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번 더 시키고 싶은 대통령 있었나"
<뷰스칼럼> 李대통령이 던진 세가지 '정치 화두'의 이면
화두 1. 개헌
"개헌의 적기가 언제냐고? 국민들이 '아, 이런 훌륭한 대통령은 한 번 더 대통령을 해야 하는데 이를 막는 5년 단임제가 문제'라고 제도의 문제를 느낄 때가 바로 개헌을 할 때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단임제를 도입한 이래 그런 대통령이 있었나?"
헌법자문위원장인 김종인 전 수석이 얼마 전 법학자 등과 함께 한 자리에서 "개헌의 적기가 언제냐"는 질문에 행한 답이다.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김 전 수석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국민이 공감하지 않는 개헌, 당리당략에 따른 개헌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개헌이 대단히 어렵게 돼 있다. 우선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어렵게 합의했다 하더라도, 그 후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석하고 투표자 절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법이 이렇게 엄격하게 돼 있는데,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 개헌투표에 국민 절반 이상이 참석할 것이라고 보나?"
요컨대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현행 5년 단임제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개헌 문제를 꺼낼 게 아니라 퇴임 때 "아, 저런 훌륭한 대통령은 한번 더 대통령을 시켜야 하는데"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도록 노력한 뒤 퇴임 때 다음 정권이 개헌을 하도록 국민 여론을 유도하는 게 정석이라는 지적이었다.
화두 2. 지자체 광역화
지자체들이 지금 난리다. 정부가 전국 지자체를 60~70개로 통폐합하기로 하고, 자발적으로 통폐합하는 지자체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당근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가세해 현재 25개인 구를 10개로 합치도록 유도하겠다며 기름을 부었다.
문제는 각 지자체 주민의 속내가 다르다는 데 있다. 한 예로 최대 통합이벤트로 꼽히는 성남, 광주, 하남의 경우 지자체장들은 원칙적으로 통합한다는 쪽이나,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 하남이 지역구인 문학진 민주당 의원이 최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절반이 넘는 53.5%의 하남 주민이 성남, 광주와의 통합보다는 송파, 강동과의 통합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권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야 집값도 오르고 브랜드 가치도 높아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송파나 강동 반응은 냉랭하다. 반대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최근 한 신문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도 속내가 복잡하기란 마찬가지다.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는 모두 통합에 찬성이나, 소득이 비슷한 강남 3구간 통합을 선호한다. 그래야 '강남'이란 브랜드가 계속 유지되기 때문. 서울시는 서초와 동작을 합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나, 서초구는 펄쩍 뛰고 있다. 새로운 강북 개발지인 광진구의 경우도 원래 한몸이었던 성동구와의 재결합에 강력 반대하는 등, 모든 구는 예외 없이 집값 등이 오를 때에만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장들의 '짝짓기' 움직임은 맹렬하다. 광역화를 하면 '엄청난 권한'이 이양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재 광역시나 도가 갖고 있는 인-허가권, 특히 '개발권'에 강한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마음대로 재개발을 하고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서울의 한 의원은 "요즘 국회의원은 옛날 국회의원이 아니다"라며 "지역행사에 가보면 구청장을 칙사 대접을 하면서 가장 먼저 거창하게 소개하고 박수 소리도 가장 뜨겁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의원 누구'도 참석했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한 구에 의원이 2, 3명씩 있다 보니 그런 점도 있지만 구청장은 예산과 인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마당에 구 몇 개씩을 합해 '슈퍼 구'들이 탄생하고 지역 개발권까지 갖게 된다면 통합구청장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방의 한 의원은 "지자체 도입후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지방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자체장들은 모두 선거를 의식하다보니 지방재정이 망가지든 말든 일단 빚을 내서라도 길을 뚫고 공원을 만들고 지역축제를 벌이는 등 전시행정에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연 광역화를 한다고 이런 문제가 해소될지 의문"이라며 "도리어 전국적으로 난개발이 심화되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지방재정이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지금 '광역화'의 가장 큰 동인은 '집값'이자 '개발권'이다.
화두 3. 선거구제
경실련은 이 대통령이 던진 소-중선거구제에 대해 16일 크게 세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소-중 복합선구제는 정치권의 선거구 게리맨더링을 제도적으로 허용해 주는 제도로, 정치권의 편의에 따라 선거구가 획정됨으로써 선거구획정이 여야의 당리에 따른 나눠먹기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복합선거구제나 중대선거구제는 오히려 우리 정치의 폐해인 돈 정치를 양산하고, 정당 내 파벌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제나 복합선거구제는 다당제를 초래하고 일상적인 '여소야대 현상', 즉 일상적인 분점정부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내심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소-중 선거구제의 맹점을 가차없이 파헤친 논평이다.
결. 1980년 전두환의 명언
1980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 유혈사태후 7년 단임제 개헌을 강행할 때다. 전두환은 당시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반대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투표를 하지 않는 거다."
반대를 해서도 안 되고, 투표장에 안 나와도 안된다는 살벌한 경고였다. 당시 통반장들은 누가 투표를 안하는지 감시하고 투표를 독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듯 7년 단임제 개헌은 '공포' 아래 통과됐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개헌 등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현행 제도에는 문제가 적잖다. 하지만 지금은 30년 전이 아니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필요로 느끼지 않는 억지 개헌 등은 불가능하다.
"개헌은 국민의 동의 없이 국회에서 논의되면 안된다"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얘기는 그래서 유의미해 보인다. 과연 한나라당 등 정치권이 '국민'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정치개혁을 추진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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