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조화롭게 공조협력하며 국가발전과 사회보장을 다지며 ‘행복공화국’을 건설한 데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법이 영향을 미쳤다. 흔히들 ‘이원집정제’라 부르는 대통령과 의회의 이중지배체제(프랑스에서 ‘준(準)대통령제’라 부른다)와 '2차 결선투표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도 드골이 만들어 21세기 세계에 남긴 프랑스의 정치명품이다.
이원집정제는 좌파대통령이 의회선거에 패배할 경우 우파정부를 구성하는 의회다수제의 수용을 뜻한다. 한국은 의회다수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소수내각을 구성해 정치불안정과 혼란이 지속되지만, 프랑스에서는 미테랑시대에 2번의 우파정부, 시라크시대에 1번의 좌파정부구성으로 이른바 동거정부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큰 혼란을 겪지 않았다. 동거정부는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외교와 국방을 전담하고, 의회 다수로 구성된 정부는 내정을 전담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의 미테랑과 시라크대통령은 큰 잡음없이 동거정부를 잘 운영했다. 당파정치를 지양하고 국익우선주의를 좌우파가 철저히 지켰고, 드골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이념이 공조와 협력을 잘 집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정치의 대화와 타협, 공조와 협력의 정치관행은 '2차 결선투표제'가 아니면 실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프랑스헌법 제7조는 대선방식을 2차 다수결투표(결선투표제)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출되기 위해서는 총투표자의 절대과반수+1표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되려면 절대과반수+1표를 획득해야 하지만, 이 경우가 아니면 2차 투표에서는 한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이다. 2차에서는 1등하면 당선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2차 결선투표에 출전하는 후보는 1차투표에서 1~2위 득표한 2명만이 출전함으로 승자는 절대과반수+1표를 넘게 마련이다. +1을 부친 이유는 과반수만으로는 유권자 전체의 의사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의 전체의사에 관해 “절대과반수 이상”이라야 한다고 말하며, 인구가 많은 프랑스 같은 나라는 국민전체의 만장일치를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정치에서 절대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전체의사로 간주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프랑스선거의 2차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는 정당은 국민의 전체의사를 대표함으로 소수파는 다수파의 정책을 방해하거나 막지 않는다는 의회주의 원칙을 준수한다. 프랑스 등 유럽의회가 찬반토론을 거친 후 표결로 정책을 결정하며, 소수파가 불만을 품거나 승복하지 않고 시위를 펴는 등의 반의회주의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사회당이 표결에 앞서 일제히 국가를 합창하고 퇴장한 사례가 가장 과격한 투쟁의 경우이다. 당연히 드골파는 표결로 정책을 채택하고 사르코지 정부는 집행하는 것이다.
이원집정제와 2차 결선투표제는 패키지 정치로서 오늘날 세계차원의 정치명품으로 많은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핀란드가 도입했고, 냉전이후에는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루마니아, 체코 등 대통령제 국가들이 모두 채용했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도 민주화 후 2차 결선투표 방식으로 선거를 치른다. 미국을 제외한 대통령제 국가들이 거의 모두 2차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드골 묘 옆에는 평범한 시민들의 묘들이 함께 하고 있다. ⓒ주섭일 결선투표제의 5가지 장점
2차 결선투표제는 여러 가지 장점이 갖고 있다.
1) 군소정당을 제거하는 대신, 양대정당체제로 정당연합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1차에서 모든 정당들이 후보를 내지만, 결선에서는 1-2등만이 출전함으로 대체로 우파와 좌파후보의 양자대결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좌우파의 군소정당 지지 유권자는 양대정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며, 1차 낙선후보들도 2차 출전후보와 정책공조협의 후 지지자들에게 이념이 비슷한 후보를 지지하자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2) 대통령(또는 국회의원)과 소속당의 정책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다. 1차 투표 때 마타도어나 흑색선전, 허위공약 등으로 유권자를 속여 득표할 수 있으나, 양자대결 선거전에서는 철저한 정책경쟁으로 술수나 흑색선전 등이 먹히지 않는다. 국가경영과 관리능력과 외교-국방-교육에 이르기 까지 정책과 후보의 능력과 리더십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의회의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건이 터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2차 투표에서 유권자가 무능하거나 흑색선전, 정치 쇼로 눈가림하는 후보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3) 당선된 대통령은 국민전체의사를 대표함으로 공약집행을 단행할 수 있다. 야당이 정책집행을 방해하는 시위나 점거농성 등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국민전체의사’를 대변하는 지도자이며, 소수야당이 “국민을 위한다거나 국민의 이름을” 팔아 정책집행을 방해할 수 없다. 만일 야당이 투표불복운동을 한다면 차기선거에서 집권세력에서 제거된다.
4) 한국형 지역주의는 2차 결선투표에서 맥추지 못할 것이다.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후보는 정책경쟁에서 패배하기 마련으로, 바로 유권자들의 강력한 거부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드골, 미테랑과 같은 20세기 최고의 지도자는 실제 결선투표가 배출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철저한 검증과 정책대결이 이루어지는 2차 결선투표가 무능, 부패, 무식, 리더십결여 등을 폭로함으로서 대정치인만이 당선의 영광을 얻는 선거방식이다.
개헌 논의때 참고할만
아무튼 드골이 만든 2차 결선투표제와 중도실용주의라는 ‘새로운’ 우파모델은 프랑스가 21세기의 세계에 내놓은 정치명품으로, 우리가 정치선진화를 위해 참고할만 하다.
때마침 8.15경축사에서 MB가 선거법 개정을 거론한 이유로 지역주의를 제시했고, 국회에서도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제를 1차 차기 대선방식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임기4년 중임제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실패한 바 있다. 이를 답습할 이유가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드골주의와 2차 결선투표제라는 드골의 업적은 좌우를 초월하는 중도실용주의의 만든 정치명품으로, 한국정치권도 적극 검토해볼만 하다.<끝>
코롱베 마을에서 본 드골 기념관 원경. ⓒ주섭일 필자 소개
언론인. 1937년 생. 파리 13대 정치학 박사, 파리 1대 프랑스혁명연구소 연구원,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 국제문제 대기자. 저서 <프랑스혁명과 한말 변혁운동><지도자와 역사인식><프랑스의 대숙청><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김정일과 부시의 대타협><사회민주주의 길-서구 좌우파의 실용주의>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