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와 김종인, '거품과의 전쟁'
<뷰스칼럼> "거품은 망국의 첩경", 한국경제 중대분수령
중국에 오랜 기간 체류했던 한국은행 간부의 말이다.
'거품과의 전쟁' 선택한 중국 지도부
요즘 중국지도부가 경제를 운영하는 상황을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8월 한 달, 중국주가는 최악이었다. 한 달 새 22%나 폭락하면서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89개 기준지수 중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중국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에겐 정말 '잔인한 8월'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닌가 싶다. 모건 스탠리 출신의 앤디 시에는 31일 <블룸버그 TV>에 출연해 중국 경제의 회복과 관련,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면서 "현재 2667.75인 상하이 증시 종합지수가 2,000 혹은 그 이하로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25% 추가폭락을 예상했다. 그는 과거 중국주가 폭등기 때 향후 도래할 주가 대폭락을 족집게처럼 예측했던 최고의 중국통이다.
왜 이렇게 중국주가는 무섭게 폭락하고 있는 걸까.
중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은 7.9%를 달성했다. 잠재성장률 8%에 거의 도달한 양호한 수치다. 4조위안(5천860억달러)의 엄청난 경기부양정책을 펴고 저리로 돈을 무한대 공급한 결과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대비 지난 7월의 주가는 무려 103%나 폭등했다.
하지만 2분기 실적이 나온 때부터 중국 지도부 내 분위기가 싹 바뀌기 시작했다. 사회과학원을 비롯해 중국 싱크탱크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거품이 잔뜩 끼어있다"는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핫머니 뭉칫돈이 중국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경고도 했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돈줄을 확 조이기 시작했다. 31일 중국 경제전문잡지 <카이징>에 따르면, 8월의 신규 대출은 2천억위안으로 전달의 3천559억위안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금년 상반기 총 7조4천억위안의 신규대출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돈줄 조이기다. 중국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달 중 금융기관들의 자본금 기준을 더 엄격히 해, 은행들의 무분별한 부동산대출 등을 완전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지금 중국의 주가 급락은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어떤 이는 "너무 빠른 출구전략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지도부는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몰락으로 몰고 간 자산거품을 중국에선 용납 못한다"는 게 중국지도부의 선택인 것이다.
중국 "서방은 우리를 열 토막 내려 한다"
중국은 자신들의 독주를 서방이 방치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인들은 사석에서 "틈만 보이면 서방은 다시 우리를 열 토막 내려 한다"고 말하곤 한다. 1세기 전에 당했던 처절한 역사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틈'을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한국이 환란을 극복했을 때, 중국정부는 한국 정부관계자나 금융전문가들을 부지런히 초청해 심포지엄을 갖곤 했다. 그들은 한국에 "어떻게 하다가 환란을 당했나", "어떻게 환란을 빨리 극복할 수 있었나"를 조목조목 물었다. 아시아의 잘 나가던 호랑이가 서방에게 초토화된 경험을 배워, 자신들이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같은 차원에서 중국은 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게 됐는가도 집요하게 분석, 연구했다. 또한 언제쯤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붕괴될지도 다각도로 분석중이다. 요즘 중국이 전 세계 탄광, 유전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해 자원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자원전쟁에 대비하는 동시에 언젠가 휴지가 될 달러화를 쌓아놓고 있어선 안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진다.
이런 빼어난 중국 지도부가 있기에 도도한 '미국과의 쟁패'가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1990년 한국에서 벌어진 일
1980년대 말 노태우 정권 때 일이다. 대선공약인 아파트 200만호 건설 때문에 투기붐이 일면서 부동산 값이 폭등을 거듭, 민심이 험악해졌다. '보통사람' 공약을 내건 노태우가 '보통사람'을 때려잡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초 당시 야인이던 김종인 전 의원을 불렀다. 우선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원래 집권하면 중용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약속을 어긴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경제를 맡아달라" 했다.
김 전 의원은 이때 "주가가 반 토막 나 아우성이 나도 관여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당시 주가는 부동산 폭등과 함께 급등, 1000을 막 돌파한 시점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김종인은 경제수석이 됐다. 5대 대기업부터 닦달하기 시작했다. 비업무용토지를 모두 팔라 했다. 안하면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알겠다고 경고했다. 눈물을 머금고 이들이 땅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한 30대 대기업들까지 알아서 경쟁적으로 팔았다. 그 결과 당초 목표치의 두 배에 달하는 비업무용 토지들이 팔렸고, 부동산투기는 진정됐다.
부동산거품이 빠지면서 주식거품도 함께 빠졌다. 깡통계좌들이 속출하면서 연일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노태우 대통령도 약속을 지켰다. 그러다가 주가가 500선마저 무너지던 날, 노 대통령이 김종인 수석에게 한마디 했다. "아직도 더 떨어질 건가" 김 수석은 "이제 바닥에 왔습니다"고 답했다. 실제로 주가는 480선을 바닥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1990년 일 때문에 김 전 수석은 지금도 재계가 불편해하는 1순위 인사 중 하나다. 하지만 김 전 수석은 이렇게 당당히 말한다.
"내가 재계를 구해준 거야. 그냥 부동산들을 갖고 있었어 봐, 그 땅을 담보로 얼마나 많은 부채를 졌겠나? 그랬다간 아마도 환란 때 한군데도 살아남지 못하고 싹 쓰러졌을걸"
과거 우리나라에도 지금 '거품과의 전쟁'을 선포한 중국지도부 못지않은 '경제 거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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