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4년만에 249%, '가치투자'의 저력
[한국의 뉴파워]<1> '한국의 워렌 버핏' 김민규-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VIP투자자문 김민규, 최준철 공동 대표이사는 31세 동갑내기다. 최준철 대표는 서울대 96학번 경영학과, 김민규 대표는 97학번 경제학부 출신이다. 자기자본 120억 원에 운용자산만 3000억 원이 넘는 투자자문사의 대표치고는 너무나 젊다. 두 사람의 말투와 목소리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대학원 강의실에서 가장 첨예한 토론 주제를 놓고 열띤 설전을 벌이는 박사과정 학생의 분위기다. 그 분위기에는 열정과 진지함, ‘크리에이티브’가 녹아 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저 유명한 장면, 즉 모스크바 사교계에 처음 데뷔한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이 나폴레옹의 등장과 유럽 평화와 전제정권의 몰락을 역설할 때, 바로 이런 표정과 말투를 사용했을 것이다. 두 공동대표의 관심은 그러나 세계 평화나 제국의 흥망과 같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건전한 투자로 정직한 부자 되기’가 이들의 관심사요, 비즈니스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투자를 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상당한 여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주식투자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97학번이었던 저는 입학과 동시에 IMF 상황을 맞게 됐죠. 전 사회가 모라토리엄을 맞은 상황에서 주식시장 역시 폭락했습니다. 그러나 부의 이동은 이런 혼란기에 가장 극명한 형태로 나타나죠. 저는 이런 혼란기 속에서의 모델과 개인의 역할 연구랄까요, 그런 지적 호기심도 있었고 과외를 통해 번 여유 자금의 존재도 주식투자를 하게 된 계기가 됐죠. 당시 주식투자는 제 전공 공부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니 더욱 흥미를 갖고 몰두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 대표 역시 대학 입학 직후부터 주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외를 통해 상당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주식에 뛰어들게 된 다소 긴 사연과 역정은 이랬다.
“1주일에 5일 과외를 하고 월 250만 원 정도를 벌었죠. 이런 여유 자금이 주식투자를 가능케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의 경제적 초상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버님은 공대를 졸업하고 무려 30년 간이나 한 직장에서 일을 하신 샐러리맨이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꾸렸지만 한계가 있었죠. 늘 그 자리에 정체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제가 공대를 안 가고 문과를 택해 경영학을 선택한 것도 아버님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늘 사업을 생각했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내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재학 중 수없이 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궁리하고 살았죠. 예컨대 과외를 주선해 주는 사업 모델 같은 것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고요. 그러나 돈도 기술도 경험도 조직도 없는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사업은 없었어요. 의기소침해 있던 저에게 주식투자가 하나의 영감처럼 다가왔던 것이 아닌가 해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의 투자 철학을 다룬 일련의 책들을 보게 됐죠. 제가 이 명저들을 읽으며 무릎을 쳤던 것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동분서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업에 동참하는 길도 있다는 겁니다. 주식투자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죠. 철강회사의 주식을 사면 철강을 잘 모르고 충분한 돈과 조직이 없어도 그 회사의 일부를 소유한 오너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겁니다. 사업은 하고 싶은데 실상 아무런 백그라운드가 없다는 참담한 현실이 저로 하여금 주식에 눈 돌리게 했어요.”
지난 6년 간 이들이 그 목표를 추구하며 가슴에 새긴 키워드는 ‘가치투자’다. 상호에 들어간 VIP라는 약어도 ‘중의법’적인 것이다. ‘Very Important Person’이라는 의미도 물론 포함돼 있다. 고객을 VIP로 모시겠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VIP투자자문에서의 VIP란 ‘Value Investment Pioneer’의 약어다. 가치투자의 개척자, 첨병이라는 뜻이다.
