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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이렇게 밟을 수가"

<현장> 경찰 원천봉쇄, 7천여명 대추리 밖 범국민대회 열어

2만여명을 동원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서도 14일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참가자 7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범국민대회는 치러졌다. 그러나 평택범대위가 당초 예고한 대추리 평화공원에서의 대규모 범국민대회는 진입 자체가 무산돼 범대위 지도부와 민주노동당 관계자, 주민들 1백여명이 참가한 약식집회에 그쳤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 양측 모두 물리적인 충돌을 자제해 대규모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부가 15일부터 측량조사에 착수하고 주민들에 대한 강제퇴거조치도 6월 말부터 본격화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평택범대위는 매주 일요일 전국 동시다발적 촛불집회와 6월초 대규모 범국민대회를 예고한 상태다.

경찰 12일부터 삼엄한 검문검색, 1백93개 중대 1만9천명 배치

12일부터 검문검색을 강화하기 시작한 경찰은 13일부터는 대추리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일반인들마저 통제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삼엄한 경계를 섰다. 특히 경찰은 집회 당일인 14일부터는 새벽부터 주요 길목에 병력 배치를 완료했고 버스의 출입마저 차단해 대추리는 고요한 수용소를 연상시켰다.

14일 평택 본정리 일대 대추리 진입 골목 곳곳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다.ⓒ최병성


경찰의 원천봉쇄에 막힌 시위대는 이날 새벽부터 본대회를 마무리한 오후까지 대추리 진입을 위해 여러 차례 진입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시위대의 세 배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한 경찰의 방어선을 뚫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시위대는 13일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밝힌대로 죽봉이나 돌 등 어떠한 공격무기도 지참하지 않은 맨 몸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때문에 대규모 유혈충돌에 대한 우려와 달리 산발적인 소규모 충돌 외에는 양측의 이렇다할 마찰이 벌어지지 않았다. 특히 이날 시위대는 경찰의 봉쇄에 막히자 무리한 진입을 자제하고 다양한 투쟁발언과 구호를 외치며 연좌농성에 집중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이 밝힌 이날 부상자 수는 시위대 3명, 경찰 2명이었고 모두 경상이었다.

대추립 길목 본정리 일대 곳곳 산발적인 충돌 계속돼

첫 진입 시도는 전날 광화문 전야제에 참석한 후 홍익대에서 하루를 묵고 새벽에 대추리로 출발한 1천여명의 민주노총, 한총련 소속 회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대추리 진입 길목인 원정삼거리가 차단된 탓에 반대편 계양5거리를 지나 본정리에서 진입을 시도했지만 군경의 고공 작전지휘에 막혀 본정리농협 앞에서 후속으로 합류하는 시위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대기했다.

이후 이들은 오전 9시경 집회 참가자가 1천5백여명으로 불어나면서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신대리 곳곳에서 경찰과 산발적인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곤봉과 방패를 사용해 시위대 10명을 연행했다.

군경 헬기는 이날 수백회 저공비행을 하며 집회를 방해했고 유인물 수천장을 반복해서 뿌렸다.ⓒ최병성


오전 8시 40분에는 평택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본정리로 이동중이던 공무원노조 버스 4대가 경찰의 검문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항의하는 노조원 1명에 대한 연행을 시도해 양측간 소규모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9시 10분경 연행한 노조원을 풀어줬다.

이후에도 오후 2시 20분경 민주노총 조합원 2천여명이 장시간의 소강국면을 뚫기 위해 본정리 농협방향 도로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1시간여의 몸싸움 끝에 다시 본대오가 연좌농성을 진행 중인 본정리 인근 차도로 후퇴했다.

2시 45분경에는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시위대가 미군기지를 경호하는 경찰병력 앞에 다가가 철조망을 흔들며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에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193개 중대 1만9천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평택 대추리로 진입하는 주요길목인 원정리와 본정리를 원천봉쇄하고 군경 헬기 4대를 동원해 시위대의 이동을 차단했다.

경찰헬기는 지난 4일의 행정대비집행때와 마찬가지로 시위대의 투쟁발언과 약식집회가 열릴 때마다 25m 높이에서 저공비행을 계속했고 오후에는 "군사시설인 철조망을 훼손하거나 침범시는 군형법에 의해 엄단한다"는 내용을 담은 선전물 수천장을 본정리와 대추리 곳곳에 뿌리기도 했다.

군부대 사이에서 따로 열린 범국민대회

이날 범국민대회는 바깥으로부터 고립당한 대추리와 안으로의 진입을 차단당한 본정리에서 별도로 진행됐다. 평택범대위는 경찰이 외부 진입을 차단한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이 본정리 쪽으로 집결하자 오전 11시경 대추리 안팍에서의 별개의 범국민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열린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본정리로 합류하기 위한 행진에 나섰지만 경찰의 봉쇄로 무산됐다.ⓒ최병성


이에 따라 대추리에서는 오전 11시 30분, 본정리에서는 참가자가 7천여명에 이른 오후 3시 30분경부터 별도의 범국민대회가 치러졌다.

