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지금의 대통합 논의는 허구다"

<기고> 최재천 "여느 세력도 기득권 포기 안하려 해"

연초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로 본격화된 '대통합' 논의가 석달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맴돌며 국민적 관심사 밖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탈당파들은 대통합의 단초를 풀지 못하고 외곽에서 겉도는 양상이며, 민주당 등도 말만 많았지 구체적 성과는 전무한 상태다. 열린우리당에선 긴장감이 사라진 채 한반도 해빙의 반사이익으로 재집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치만 높아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들은 '대통합'이란 단어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꾼들의 이합집산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손학규 탈당, 이명박-박근혜 극한대립에도 변함없는 한나라당 및 한나라 대선주자들 지지율의 고공행진이 그 증거다.

대통합은 '국민적 감동'을 생명으로 한다. 2002년 대선막판 노무현-정몽준의 극적 후보단일화때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이란 경탄사가 터져나온 것처럼. 그러나 지금 국민은 냉소하고 있다.

지난 1월24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현재 '민생정치준비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재천 의원이 27일 본지에 긴급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대로 가면 대통합은 없다는 치열한 자성의 글이자 위기 경고문이다. 모두가 말로만 기득권 포기를 외치고 있을뿐, 정말로 기득권을 포기하려는 세력도 하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편집자 주>


"우리가 대통합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확실한 신념을 갖고 추진할 때 성공은 보장된다."(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3월 13일 통합추진위원 회의)

어디가나 대통합, 대통합이다. 열린우리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탈당파 중 일부, 민주당, 국민중심당까지 모두들 '대통합'을 이야기한다. 물론 중심은 '각자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내용과 방식을 전제한 대통합 논의는 전적으로 허구다. 도저히 불가능하다.

'정치인 노무현'에 끌려 다니는 열린우리당

먼저 열린우리당의 상황에서 출발하자. 정략적인 '기간당원제의 포기'와 연이은 대통령의 탈당으로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노무현'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했다. 하지만 '정치인 노무현'으로부터는 여전히 감금상태이다. 여전히 '정치인 노무현'은 정치적 의제를 독점하고 있고, 이로부터 열린우리당은 자유롭지 못하다. 노 대통령은 '개헌', '남북정상회담', '한미FTA' 등 국가적 중대사를 정국 주도권의 지렛대 삼아 열린우리당을 정치적으로 자신의 영역 내에 가둬놓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보육'에 길들여져 있다. 도리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열린우리당은 탈당파와 대통령의 탈당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자유로부터의 도피'행각을 일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 노무현'의 행마 앞에서 열린우리당은 늘 그렇듯 무력증에서 헤어나지 않는다. '의제'를 만들지도, '의제'를 거부하지도 못하는 양태 속에서 '정치적 불능상태'를 지속한다. 이들에게 있어 대통령은 여전히 '메시아'다. 정치 9단(?)인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도 기적을 재현해 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절차적으로는 대통합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대통합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일은 없다. 여전히 '위원회' 중이다. 사실상의 당 해체결의에 동의하며 탈당에 서명했던 열린우리당 의원은 1월 당시 100여명에 달했었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치공학'에 머문 통합신당추진모임

통합신당추진모임은 어디에 있는가? 무려 23명이 '기획탈당'을 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시들하다 못해 싸늘하다는 표현이 맞다. 반성을 위해 통합신당모임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교섭단체 구성에만 머물렀을 뿐 정책적 특성과 차별화된 흐름을 '능동적'으로 보인 적은 없다.

여전히 정치공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간목표도 여전히 교섭단체 구성이다. 대상은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으로 넓혀졌다. 이것이 '대통합'의 단계라는 것이다.

'집나간 탕아 돌아오라'는 민주당

민주당이야말로 '한심하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들이 생각하는 통합은 '집 나간 탕아들이 돌아오라'는 식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스스로 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대통합'이다. 이들의 사고는 2000년 이전에서 꼼짝달싹하지 않는다. 호남의 "고립에 대한 공포와 개혁성향(고원 박사)"을 정면으로 배반한다. 호남을 더욱 더 고립시키고 있다. 호남주민의 개혁성향을 정책적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엉뚱하게 햇볕정책을 비판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창조적 파괴'의 또 한 대상임을 깨닫지 못한다. 입으로는 '통합'을 얘기하면서 여전히 '분당책임론'을 지렛대 삼아 정치적 안위를 도모한다. 이 점에 있어 '정치인 노무현'과 '민주당'은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같은 방식의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다. 2002년 후단협 시절의 감정수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민주당은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않았다. '반노의 색맹'으로 헌정마비사태를 불러온 '탄핵사태'로 인해 민주당의 '정통성'은 이미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아직도 '분당책임론'을 들먹이며 오로지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교섭단체 구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교섭단체 구성을 지렛대 삼아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다. 그러다 이젠 '독자후보론'까지 제시된다. 이런 식의 정치행태야말로 한국현대사에 있어 피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 나간 호남 주민들을 인질로 삼는 일이다. 개혁세력과 국가의 명운보다는 개개인의 '정치적 연명'에 대한 관심 뿐이다. 특히 호남지역에 산재한 '정치예비군'들의 열망은 더욱 더 강렬해 보인다.