두 공동대표가 상호에서 내건 ‘가치투자의 개척자’란 말은 결코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투자의 첨병’ 역할을 해온 장본인들이다. 2002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이론서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을 출간, 이 책을 무려 4년 간이나 증권부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가치투자를 실증하기 위해 출범한 ‘VIP펀드’는 2년 만에 수익률 117%를 올렸다. 2003년 본격 출범한 ‘VIP 투자자문’은 4년 만에 펀드 누적 수익률을 249.21%까지 끌어올렸다. 주식을 도박으로 생각하는 풍토를 바꾸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창대한 결과의 시작은 2001년 6월 서울대학교 앞 녹두거리에서 비롯됐다. 최준철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가치투자자들이 모이는 ‘뉴아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다. 여기서 ‘낭중지추k’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올린 기업분석 리포트를 읽었다. 웅진코웨이, 한섬, 신도리코, 롯데삼강 등에 대한 기업분석서였다. 그 글들은 내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즉시 메일을 보냈고 답장이 몇 번 오간 후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성명을 하다 보니 학교도 같았고 나이도 같았다. 투자 경력이 오래된 아저씨를 상상했는데 뜻밖이었다. 기막힌 인연이라 생각돼 학교 앞 녹두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 만남이 긴 여정의 시작임을 우리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날 만남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목에 대한 이야기, 투자문화에 대한 소견들, 가치투자 방법론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표는 당시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SMIC(현 서울대 투자연구회)의 회원이었고, 최 대표도 김 대표의 권유로 이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최 대표에게 물었다.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수재들의 투자모임인 만큼 굉장한 서클이었겠네요.
“그렇지 않았어요. 동아리 위상은 매우 약했죠. 신성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웬 ‘돈벌이 연구’냐며 공격을 받기 일쑤였어요. 제대로 된 동아리방도 없었습니다. 주식투자는 기업에 대한 투자이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이라 굳게 믿었는데… 많이 억울했죠. 팍스넷 같은 데에 기업분석 글을 올리면 ‘학생은 공부나 하라’는 비아냥성 악플들이 달리곤 했어요. 이 시기 우리들의 유일한 낙은 식당과 하숙집을 전전하며 가치투자, 기업분석에 대한 생각들을 마음껏 토론하는 것이었죠.”
이 치열한 모색의 시기가 낳은 생산물이 VIP투자자문의 모태 역할을 한 ‘VIP펀드’다. ‘VIP펀드’는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회원들의 자금을 모아 2001년 7월 출범했다. 사실 이름만 펀드였을 뿐 규모도 작아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 펀드를 ‘가치투자를 증명하기 위한 공개 포트폴리오’로 정의, 동아리 사이트에 매월 포트폴리오 내역, 수익률, 운용보고서를 공개했다. 규모가 안 된다면 ‘투명성’으로 승부하자는 생각이었다. 시련은 그러나 금세 찾아왔다. 김민국 대표가 설명한 시련의 전말은 이렇다.
“VIP펀드를 출범하고 2개월 만에 9․11 사태가 터졌어요. 주식을 50% 정도 채워 놓은 상태에서 폭락을 맞은 거죠.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됐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결단을 내렸어요. 남은 현금을 동원해 평소 눈여겨봐 둔 종목을 사들였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정확한 결정이었지만 당시 분위기에서는 두려웠습니다. 3차대전 가능성까지 나오던 시점이었으니까요.”
결국 2년 뒤인 2003년 7월 펀드를 청산할 때 117%의 수익률로 마감할 수 있었다. 연 단위로는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정식 펀드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가치투자의 가치’를 실증했다는 점이 ‘VIP펀드’의 자랑이었다.
두 사람은 2001년 11월 겨울방학을 앞두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동안 축적된 자료와 생각을 바탕으로 가치투자 서적을 출간하자는 것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이, 학생 신분임을 고려하면 이른 감이 있지만 가치투자에 관한 국내서가 전무했다는 점이 그들을 자극했다. 팔리지 않더라도 동아리 교육용 자료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 대표는 집필 과정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집필은 당시 저와 김 대표, 그리고 후배 박민우 군이 맡았죠.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 집필 사무실을 얻어 합숙에 들어갔습니다. 2개월 동안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편집과 포맷까지 완벽을 기하자는 생각에 작업량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집필 내내 햄버거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죠. 햄버거를 얼마나 먹었는지 두 달 만에 누적 포인트로 치킨 너겟 빅 사이즈를 공짜로 먹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책을 써내려 갔어요.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하죠. 절대로….”
