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결의안 통과' 주역 랜토스 의원 타계
하원 외교위원장으로 北문제 '대화를 통한 인도주의 해결' 주장
미 의회내 지한파 정치인으로 위안부결의안 통과의 주역이었던 톰 랜토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민주ㆍ캘리포니아주)이 11일(현지시간) 메릴랜드 베데스다 해군 의료센터에서 식도암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그의 대변인이 밝혔다. 향년 80세.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말 식도암 진단을 받은 직후 “내년에 14번째 의원직 임기를 마친 후 정계를 떠나겠다”고 은퇴를 선언했었다.
랜토스 위원장은 1981년 하원에 진출한 뒤 14번 연속 선출돼 지난해 1월 하원 외교위원장에 올랐으며, 미국 의회 의원 중 북한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지한파 의원으로 꼽혀왔다. 그는 지난 2005년에는 1월과 8월 두 차례 북한을 직접 방문했으며, 외교위원장이 된 후에도 재방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현안이 논란이 됨에 따라 성사되지는 않는 등, 미 의회 내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북한으로부터 방북 초청을 받았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랫동안 북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미-북 간 관계정상화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본지 편집위원인 김동석 미국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과의 작년말 인터뷰에서도 북한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및 종군위안부 문제의 국제 인도주의적 접근과 해결을 강조했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4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고, 북한 핵과 인권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인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자신의 “의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두 딸과 17명의 외손자를 두고 있으며 한 외손자가 한국 아가씨와 데이트를 한다며 “곧 한국인 손자 며느리를 볼지 모르겠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192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랜토스 위원장은 미국에 이민와 연방 하원의원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특히 1981년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원에 진출한 이래 14 차례 연속 선출됐으며, 지난해 1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된 뒤에는 외교위원장에 올랐다.
192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랜토스 위원장은 16세에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를 겪은 그는 미국 상하 양원을 통틀어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이후 인권운동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인권의 수호자’로 불리기도 했다.
24년 전인 1984년에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큰 의원들과 함께 의회 내 '인권 코커스'를 설립해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북한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체포된 손정남 씨의 석방을 촉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사상 처음으로 미 하원에서 채택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랜토스 위원장의 지역구인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이석찬 회장은 <미국의 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랜토스 위원장이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면서 한인사회와 많이 가까워졌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동석 소장은 "고인은 위안부 결의안 추진 당시 최선을 다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한편 이들이 하원 외교위에서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한인들의 활동을 적극 격려해줬다"며 "네오콘 등 일부 강경파들의 견제와 부시 행정부 초기 득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고수하는 등 한반도의 평와와 번영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며 고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 1월 정계은퇴 계획을 공개하면서 “빈털털이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교육을 받고, 가정을 갖고, 또 30년 간 의회 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며 “미국에 대한 감사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향후 헌신적인 인권운동 활동계획을 밝혔었다.
랜토스 위원장의 부인 아네트 랜토스 씨는 11일 랜토스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랜토스 위원장은 용기와 낙관주의, 그리고 그 자신의 원칙과 가족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 일생을 살아왔다"고 고인이 된 남편을 추모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말 식도암 진단을 받은 직후 “내년에 14번째 의원직 임기를 마친 후 정계를 떠나겠다”고 은퇴를 선언했었다.
랜토스 위원장은 1981년 하원에 진출한 뒤 14번 연속 선출돼 지난해 1월 하원 외교위원장에 올랐으며, 미국 의회 의원 중 북한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지한파 의원으로 꼽혀왔다. 그는 지난 2005년에는 1월과 8월 두 차례 북한을 직접 방문했으며, 외교위원장이 된 후에도 재방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현안이 논란이 됨에 따라 성사되지는 않는 등, 미 의회 내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북한으로부터 방북 초청을 받았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오랫동안 북한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미-북 간 관계정상화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본지 편집위원인 김동석 미국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과의 작년말 인터뷰에서도 북한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및 종군위안부 문제의 국제 인도주의적 접근과 해결을 강조했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해 4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고, 북한 핵과 인권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인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자신의 “의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두 딸과 17명의 외손자를 두고 있으며 한 외손자가 한국 아가씨와 데이트를 한다며 “곧 한국인 손자 며느리를 볼지 모르겠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192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랜토스 위원장은 미국에 이민와 연방 하원의원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특히 1981년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원에 진출한 이래 14 차례 연속 선출됐으며, 지난해 1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된 뒤에는 외교위원장에 올랐다.
192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랜토스 위원장은 16세에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를 겪은 그는 미국 상하 양원을 통틀어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이후 인권운동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인권의 수호자’로 불리기도 했다.
24년 전인 1984년에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큰 의원들과 함께 의회 내 '인권 코커스'를 설립해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북한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체포된 손정남 씨의 석방을 촉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사상 처음으로 미 하원에서 채택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랜토스 위원장의 지역구인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이석찬 회장은 <미국의 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랜토스 위원장이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면서 한인사회와 많이 가까워졌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동석 소장은 "고인은 위안부 결의안 추진 당시 최선을 다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한편 이들이 하원 외교위에서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한인들의 활동을 적극 격려해줬다"며 "네오콘 등 일부 강경파들의 견제와 부시 행정부 초기 득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고수하는 등 한반도의 평와와 번영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며 고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 1월 정계은퇴 계획을 공개하면서 “빈털털이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교육을 받고, 가정을 갖고, 또 30년 간 의회 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며 “미국에 대한 감사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향후 헌신적인 인권운동 활동계획을 밝혔었다.
랜토스 위원장의 부인 아네트 랜토스 씨는 11일 랜토스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랜토스 위원장은 용기와 낙관주의, 그리고 그 자신의 원칙과 가족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 일생을 살아왔다"고 고인이 된 남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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