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내 사전에 인책인사는 없다'인가

<기자의 눈> 경제-교육 실정 인정않는 '충성심 개각'

노무현 대통령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경부, 교육부, 기획예산처 3개 부처 '개각'을 금일중 단행한다는 방침으로 전해진다. 인터뷰 조작 논란을 일으킨 국정홍보처장조차 개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병준 전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기용과 관련, "열린우리당내 일부 소수 의원들이 이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에 관한 문제이므로 의원들도 수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병준 반대 여론을 열린우리당내 소수파의 이견으로 일축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 탈당'을 우려한 열린우리당 수뇌부도 이날 '김병준 교육부총리'를 수용키로 당론을 정했다.

그러나 과연 당내 소수파의 이견뿐인가.

야당들 '전면개각' 요구, 시민단체 '김창호처장 경질' 요구

민주당은 2일 국정브리핑 인터뷰 조작과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 하나 달랑 발표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국민들은 선거 패배후 이렇다 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정권이 사고가 터지자 ‘등떠밀기식, 돌려막기식’으로 슬그머니 장관 몇 명을 어물쩍 바꿔 책임을 피해가려는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앞서 1일에는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이 추진중인 3개 부처 개각과 관련, "여전히 같은 사람 돌려 앉히는 회전문인사"라며 "청와대에 그 흔해 빠진 인명사전 한권이 없다면 야당이 선물할 수도 있다"고 비아냥댔다. 한나라당은 "국정운영 능력 14점짜리 인사를 고집하고 있다"며 최근 노대통령 지지율이 14%까지 급락한 대목을 상기시키며 "실패한 대통령이 실패한 정책을 운용한 실패한 참모들을 재등용하여 실패한 국정, 실패한 정권의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실패한 인사 때문일 것"이라며 리모델링 차원의 전면개각을 요구했다.

이밖에 국정브리핑 인터뷰 조작과 관련, 진보진영의 대다수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도 참여정부의 마지막 생명선인 '도덕성'의 치명적 훼손을 이유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의 경질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미 오래 전 결정된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이란 논리로 또다시 청와대 근무자들을 경제-교육 양대부총리에 앉히려는 '친위 개각'을 단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될 경우 과학부총리에 이어 3대 부총리는 모두 청와대 인사들이 장악하게 된다.

노대통령이 인정하지 않는 교육-경제 실정

외형상 노대통령의 교육-경제 부총리 경질은 5.31지방선거에 나타난 '성난 민심'을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5.31 참패의 최대원인이 경제 실정(失政), 교육 실정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껍데기만 '민심 수용'일뿐, 내용물은 여전히 '마이웨이'다. 노대통령 자신이 경제 실정-교육 실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과 평준화정책을 공격하는 것은 수구세력이다.'

실제로 보수진영의 비판은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강남주택 공급 확대, 건설경기 부양 등을 주장하는 것이나, 교육정책과 관련해 무조건적인 '3불 정책' 폐지-사학법 재개정 요구 등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노대통령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성 싶다.

그러나 민심은 일부 보수언론에 끌려다닐 정도로 그렇게 단순치 않다.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경제-교육정책보다 혁신적 개혁이다.

세금으로만 부동산투기를 막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습다는 게 민심이다. 부동산값 폭등의 근원을 몇몇 투기세력에게서만 찾는 노무현 정부 발상에 대한 불신이다. 참여정권 출범이래 정부는 입으론 '투기 척결'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건설업체의 이해와 일치하는 부동산값 폭등을 부채질하는 금리 인하와, 행정도시-기업도시-혁신도시 등 각종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폈다. 이들의 폭리를 원천봉쇄할 '분양원가 공개 요구'도 일축했다. 요컨대 건설족 이해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여기에다 세금만 갖고선 안될 성 싶으니, 금융감독원을 통해 은행의 주택대출을 막으려는 관치금융을 재연했다가 엉뚱하게 실수요자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가자 '없던 일'로 백지화하는 등 '탁상행정'의 극치를 연일 선보였다.

교육정책도 오십보백보다. 사교육비가 폭증하고 교육 붕괴 민성이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현행 중-고교 교육에는 "이상이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문제는 잘 나가는 중-고교 교육을 흔들고 있는 '대학 교육'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통합논술 등을 도입하는 서울대가 문제라고 인식했다. 상황인식이 이렇다보니 해법은 '경제전문가의 대학 뜯어고치기'였고, 교육문외한인 김진표 교육부총리에 이어 부동산정책을 총괄해온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교육부총리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인사 기준은 '충성심'인가

또다른 문제는 노대통령의 '확고한 소신' 탓인지, 새로 기용하려는 각료들도 노대통령 생각과 일치하는 인사들을 중용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이 참패가 예상되던 5.31선거 직전 사표를 쓰고 일찌감치 교육부총리로 내정된 대목은 5.31선거 참패에 따른 인책 책임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해석됐다.

변양균 기획예산처장관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기용한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변양균 장관은 지난 1월 황우석 사태와 관련, 초지일관 황 교수 인책 입장을 견지해온 정운찬 서울대총장에 대해 "황우석 교수 사건의 1차적 책임은 서울대인데 정운찬 총장이 '다 같이 반성하자'며 훈육하는 식으로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정 총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자신의 본업인 '예산"과는 전혀 무관한 끼어들기였다.

그는 지난 4월에는 모 신문의 '참여정부=큰 정부' 보도와 관련, "무식해서 그런지, 잘 몰라서 그런지 덧셈. 뺄셈.분자.분모도 헷갈렸다. 위조 지폐를 만드는 것을 처벌하듯이 법에 따라 따라 대응하겠다"고 살벌한 어조로 비난하고 나서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장관 발탁의 핵심요인은 충성심"이라는 비아냥어린 품평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고심'도 이해간다. 외부에서 사람을 쓰려해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회전문 인사'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충성심'이 인사의 기준이 되다보면 민심은 더욱 멀어져갈 뿐이다. 인터뷰 조작 같은 대형사고를 치더라도 '며칠 지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배짱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노대통령이 점점 '외로운 섬'의 길을 택하는 안타까운 상황전개다.
정경희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