이때 나온 책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저자의 인지도 부족에도 불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누적 판매 부수가 4만 부 이상으로 증권부문에서는 ‘필독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생명력이 긴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집필 전의 희망이 이뤄진 셈이다. 이 책이 두 사람에게 복덩이였던 이유는 책 출판을 계기로 두 사람의 본격적 외부활동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최 대표가 들려줬다.
“집필 전 유일전자라는 회사를 발굴해 기업분석 리포트를 발표하고 책의 사례로까지 실었어요. 유일전자는 지금이야 인기종목이지만 당시엔 리포트 하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책이 나오자 당시 유일전자의 박병채 전무(현 대표이사)가 식사를 한번 하지고 연락을 해왔어요. 이 때 박 전무는 우리에게 회사의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공장을 구석구석 견학시켰죠. 이것이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번째 기업탐방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기관투자가라 탐방 다니기가 쉽지만 당시에는 아이쇼핑하러 온 까다로운 학생 고객에 불과했겠죠. 어쨌든 유일전자의 주가는 1년 만에 3배 이상 올랐고, 지금은 시가 총액이 수천억 원 대에 달하는 대표적인 IT부품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가치투자를 통한 기쁨은 그로 인해 얻는 수익 이상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은 가치투자의 위대한 계보라 할 수 있는 벤저민 그레이엄, 워렌 버핏, 피터 린치를 읽으며 가치투자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자신들은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렌 버핏의 추종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가치투자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은 워렌 버핏이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워렌 버핏의 위대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1996년 처음 접했던 워렌 버핏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그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 세계적인 투자의 고수가, 80세가 넘은 후에도 변신과 자기계발, 갱신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투자와 비즈니스에서만의 변화가 아니죠. 그의 인간 자체,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국면이죠. 그런 점에서 그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직도 30년 전에 구입한 집에서 살고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신을 세계적인 부자로 만든 단순하고 안정된 가치투자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요. 나는 그에게 희망을 보며, 동시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그를 결코 따라갈 수 없으리란 좌절감 말이죠.”
같은 질문을 김 대표에게 했다. 그는 워렌 버핏이 가져다 준 희망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했다.
“버핏이 위대한 이유, 그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투자를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투자란 무엇인가, 즉 투자의 본질과 원칙을 가장 실천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그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 투자했습니다. 보험, 가구, 보석 등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지요. 큰 기업은 지분의 일부를 소유했지만 작은 기업은 통째로 소유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소유한 기업을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일임했습니다. 전문 CEO들을 신나게 춤추게 할 줄 알았던 안목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버핏을 ‘좋은 투자자’로 생각하지만 저는 그를 ‘좋은 경영자’로 생각합니다. 골방에 앉아서 책이나 보며 투자만을 궁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업가로서의 경험과 실력을 축적했던 거죠. 최근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기부할 때도 그는 그 자신의 재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 기금을 가장 잘 운용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의 진면목은 그의 이런 전인격적인 결단과 원칙의 고수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두 공동대표는 가치투자를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연구 과정’으로 정의한다. 워렌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세계적 선구자로 인정받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가치투자를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기업의 주식을 샀다가 가치에 도달하면 파는 것”으로 정의했다. 가치투자는 결국 장기투자인데 모든 장기투자는 곧 가치투자인가. 두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 주식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만이 장기투자라고 잘못 이해하죠. 고점에 사서 소위 물린 종목을 기약도 없이 오래 보유하는 것은 장기투자가 아닙니다. 장기투자는 보유기간뿐만 아니라 주식을 매수하기 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까지 기다리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보유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그 기업에 대해 오래 연구를 했고 자신감 있게 장기적으로 보유할 수 있나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기투자, 즉 가치투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가치투자는 주식투자 기법의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다. 가치투자가 보편화된 선진국에서도 이 기법이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원리는 매우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이 가치투자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조급하기 때문이다. 게으르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고, 조급하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가치투자의 본질은 적어 보이는 수익률이 긴 시간과 결합되면 결국 큰 수익이 된다는 것이다.
