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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새 11명 사망. 더이상 장애인을 죽이지 말라”

<현장> 눈물의 합동추모제 "사회 방치속에 골방서 죽어가"

지난 5월 23일 김포의 미신고 시설 ‘사랑의 집’에서 6명의 장애인들이 신경안정제 수십 알을 강제복용 당해 목숨을 잃었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또 다른 2명의 장애인들도 열악한 골방에 방치된 채 죽어갔다.

6월 2일에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투쟁에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중증장애인 박기연씨(48)가 인천 간석역 선로에 스스로의 몸을 내던졌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부와 살아가던 생전의 그는 정부로부터 정당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고 지금보다 수월하게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시각장애인의 유보직종인 안마업을 빼앗아간 5월 25일 이후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6월 4일에는 손창익씨(42)가, 6월 13일에는 변경애씨(55)가 헌재 판결 이후 엄습해 온 절망감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지난 4월 20일 서울역에서 서울시청까지 6시간을 걸으며 투쟁의 만장을 들었던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이 지난 지 불과 두 달 사이, 장애인 11명이 잇달아 목숨을 빼앗기거나 스스로 포기했다.

2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11명의 고인에 대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추모집회가 열렸다.ⓒ최병성


“사회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시설과 골방에서 장애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분노한 장애인들은 다시 만장을 들었다. 28일 오후 2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1백여명은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들 11명의 장애인들을 위한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회원들은 장애인들의 잇단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들을 자활 대신 수용시설이나 골방에 가두고 유일한 직업을 빼앗아 간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분노를 토해냈다.

박영희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언제쯤이면 골방과 시설에 처박힌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과 억압, 생존권 박탈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가”라고 한탄하며 “이 사회는 장애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는 기어이 뛰어내리는 것까지 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자활지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2009년까지 2천7백억원을 들여 총 2백71개, 1만8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애인 수용시설 확충에 힘쓰고 있다.

권순철 시각장애인청년연합회 회장은 “왜 건강하게 살아가던 시각장애인들이 아파트 9층에서, 11층에서 투신하는지 정부는, 이 사회는 알아야한다”며 “시각장애인들을 안마업 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일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경쟁을 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3시 30분경 이들은 '근조 장애인 생존권'이라고 적힌 관과 11명 고인의 영정그림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최병성


김포 사랑의 집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백기 활동가는 “시설에서 8명이 죽어갔지만 검찰과 경찰은 살인행위에 무혐의를 적용하고 김포시장과 복지부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며 “비장애인 한 사람이 죽어도 호들갑을 떠는 사회는 죽음의 가치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장애인 8명을 살해하고 여성장애인 3명을 수년간 수백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던 ‘김포 사랑의 집’정모 목사에 대해 지난 9일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3부는 성폭력, 유기치사, 감금, 횡령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며느리까지 성폭행한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서도 검찰은 ‘장애정도를 감안할 때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추정하고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인권단체들은 검찰의 재수사를 강력 촉구하며 김포시 공무원들이 직무유기와 관련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김정하 시설민주화연대 활동가는 “전국의 수많은 미인가 수용시설에서 장애인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차별받고 고통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살인행위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무혐의 처분하고 김포시는 장애인 수십 명이 거주하는 시설을 종교시설이라 관리하지 않았다는 식의 발뺌에만 열중하고 있다”며 꼬집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진혼굿과 추모제

한 시간 가량 사회에 대한 분노를 토해낸 1백여명의 장애인들은 11명 고인들의 추모제를 지내기 위해 서울시청을 거쳐 광화문 네거리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만장을 앞세워 가슴에 저마다 장애인도 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임을 강변하는 붉은 리본을 달고 서울시청 앞 광장을 돌아 광화문 네거리에 도착한 그들은 ‘근조 장애인 생존권’이라는 글귀가 적힌 관을 내려놓고 노제를 시작했다.

'장애인도 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이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관에 붉은 리본을 달고 있는 참가자들.ⓒ최병성


장애인들은 추모제와 진혼굿이 끝난 후 관고 영정을 불태우는 화장의식을 진행했다.ⓒ최병성


11개의 영정이 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졌고 가슴에 달았던 붉은 리본으로 헌화를 대신하고는 이내 진혼굿과 화장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의 슬픈 가락에 맞춰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였던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삼헌씨의 진혼굿이 펼쳐졌고 장애인들은 숙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어 이들은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와 동화 면세점을 연결하는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11개의 영정과 관을 함께 태웠다.

경찰은 수차례 장애인들에게 소화기를 뿌리며 추모제가 열리던 광화문 한 복판으로의 진입을 시도했지만 장애인들은 그때마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관과 영정을 지켜냈다.

장애인들은 “사회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죽어간 이들의 넋이 담긴 관에 어떻게 소화기를 들이대냐”며 온 몸으로 경찰의 진입을 막아냈다.

이어 시각장애인과 활동가들의 투쟁발언이 몇 차례 이어진 후 다 타버려 재만 남은 관을 남겨두고 이들은 다시 정부종합청사로 행진을 시작, 6시 10분경 정리집회를 갖고 이날의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이들이 4월 20일 이후 다시 들었던 만장에는 ‘활동보조 제도화’라는 익숙한 구호와 함께 ‘장애인수용시설 확충 반대’,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적혀있었다.

경찰은 추모제가 열리는 사이 세 차례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얼굴에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최병성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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