대추리에서 열린 '평화 농사 실현 범국민대회'는 대추리 주민과 인권활동가 등 1백여명이 참가한 채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진행됐다. 도두2리 주민 50여명은 경찰이 진입을 통제함에 따라 참가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이들은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리는 이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고 오후 2시부터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도두리 주민을 맞이하기 위한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은 5분만에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경찰은 주민들이 영농행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 주민과 농지 사이 철조망 안쪽에 병력을 배치했고 도두리로 가는 길목마저 막았다.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행진이 저지되자 대추리 주변 농로를 걸으며 '평화 농사 실현'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행진이 끝나고 다시 평화공원으로 들어올 때쯤 경찰과 주민간 농지훼손을 놓고 실랑이가 일어나기도 했다.

행진이 시작되자 병력을 증강해 농지 곳곳에 병력을 배치한 경찰이 대추리 주민들이 건답직파해 싹을 틔운 볍씨들을 밟고 서자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 주민들은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너희들이 이렇게 짓밟느냐"며 절규했고 이 과정에서 한 주민이 실신해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후송됐다.

대추리의 한 주민이 경찰들의 농지훼손에 절규하며 쓰러져있다.ⓒ최병성


본정리 7천여명 "평택 투쟁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는 기나긴 투쟁이다"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 등 평택 범대위 주요단체의 지도부가 참석한 채 열린 본정리에서의 범국민대회는 각 단체의 연대발언과 문화공연으로 1시간여동안 짧게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평택은 정부의 지원없이 이곳 주민들이 평생을 일궈온 땅"이라며 "주민들의 땀이 어린 생명의 땅을 미군의 전쟁기지로 내어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평화"라며 "더 이상 공권력의 손에 피를 묻히지 말고 평화로운 땅에서 계속해서 농사짓고 수확하며 살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평화로운 땅에서 농사짓는 제 나라 백성을 군경 앞세워 몰아내는 것이 국익이냐"며 "이 싸움은 하루만의 싸움이 아니라 이 땅에서 미군이 물러나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평택문제는 더 이상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의 문제"라며 "정부는 폭력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는 "주민들의 힘겨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평택만의 문제로 치부되던 이곳 사태가 지난 4일 공권력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며 "한 총리의 담화문이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이제 노무현 정권이 대화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총리도 밝혔듯이 정부가 평택사태에 대한 대화부족과 방식의 미흡함을 인정한다면 누군가는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15일 윤광웅 국방부장관 파면결의안을 제출하고 조속한 시일내에 군사시설보호법의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본정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6천여명은 6월 초에도 대규모 집회를 대추리에서 갖기로 결의했다.ⓒ최병성


한편 범국민대회 도중 대추리에 고립되어있는 송태경 팽성대책위 기획부장과 전화가 연결돼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송 부장은 "대추리 주민들과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본정리로 가려고 했지만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며 "주민들이 다시 농사지을 수 있게 힘을 보태달라"며 연대를 호소했다.

범국민대회는 4시 30분경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의 마무리 발언으로 종료됐고 이후 참가자들은 각 지역.단위별로 해산했다.

이들 중 일부는 오후 7시부터 평택 범대위가 주최하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대추리에서는 대추리 주민과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 여는 인권영화제가 열렸다.

국방부 15일 측량 및 지반조사 실시, 민군 재충돌 불가피할 듯

한편 국방부는 15일부터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 이전 예정부지에 대한 측량을 실시하고 이달 중 지반조사를 병행한다고 밝혔다. 측량은 한국측 지적공사가 부지 외곽에 대한 경계측량을 1차로 실시하고 이어 한미간 합동 경계측량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국방부는 "한미 양측은 금년 9월까지 시설종합계획 작성을 목표로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위해 지반의 지지력 측정, 지중의 개략적인 토질분포, 흙의 층상과 구성을 확인하는 지반조사를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반조사는 주한미군 미 극동공병단과 주한미군사 주관으로 이뤄지고 지질 조사를 위한 보링 작업은 부지 내 총 115개 지역에서 실시된다.

국방부는 또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를 6월부터 본격화해 10월까지 주민의 강제이주를 완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평택범대위와 팽성대책위 등 주민단체들은 "불법 부당하게 설치한 철조망과 군부대를 철거시키고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을 철회시켜 올 해 평화농사를 기필고 관철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군과 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날 범국민대회 결의문을 통해 ▲철조망과 군부대 철거,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 철회 ▲국방부장관 및 경찰청장 퇴진 ▲구속자 석방과 피해배상 ▲평택미군기지 확장 중단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거듭 평화적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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