“가치투자와 장기투자야말로 복리의 마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투자방법입니다. 좋은 종목을 꾸준히 보유하는 것이야말로 거래수수료를 물지 않으면서 자동으로 투자이익이 재투자되는 간편한 방법입니다. 가치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좋은 종목을 좋은 값에 사고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복리수익을 향유하기만 하면 됩니다. 느려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투자가 가치투자의 본질입니다.”
VIP투자자문의 초기 고객 중엔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의 독자들이 많았다. 고객들은 3년 운용이란 까다로운 조건, 아무런 레코드가 없는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자금을 흔쾌히 맡겼다. 투자 예정기간을 30년으로 적어 넣은 투자자도 있었다.
“무의 상태에서 우리를 믿어준 고객들은 투자자문 설립 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분들에게는 평균 100% 이상의 수익률을 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금으로 투자할 때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객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희열은 자기 자금 운용으로 얻는 수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두 사람은 금융창업에 뜻을 둔 대학생들의 문의를 숱하게 받았다. 그러나 학생들과 예비창업자들은 본질보다는 절차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김민국 대표는 그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투자자문사를 목표로 해본 적이 없어요. 가치투자를 증명하고 싶었기에 사모펀드와 투자자문사가 필요했죠. 금융 분야에선 신뢰가 생명입니다. VIP투자자문을 찾는 고객은 신뢰를 맡기러 오는 것이지 돈을 맡기러 오지 않습니다. 비전과 원칙을 추구하고 신뢰를 쌓는다면 한국에서도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탄생할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그렇게 위대하고 좋은 것을 추구해야지요.”
필자 소개
한기홍
1961년 생
고려대 영문학과
중앙일보 월간중앙,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기자
현 월간중앙 객원기자, 뉴스메이커 편집위원
여러 매체와 단행본 작업을 통해 다양한 소재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저 유명한 장면, 즉 모스크바 사교계에 처음 데뷔한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이 나폴레옹의 등장과 유럽 평화와 전제정권의 몰락을 역설할 때, 바로 이런 표정과 말투를 사용했을 것이다. 두 공동대표의 관심은 그러나 세계 평화나 제국의 흥망과 같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건전한 투자로 정직한 부자 되기’가 이들의 관심사요, 비즈니스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투자를 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상당한 여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주식투자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97학번이었던 저는 입학과 동시에 IMF 상황을 맞게 됐죠. 전 사회가 모라토리엄을 맞은 상황에서 주식시장 역시 폭락했습니다. 그러나 부의 이동은 이런 혼란기에 가장 극명한 형태로 나타나죠. 저는 이런 혼란기 속에서의 모델과 개인의 역할 연구랄까요, 그런 지적 호기심도 있었고 과외를 통해 번 여유 자금의 존재도 주식투자를 하게 된 계기가 됐죠. 당시 주식투자는 제 전공 공부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니 더욱 흥미를 갖고 몰두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 대표 역시 대학 입학 직후부터 주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외를 통해 상당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주식에 뛰어들게 된 다소 긴 사연과 역정은 이랬다.
