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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 DJ 납치는 정부 범행 공식 인정”

<아사히> “박정희 지시 '부정할 근거 없다' 결론 ”

한국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에 대한 정부측의 개입을 조만간 공식 인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락 중정부장 직접 범행 지시하고 20여명 역할 분담 실행"

26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서울발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1973년 8월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이 당시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의한 조직적 범행이었다"는 결론을 담은 1백쪽 분량의 보고서를 마련했으며 국가정보원이 조만간 이를 공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역대정권은 일관되게 사건에 대한 관여를 부정해 오고 있어 한국 정부가 DJ 납치사건에 정부 개입을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올린 ‘김대중 사건, 한국정부가 관여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건 관계자 50여명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은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범행을 지시하고 20여명이 역할을 분담, 실행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러한 사실은 복수의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며, "납치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됐던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동운 당시 서기관은 지금 한국에서 건재하며 규명위원회에 자신이 범행에 개입했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복수의 전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이후락 부장으로부터 범행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특히 초점이 돼온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여부에 대해 보고서는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부정할 근거는 없다"고 결론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이후락 전 부장이 고령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조사 받기를 거부한 탓에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의 개입 및 박 대통령의 지시 여부는 최종적으로는 확인되지 못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조사위 관계자는 "전후의 민주화 운동탄압사건 등에 대한 재검 증거에서는 대통령의 지시가 확인되어 있어, 관여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적어도 납치 후의 경과는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부 증언자는 "납치한 호텔에서 (DJ를) 죽이려 했다"고 증언했으나 이를 부인하는 증언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납치사건 전체의 흐름 속에서 DJ를 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지시 자체에 '살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고 결론내렸다.

한국 정부, DJ에 사과 검토.사건 가담자 처벌 않기로

한국 정부는 사건 이듬해 중단됐던 수사의 재개나 사건에 관여했던 전 중앙정보부 요원 등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DJ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는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공권력의 관여를 처음으로 인정한데 대해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국내 문제로서 사건의 최종적 처리이다"라며 일본과의 관련을 다시 문제 삼을 의도는 없음을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사건 후 한일 양국 정부는 2번에 걸쳐서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며 진상규명을 보류했으나, 노무현 정권이 군정시대의 민주화 운동탄압사건의 재검토를 지시함에 따라 작년 2월부터 국정원장 자문 기관인 규명위 위원들이 재조사를 실시해왔다며, 당시 내부문서의 대부분이 이미 처분돼 있어 50여명의 사건 관계자들로부터 청취를 거듭해 범행의 구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왔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또 일본에서는 사건 관계자의 ‘해외도피’로 시효가 중단된 상태로 형식상으로는 지금도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사건 당시 일본의 수사 당국은 초기부터 한국의 공권력에 의한 일본 주권 침해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피해자나 가해자의 직접 청취 등을 요구했지만 한국은 관계자들을 출국시키고 관여를 부정하면서 거친 외교적 마찰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73년 11월의 제 1차 정치적 해결은 김종필 당시 총리가 박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방일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26628;) 수상과 회담한 뒤 진상규명에 양국이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암묵적인 양해를 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때 정치적 해결을 서두른 것은 일본 정부측이었던 사실이 올해 2월에 공개되었던 한국정부의 외교 문서에서 밝혀졌다고 전했다.

또 3월에 공개되었던 한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75년의 미야자와 기이치(宮&#27810;喜一) 외상의 방한에 맞추어 한국이 구상서를 제출한 제 2차 정치적 타협도 일본측의 주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신문은 지난 98년부터 5년간 대통령을 맡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도 철저한 해명을 지시하지 않았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해 2월과 3월 아사히 신문 등의 취재에 대해 “사건은 한국정부가 일으켜 일본 정부가 정치적으로 처리했다. 나의 인권을 포기한 정치적 타협은 일본 외교의 오점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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