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교수 "김지하 선생의 이상한 말 들으니..."
"나는 몸을 떨면서 지하 선생의 시를 읽었었다"
황현산 교수는 14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글 <김지하 선생을 추억한다>를 통해 자신이 김 시인의 동향 5년 후배임을 밝힌 뒤, "지하 선생의 담시 ‘오적’과 첫 시집 <황토>가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사병으로 군복무를 할 때의 일이다. 환상적일 정도로 엄혹했던 저 유신독재 시절에, 그것도 병영에서, 내가 이 ‘반역’의 시와 시집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위험하고 기적 같은 도움이 있었던 덕택"이라며 김 시인의 작품을 접했을 때의 몸 떨리던 충격을 전했다.
황 교수는 구체적으로 "‘오적’은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그 등사본을 다른 책들 사이에 넣어서 보내주었다. <황토>는 우리 부대에 유신체제를 홍보하러 나온 정훈장교의 가방 속에서 나왔다. 내가 그 책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자 장교는 그것을 내 책상머리에 놔두고는 다시 찾지 않고 가버렸다"며 "나는 몸을 떨면서 지하 선생의 시를 읽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군에서 전역한 지 얼마 후에 지하 선생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 무렵 고향 집에서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프랑스 소설 하나를 번역하고 있던 나는 틈만 나면 지하 선생의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비녀산과 안장산에 오르고 바닷가의 개펄로 나갔다"며 "나는 내 고향 시인 지하 선생의 눈으로 산과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으며, 거기서 선생이 했을 생각을 나도 하려고 애썼다. 하늘이 거대한 절망으로 땅을 덮을 때, 땅 밑에서 돋아 올라오는 고독하고도 치열한 기운에 몸을 맡길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며 자신에게 김 시인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밝혔다.
그는 그러나 "선생은 요즘 납득하기 어려운 글도 쓰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터뷰도 종종 한다. 선생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며 "그런데 선생의 이상한 말들이 저 초라한 비녀산과 안장산에서 고독하면서도 찬란하게 돋아 오르던 풀잎들을 때아닌 황사처럼 덮을 때는 가슴이 송곳에 찔리는 듯 아프다"며 김 시인의 변화에 느끼는 비애를 토로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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