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신당 탈당 기자회견 전문]
"유연한 진보정당을 만들고 싶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떠나며 드리는 말씀
대한민국에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좋은 정당이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대통합민주신당을 떠나고자 합니다.
2002년에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는 국민 여러분께 두 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첫 번째는 보스 정치, 돈 정치,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원리를 구현하는 ‘좋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그런 ‘좋은 정당’을 꿈꾸며 저와 함께 열린우리당에 참여해 힘껏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저 못지 않게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 열린우리당의 문이 닫히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대의명분 때문에 대통합민주신당까지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에는 ‘좋은 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을 펼칠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두 번째는 ‘좋은 정당’에 모인 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온건진보 세력을 대표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개방을 통한 성장과 약자를 보듬는 복지가 함께 숨 쉬는 사회,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교육,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부여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타자를 향한 관용과 약자를 위한 연대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유연한 진보정치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에는 제가 꿈꾸었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꿈이었는데, 5년 동안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그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떻게 하는 게 책임지는 행동인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라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원임이 자랑스럽지도 않고 좋은 정당이라는 확신도 없는 당에 계속해서 몸을 담는 것이 어떤 대의(大義)를 위한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 소속 정당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국민 앞에 지지를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는 유연한 진보 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이 필요합니다. 저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 이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대화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해나가겠습니다. 당에 몸담은 채 이 일을 할 수는 없기에 대통합민주신당을 떠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자신의 판단에 따른 개인적 선택일 뿐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 당원으로서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의 판단을 저는 깊이 존중합니다. 그것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당을 지키면서 총선을 치르자는 어려운 결단을 하신 모든 분들께 행운과 성취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총선을 맞아 환골탈태함으로써, 더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 더 크게 기여하는 정당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저로 인해 상처받거나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께 너그러운 아량과 용서를 구합니다. 저도 원망은 물에 흘려보내고 제가 받았던 은혜는 돌에 새기겠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합니다. 나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달리 사랑을 줄 정당을 찾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 선택할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직되고 낡고 독선적인 진보정당이 아니라, 정체성이 모호해 어떤 정치세력도 대변하지 못하는 중도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유연한 진보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하고 싶다고 해서 ‘좋은 정당’을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받을 때에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모이면 신속하게 신당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졸속 창당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시한을 못박지 않고 차분하게 역량을 모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소속 정당이 없는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함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좋은 정당’을 세우는 일을 해나가려 합니다.
진보적 정책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 하루 이틀에 가능하지 않은 만큼, 저는 일단 무소속으로 총선에 임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질책과 비판,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08년 1월 16일
국회의원 유 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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