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작가 이문열 씨는 11일 "쇠고기 촛불집회는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며 네티즌 피플파워의 위력을 시인했다.

이 씨는 이 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벨라지오에서 <초한지> 전권(10권)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문열 "위대하면서도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이 씨는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물의를 빚을 것을 의식한듯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그러나 본질은 위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복잡한 심회를 드러냈다. 그는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은 위대한 반면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그것은 끔직하다"고 부연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해 물론 침묵하는 다수가 있겠지만 침묵하는 것 자체도 동조로 봐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촛불은 분명히 '민심'이며 '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촛불사태의 원인과 관련해선 '백성에게는 먹는 것이 하늘이며 제왕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라는 <초한지> 내용을 인용하면서도 "이번 사태는 먹는 것 하나가 빌미가 된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어떤 감정적인 것"이라고 거듭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고약한 점은 이것이 과연 '민심'인지 '의심'할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덮을 정도로 현 정권의 실수나 성급함이 있었던 사실"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지적했다.

그는 회견 뒤에 "내가 또 벌집을 건드렸냐"며 자신의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드러낸 뒤, 자신은 현재 분명하게 양비론적인 입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달 전에는 "인터넷, 악다구니만 넘치는 공간"

촛불집회에 대한 이문열씨의 평가는 불과 얼마 전 그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인터넷 괴담'에서 찾으며 "악다구니" 같은 막말을 동원하면서까지 네티즌들을 맹비난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문열씨는 지난달 13일 <조선일보>가 마련한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와의 대담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도 비판받을 점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비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터넷이 그 소동의 중심에 있으며, 효순-미선양 사건과 유사한 맥락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무책임한 글쓰기가 괴담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며 '괴담론'을 펴며 네티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었다.

이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의 익명성은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에 의해 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라며 "한국의 경우 사이버 공간은 대자보적인 흉기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다. 사이버 공간은 논의의 품격이 떨어져 고상함이 사라지고 악다구니만 넘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네티즌들을 맹비난했었다.

한달만에 달라진 이씨의 촛불집회 및 네티즌 피플파워에 대한 평가는 지금 보수진영이 얼마나 극심한 공황적 충격을 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