쳤다.
앞의 의원은 "앞으로 2년여 뒤에 총선이 있다. 지금 여론대로라면 친이계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얘기"라며 "친이계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일부 영남 친이계 의원들이 이례적으로 실명으로 MB정부의 세종시 특혜를 맹비난하고 나선 것과 관련, 세종시 논란을 계기로 말을 바꿔 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반쪽 여대야소'의 숙명
이 대통령은 최근 "인기 끌고 인심 얻는 데 관심 없다"고 했다.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을 모두 소신껏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대통령 발언이 역설적으로 최근의 지지율 하락에 이 대통령이 내심 상당히 압박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해석한다.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중이라면 굳이 이런 비장한 표현을 쓸 리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 지역의 거센 반발을 "지역 이기주의의 발현"이라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MB정부는 지난해 4월 총선이래 외형적으론 '여대야소'이나, 내용적으론 '여소야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영남에 강한 진지를 구축한 친박계가 '여당내 야당'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쪽 여대야소'인 셈이다. 유권자가 만든 또 하나의 절묘한 견제장치다.
이런 불완전 구조에선 여론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을 때만 '반쪽 여대야소'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소신있는 국정운영도 가능할 것이란 의미다.
이 대통령이 며칠 있다가 국민과 만날 예정이다. 국민적 반발이 큰 세종시, 4대강 등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거센 여론의 반발에 밀리는듯 여권 일각에선 세종시에 정부부처 3~5개를 이전하는 궁색한 절충안도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선택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어디 한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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