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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드롬' 진원지는 민주세력 실패"

민주진영 토론회 "386, 이제 끝난 것 아니냐" 쓴소리 봇물

“대중들은 더 이상 ‘국민의 정부’니 ‘참여정부’니 하는 정치인의 수사를 믿지 못하며,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민주화의 성과와 전망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김정주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개혁을 해 국민 모두 잘 살라게 하라고 386에게 정권을 줬더니, 국민들을 버리면서 혼자만 간다.”(박원식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명예회복위원장)

보수진영의 냉소가 아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군의문사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등 지난 군부독재정권 시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민주화 진영’이 모인 자리에서 쏟아진 쓴소리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는 26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과 법률시행 6년의 문제점과 합리적 정책대안 토론회’를 갖고 각계 각층의 민주화 진영 단체들을 초대해 의견을 나눴다.

민가협, 유가협,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등 민주화 진영에서조차 386 세력에 대해 "이제 끝난 것이 아니냐"는 체념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뷰스앤뉴스


“민주화 세력의 실패가 ‘박정희 신드롬’ 낳는 역설 보여”

발제를 맡은 김정주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는 “내년에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20돌을 맞이하게 된다”면서 “그간 한국사회는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는 등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에 분명한 진전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상황을 볼 때 이같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국민 대다수의 실질적 삶의 조건을 얼마나 바람직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현재 대학 졸업자의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일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 중 절반은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나마 안정된 일자리를 얻더라도 나이 40에 이미 퇴직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실업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무능력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1987년 이후 한국사회가 경험한 민주화 과정은 자기모순에 놓이게 된다”면서 “국민 다수의 실존적이고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지 못한 민주화가 과연 대중들에게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 해답으로 “대중들은 더 이상 ‘국민의 정부’니 ‘참여정부’니 하는 정치인의 수사를 믿지 못하며,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민주화의 성과와 전망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이같은 민주화 세력의 정치 실패가 현재 대중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의 진원지"라고 진단하기까지 했다.

“'87 체제, 보수와 극우만 남아...”

김 교수는 정치실패의 원인과 관련,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사회체제에 대한 민주적 개혁 요구와는 별개로, 정권교체만이 최선의 민주화라는 그릇된 관념을 유포함으로써 민주화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한 한국사회의 본질적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머물렀다”는 점을 꼽았다.

또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 “노동권 확대 및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같이 ‘구체제’ 지배질서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하는 개혁적 요구들이 ‘위로부터의 민주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거나 배제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김 교수는 “1987년 체제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로 귀결되었으며, 재벌, 언론, 관벌, 등으로 구성된 ‘구체제’의 보수독점적 지배연합을 대체할 새로운 지배질서를 창출하지도 못했다”고 평가했다.

“386, 이제 끝난 것 아니냐”

“386이 개혁 의지를 상실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바로 386 자신”이라는 진단도 이 날 토론회후 본지와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제기됐다.

박원식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명예회복위원장은 최근 평택 시위와 관련,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에 임종인 의원만 온 것을 보고 ‘과거 자주운동하던 다른 386 의원들은 왜 안 온 것이냐’고 386보좌진들에게 묻자 그 사람들이 나에게 ‘아마도 안 올 것’이라고 확언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이는 바로 정치인으로 변신한 386의원 곁에 있는 같은 386, 가장 386곁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386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자포자기한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과 같은 제도적 정치개혁도 못 이뤄내면서, 한편으로는 IMF이후 경쟁 우위에 있는 일부 재벌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이상한 경제개혁을 취하는 것이 지금의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현주소”라며 “개혁을 해 국민 모두 잘 살라고 386에게 정권 줬더니, 국민들을 버리면서 혼자만 간다”고 권력 386을 질타했다.

그는 현재 민주화 진영에서 바라보는 386에 대한 평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끝난 것 아니냐’ 정도가 될 것 같다”며 386에 대한 체념을 원색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포스트 386, “대안이 없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386 이후’ 대안이 뭐냐”는 물음도 제기됐다.

386출신으로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명운 위원장은 “처음 기대하고 386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개혁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스럽다”고 비판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그렇다고 386에 대한 기대를 모두 접고 한나라당에 희망을 걸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민노당 역시 아직 대안세력이 되기에 자기완성도도 떨어지고, 현실정치의 힘을 봤을 때도 우리가 그나마 기댈 곳은 열린우리당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큰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다”고 곤혹감을 표시했다.

조광철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사무국장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나, 지난 해 말 쌀비준 동의안 처리 문제 등 개별 정책들을 놓고 볼 때, 386들이 과연 의회에서나마 민주적인 대응을 한 것이냐”고 비판하면서도 “아직 386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기에는 대안이 없다. 그들이 반성하고 자숙하기를 곁에서 비판하며 도와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작금의 '대안 부재' 상황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은 지켜본 이들에게 '과연 우리 사회에 386외에 대안이 없는가'라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역시 '미완성 토론'이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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