“1주일에 5일 과외를 하고 월 250만 원 정도를 벌었죠. 이런 여유 자금이 주식투자를 가능케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의 경제적 초상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버님은 공대를 졸업하고 무려 30년 간이나 한 직장에서 일을 하신 샐러리맨이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꾸렸지만 한계가 있었죠. 늘 그 자리에 정체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제가 공대를 안 가고 문과를 택해 경영학을 선택한 것도 아버님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늘 사업을 생각했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내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재학 중 수없이 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궁리하고 살았죠. 예컨대 과외를 주선해 주는 사업 모델 같은 것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고요. 그러나 돈도 기술도 경험도 조직도 없는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사업은 없었어요. 의기소침해 있던 저에게 주식투자가 하나의 영감처럼 다가왔던 것이 아닌가 해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의 투자 철학을 다룬 일련의 책들을 보게 됐죠. 제가 이 명저들을 읽으며 무릎을 쳤던 것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동분서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업에 동참하는 길도 있다는 겁니다. 주식투자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죠. 철강회사의 주식을 사면 철강을 잘 모르고 충분한 돈과 조직이 없어도 그 회사의 일부를 소유한 오너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겁니다. 사업은 하고 싶은데 실상 아무런 백그라운드가 없다는 참담한 현실이 저로 하여금 주식에 눈 돌리게 했어요.”
지난 6년 간 이들이 그 목표를 추구하며 가슴에 새긴 키워드는 ‘가치투자’다. 상호에 들어간 VIP라는 약어도 ‘중의법’적인 것이다. ‘Very Important Person’이라는 의미도 물론 포함돼 있다. 고객을 VIP로 모시겠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VIP투자자문에서의 VIP란 ‘Value Investment Pioneer’의 약어다. 가치투자의 개척자, 첨병이라는 뜻이다.
두 공동대표가 상호에서 내건 ‘가치투자의 개척자’란 말은 결코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투자의 첨병’ 역할을 해온 장본인들이다. 2002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이론서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을 출간, 이 책을 무려 4년 간이나 증권부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가치투자를 실증하기 위해 출범한 ‘VIP펀드’는 2년 만에 수익률 117%를 올렸다. 2003년 본격 출범한 ‘VIP 투자자문’은 4년 만에 펀드 누적 수익률을 249.21%까지 끌어올렸다. 주식을 도박으로 생각하는 풍토를 바꾸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창대한 결과의 시작은 2001년 6월 서울대학교 앞 녹두거리에서 비롯됐다. 최준철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가치투자자들이 모이는 ‘뉴아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다. 여기서 ‘낭중지추k’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올린 기업분석 리포트를 읽었다. 웅진코웨이, 한섬, 신도리코, 롯데삼강 등에 대한 기업분석서였다. 그 글들은 내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즉시 메일을 보냈고 답장이 몇 번 오간 후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성명을 하다 보니 학교도 같았고 나이도 같았다. 투자 경력이 오래된 아저씨를 상상했는데 뜻밖이었다. 기막힌 인연이라 생각돼 학교 앞 녹두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 만남이 긴 여정의 시작임을 우리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날 만남에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목에 대한 이야기, 투자문화에 대한 소견들, 가치투자 방법론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표는 당시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SMIC(현 서울대 투자연구회)의 회원이었고, 최 대표도 김 대표의 권유로 이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최 대표에게 물었다.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수재들의 투자모임인 만큼 굉장한 서클이었겠네요.
“그렇지 않았어요. 동아리 위상은 매우 약했죠. 신성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웬 ‘돈벌이 연구’냐며 공격을 받기 일쑤였어요. 제대로 된 동아리방도 없었습니다. 주식투자는 기업에 대한 투자이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이라 굳게 믿었는데… 많이 억울했죠. 팍스넷 같은 데에 기업분석 글을 올리면 ‘학생은 공부나 하라’는 비아냥성 악플들이 달리곤 했어요. 이 시기 우리들의 유일한 낙은 식당과 하숙집을 전전하며 가치투자, 기업분석에 대한 생각들을 마음껏 토론하는 것이었죠.”
