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그린스펀의 파생상품 감싸기가 재앙 불러"
'그린스펀 책임론' 봇물, 파생상품시장 531조달러로 커져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미국 금융계의 황제였던 앨런 그린스펀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심판대에 올렸다.
그가 파생상품시장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 규제로 일관하는 바람에 결국 예방이 가능했던 금융시스템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파생상품은 시장에서 위험을 안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떠안을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이전시키는 뛰어난 수단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파생상품 예찬론자였다.
뉴욕타임스(NYT) 9일 인터넷판에서 한때 미 금융계를 좌지우지해온 그린스펀 전 의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그 스스로 "한 세기에 한번 생길까말까한 사건"으로 지칭한 금융위기의 충격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남긴 유산이 파생상품 시장의 호황과 비극적 붕괴의 일대기와 맞닿아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금융규제 전문가인 샌디에이고대 프랭크 파트노이 교수는 "파생상품 시장이 현재 금융위기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린스펀 전 의장은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탈규제 정책을 선도해왔던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만약 그린스펀 전 의장이 FRB 의장으로 재임하던 1987년부터 2006년 사이에 다른 정책을 폈다면 현재의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위험을 피하려는 게 파생상품의 목적이었지만 그 규모가 커지고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게 됐고, 결국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20년전만 해도 미미한 규모였던 파생상품 시장은 지난 2002년 106조달러로 커진 뒤 현재 531조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NYT는 1990년대초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그린스펀 의장은 시장의 기능을 우선시하며 이를 억눌렀다고 소개했다.
클린턴 행정부때 FRB의 2인자였던 앨런 블라인더 현 프린스턴대 교수는 "소극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도 그린스펀 전 의장에 의해 묵살되곤 했다"며 "당시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의 성장을 일관적으로 독려했다"고 말했다.
아서 레빗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그린스펀 재임 당시 금융당국 인사들은 그의 권위에 눌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질문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그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1997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파생상품 규제에 나섰으나 이는 그린스펀과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CFTC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규제정책의 추진을 고수했고, 1998년 가을에 발생한 헤지펀드 `LTCM'의 도산 위기는 CFTC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결국 CFTC의 시장규제 권한을 6개월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CFTC의 브룩슬리 본 위원장은 그 이듬해인 1999년 사임하기에 이른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도 2003년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소수의 파생상품 딜러들의 손에 지나친 위험관리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여전히 월가의 금융인들이 지나친 탐욕을 부렸던 것이 위기를 초래하게 된 원인이라며 과거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올해 출간된 자신의 `격동의 시대(Age of Turbulence)' 보급판 저술 후기에서 정부가 호황기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규제정책을 펴지 않은 데 대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파생상품시장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 규제로 일관하는 바람에 결국 예방이 가능했던 금융시스템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파생상품은 시장에서 위험을 안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떠안을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이전시키는 뛰어난 수단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파생상품 예찬론자였다.
뉴욕타임스(NYT) 9일 인터넷판에서 한때 미 금융계를 좌지우지해온 그린스펀 전 의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그 스스로 "한 세기에 한번 생길까말까한 사건"으로 지칭한 금융위기의 충격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남긴 유산이 파생상품 시장의 호황과 비극적 붕괴의 일대기와 맞닿아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금융규제 전문가인 샌디에이고대 프랭크 파트노이 교수는 "파생상품 시장이 현재 금융위기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린스펀 전 의장은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탈규제 정책을 선도해왔던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만약 그린스펀 전 의장이 FRB 의장으로 재임하던 1987년부터 2006년 사이에 다른 정책을 폈다면 현재의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위험을 피하려는 게 파생상품의 목적이었지만 그 규모가 커지고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게 됐고, 결국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20년전만 해도 미미한 규모였던 파생상품 시장은 지난 2002년 106조달러로 커진 뒤 현재 531조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NYT는 1990년대초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그린스펀 의장은 시장의 기능을 우선시하며 이를 억눌렀다고 소개했다.
클린턴 행정부때 FRB의 2인자였던 앨런 블라인더 현 프린스턴대 교수는 "소극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도 그린스펀 전 의장에 의해 묵살되곤 했다"며 "당시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의 성장을 일관적으로 독려했다"고 말했다.
아서 레빗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그린스펀 재임 당시 금융당국 인사들은 그의 권위에 눌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질문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그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1997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파생상품 규제에 나섰으나 이는 그린스펀과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CFTC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규제정책의 추진을 고수했고, 1998년 가을에 발생한 헤지펀드 `LTCM'의 도산 위기는 CFTC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결국 CFTC의 시장규제 권한을 6개월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CFTC의 브룩슬리 본 위원장은 그 이듬해인 1999년 사임하기에 이른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도 2003년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소수의 파생상품 딜러들의 손에 지나친 위험관리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여전히 월가의 금융인들이 지나친 탐욕을 부렸던 것이 위기를 초래하게 된 원인이라며 과거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올해 출간된 자신의 `격동의 시대(Age of Turbulence)' 보급판 저술 후기에서 정부가 호황기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규제정책을 펴지 않은 데 대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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