이 치열한 모색의 시기가 낳은 생산물이 VIP투자자문의 모태 역할을 한 ‘VIP펀드’다. ‘VIP펀드’는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회원들의 자금을 모아 2001년 7월 출범했다. 사실 이름만 펀드였을 뿐 규모도 작아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 펀드를 ‘가치투자를 증명하기 위한 공개 포트폴리오’로 정의, 동아리 사이트에 매월 포트폴리오 내역, 수익률, 운용보고서를 공개했다. 규모가 안 된다면 ‘투명성’으로 승부하자는 생각이었다. 시련은 그러나 금세 찾아왔다. 김민국 대표가 설명한 시련의 전말은 이렇다.
“VIP펀드를 출범하고 2개월 만에 9․11 사태가 터졌어요. 주식을 50% 정도 채워 놓은 상태에서 폭락을 맞은 거죠.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됐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결단을 내렸어요. 남은 현금을 동원해 평소 눈여겨봐 둔 종목을 사들였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정확한 결정이었지만 당시 분위기에서는 두려웠습니다. 3차대전 가능성까지 나오던 시점이었으니까요.”
결국 2년 뒤인 2003년 7월 펀드를 청산할 때 117%의 수익률로 마감할 수 있었다. 연 단위로는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정식 펀드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가치투자의 가치’를 실증했다는 점이 ‘VIP펀드’의 자랑이었다.
두 사람은 2001년 11월 겨울방학을 앞두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동안 축적된 자료와 생각을 바탕으로 가치투자 서적을 출간하자는 것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이, 학생 신분임을 고려하면 이른 감이 있지만 가치투자에 관한 국내서가 전무했다는 점이 그들을 자극했다. 팔리지 않더라도 동아리 교육용 자료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 대표는 집필 과정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집필은 당시 저와 김 대표, 그리고 후배 박민우 군이 맡았죠.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 집필 사무실을 얻어 합숙에 들어갔습니다. 2개월 동안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편집과 포맷까지 완벽을 기하자는 생각에 작업량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집필 내내 햄버거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죠. 햄버거를 얼마나 먹었는지 두 달 만에 누적 포인트로 치킨 너겟 빅 사이즈를 공짜로 먹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책을 써내려 갔어요.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하죠. 절대로….”
이때 나온 책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저자의 인지도 부족에도 불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누적 판매 부수가 4만 부 이상으로 증권부문에서는 ‘필독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생명력이 긴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집필 전의 희망이 이뤄진 셈이다. 이 책이 두 사람에게 복덩이였던 이유는 책 출판을 계기로 두 사람의 본격적 외부활동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최 대표가 들려줬다.
“집필 전 유일전자라는 회사를 발굴해 기업분석 리포트를 발표하고 책의 사례로까지 실었어요. 유일전자는 지금이야 인기종목이지만 당시엔 리포트 하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책이 나오자 당시 유일전자의 박병채 전무(현 대표이사)가 식사를 한번 하지고 연락을 해왔어요. 이 때 박 전무는 우리에게 회사의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공장을 구석구석 견학시켰죠. 이것이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번째 기업탐방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기관투자가라 탐방 다니기가 쉽지만 당시에는 아이쇼핑하러 온 까다로운 학생 고객에 불과했겠죠. 어쨌든 유일전자의 주가는 1년 만에 3배 이상 올랐고, 지금은 시가 총액이 수천억 원 대에 달하는 대표적인 IT부품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가치투자를 통한 기쁨은 그로 인해 얻는 수익 이상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은 가치투자의 위대한 계보라 할 수 있는 벤저민 그레이엄, 워렌 버핏, 피터 린치를 읽으며 가치투자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자신들은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렌 버핏의 추종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가치투자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은 워렌 버핏이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워렌 버핏의 위대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1996년 처음 접했던 워렌 버핏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그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 세계적인 투자의 고수가, 80세가 넘은 후에도 변신과 자기계발, 갱신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투자와 비즈니스에서만의 변화가 아니죠. 그의 인간 자체,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국면이죠. 그런 점에서 그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직도 30년 전에 구입한 집에서 살고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신을 세계적인 부자로 만든 단순하고 안정된 가치투자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요. 나는 그에게 희망을 보며, 동시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그를 결코 따라갈 수 없으리란 좌절감 말이죠.”
같은 질문을 김 대표에게 했다. 그는 워렌 버핏이 가져다 준 희망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했다.
“버핏이 위대한 이유, 그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투자를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투자란 무엇인가, 즉 투자의 본질과 원칙을 가장 실천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그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 투자했습니다. 보험, 가구, 보석 등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지요. 큰 기업은 지분의 일부를 소유했지만 작은 기업은 통째로 소유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소유한 기업을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일임했습니다. 전문 CEO들을 신나게 춤추게 할 줄 알았던 안목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버핏을 ‘좋은 투자자’로 생각하지만 저는 그를 ‘좋은 경영자’로 생각합니다. 골방에 앉아서 책이나 보며 투자만을 궁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업가로서의 경험과 실력을 축적했던 거죠. 최근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기부할 때도 그는 그 자신의 재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 기금을 가장 잘 운용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의 진면목은 그의 이런 전인격적인 결단과 원칙의 고수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두 공동대표는 가치투자를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연구 과정’으로 정의한다. 워렌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세계적 선구자로 인정받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가치투자를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기업의 주식을 샀다가 가치에 도달하면 파는 것”으로 정의했다. 가치투자는 결국 장기투자인데 모든 장기투자는 곧 가치투자인가. 두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 주식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만이 장기투자라고 잘못 이해하죠. 고점에 사서 소위 물린 종목을 기약도 없이 오래 보유하는 것은 장기투자가 아닙니다. 장기투자는 보유기간뿐만 아니라 주식을 매수하기 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까지 기다리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보유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그 기업에 대해 오래 연구를 했고 자신감 있게 장기적으로 보유할 수 있나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기투자, 즉 가치투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가치투자는 주식투자 기법의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다. 가치투자가 보편화된 선진국에서도 이 기법이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원리는 매우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이 가치투자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조급하기 때문이다. 게으르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고, 조급하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가치투자의 본질은 적어 보이는 수익률이 긴 시간과 결합되면 결국 큰 수익이 된다는 것이다.
“가치투자와 장기투자야말로 복리의 마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투자방법입니다. 좋은 종목을 꾸준히 보유하는 것이야말로 거래수수료를 물지 않으면서 자동으로 투자이익이 재투자되는 간편한 방법입니다. 가치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좋은 종목을 좋은 값에 사고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복리수익을 향유하기만 하면 됩니다. 느려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투자가 가치투자의 본질입니다.”
VIP투자자문의 초기 고객 중엔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의 독자들이 많았다. 고객들은 3년 운용이란 까다로운 조건, 아무런 레코드가 없는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자금을 흔쾌히 맡겼다. 투자 예정기간을 30년으로 적어 넣은 투자자도 있었다.
“무의 상태에서 우리를 믿어준 고객들은 투자자문 설립 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분들에게는 평균 100% 이상의 수익률을 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금으로 투자할 때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객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희열은 자기 자금 운용으로 얻는 수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두 사람은 금융창업에 뜻을 둔 대학생들의 문의를 숱하게 받았다. 그러나 학생들과 예비창업자들은 본질보다는 절차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김민국 대표는 그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투자자문사를 목표로 해본 적이 없어요. 가치투자를 증명하고 싶었기에 사모펀드와 투자자문사가 필요했죠. 금융 분야에선 신뢰가 생명입니다. VIP투자자문을 찾는 고객은 신뢰를 맡기러 오는 것이지 돈을 맡기러 오지 않습니다. 비전과 원칙을 추구하고 신뢰를 쌓는다면 한국에서도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탄생할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그렇게 위대하고 좋은 것을 추구해야지요.”
필자 소개
한기홍
1961년 생
고려대 영문학과
중앙일보 월간중앙,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기자
현 월간중앙 객원기자, 뉴스메이커 편집위원
여러 매체와 단행본 작업을 통해 다양한 소재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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