'파산관리인' 역에 만족하고 있는 열린당 재선그룹

이 부분에서 열린우리당 재선그룹의 무책임성에 대해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얼마 전까지도 열린우리당 재선그룹은 스스로 변화를 만들기는커녕 깨져야 할 민주당의 교섭단체를 빌미로 한 이중플레이에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민주당과의 교섭단체 구성, 민주당과의 통합을 대통합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개혁은 늘 재선그룹이 주도해 왔다. 적절한 참신성과 의정경험, 초선과 중진 사이의 연계역 등이 이들이 가진 장점이었다. 3선 그룹은 대권, 당권, 공천권 등의 '이해관계'로 인해 자칫 정치적 의도가 선명하게 비쳐지지 않을 수 있다. 초선그룹은 정치적 경험 부족으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런 측면과 단임제 대통령제, 단명에 그치고 마는 우리의 정당현실이 결합되면서 재선의원들은 특유의 역동성과 연대의식으로 정치적 흐름을 선도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열린우리당의 재선그룹은 이러한 소명에 충실하고 있는 것일까. 미드필더가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이 현대축구이다. 지금 재선그룹들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이들은 파산절차에 들어선 열린우리당에 남아 '파산관재인'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이 시기가 합리적 진보세력이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민단체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열린우리당 재선그룹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창출해 내기를 기대한다.

'미시적 정책'에 묻혀 '거시적 정치' 뒷전인 민생정치준비모임

필자가 속해 있는 민생정치준비모임 또한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 '비전'과 '정책'만이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명분은 옳았다. 하지만 세력과 관계의 정치학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정치는 나와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잊고 산다. '미시적인 정책'에 묻혀 '거시적인 정치'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다.

합리적 진보세력의 결집을 이끌어낼 정치력을 발휘할 만한 능력도, 자세도 부족하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민생정치모임 또한 여전히 표류 중이라고 자평하는 게 옳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탈당파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역으로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현재의 상황만이 존재의 이유다.

'강학'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시민단체

이런 점에서 시민단체 또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근본인식은 여전히 "정치는 더러운 것". 그래서 현실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도 철회당했고, 스스로의 대표성도 상실한 만큼 대안으로써 시민단체 혹은 민주개혁파가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요청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강학' 수준의 논의에 머무르고 있다. 낮은 단계의 정책적 연합을 공유하자는 제안에도 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시민단체가 답해야 할 차례임에도 이들은 여전히 기존 정치세력의 소멸만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현실정치를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현실정치세력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래서 늘 세싸움에서 밀릴 것을 염려한다.

물론 '수혈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논의에만 머무를 뿐 대안세력과 대안비전을 내놓지도 못하는 현실은 참으로 무기력해 보인다. 이런 방식이라면 과거 열린우리당의 무책임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조직적 결합이 아니면 또다시 '수혈의 대상'이 될 게 뻔한 일임에도 이들은 여전히 분파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탈당파를 비난하는 방식은 '당신들은 탈출하지 말고 난파선과 함께 죽어야 한다'라는 식의 저주이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시민단체가 정치적 능동성과 주도권을 행사해야 될 위급한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대통합 논의는 허구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대통합 논의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첫째, 대통합 논의는 '현상유지'만을 유일한 정치적 이득으로 삼고 있는 현실정치집단의 내부결속용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합할 생각 자체가 없다. 대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희생과 헌신을 이야기하지 않는단 말인가. 대통합 논의는 도리어 자신들의 정치적 실패를 위장하려는 가림막에 불과하다. 대통합을 무기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 구조는 철저히 온존된다. 막판이 되면 어쩔 수 없게 된 시민들이 한나라당에 대응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 자신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착각한다. 40전 전패의 기억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이들에게 2002년은 '어게인'(again)이다. 기적은 늘 되풀이된다.

둘째, 대통합의 비전과 목적이 없다. 이것은 정당정치의 근본을 망각한 처사이다. 정당은 이념이 있고, 비전이 있고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로지 '모이자는 것' 뿐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이다. 1940년대 이승만 박사식 사고이다. 한편으론 오로지 '만나자는 것'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식이다. 그러면 통일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1960년대 사고방식이다. 정당이 아닌 향우회 수준, 계모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과 법외조직인 '이익집단' 사이에 무슨 차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셋째, 이렇게 되면 설사 대통합을 통해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요행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들은 철저히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합논의는 허구다. 무엇을 위한 참여정부였던가? 정책과 비전이 없는 정부 구성의 위험성을 우리는 한미 FTA를 통해 철저히 목도하고 있다. 또다시 이런 전철을 되풀이하려고 하는가? 정확한 비전과 시스템으로 5년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조차도 갖지 못하면서 어떻게 또다시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것인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초기의 열정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해 나가던 과정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한편으론 '도로민주당'이다. 다른 한편으론 '도로 노무현당'이다. 또다른 한편으론 '도로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에 잔류 중인 의원들의 생각, 탈당파 일부 의원들의 생각, 민주당 의원들의 생각은 이러한 3가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동부벨트에 대비되는 '서부벨트론'이다. '신라' 말고 '백제'라는 식이다. 적극적으로 이념과 비전을 창출할 능력이 없으니 그저 '반한나라'라는 이름만으로 모이자는 것이다. 능동적 이념보다는 소극적 세력론만으로 한 나라와 시민의 운명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조기숙 교수의 어투를 빌자면 '시민들은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대통합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20세기에 살고 있다'.

다섯째, 비전과 정책이 없으니 중심세력이 형성될 수 없다. 시민단체는 아직 조직력이 부족하다. 이들은 아직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를 확신하지 못한다. 대통합을 이야기하는 여느 세력도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대통합 논의는 답보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대통합을 이야기하는 어느 세력도 제대로 된 대선후보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제3세력 어느 누구도 현재의 대통합논의에 참여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기대 자체가 무망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다. 단순대통합론에 얽매여 '샅바싸움'만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설사 이런 식으로 대통합이 된다 해도 이는 '동반자살'일 확률이 크다. 그래서 의사도 없고, 주체도 없고, 능력도 없고, 비전도 없고, 동력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열정도 행동도 없는 대통합논의는 거짓 말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허구라는 것이다.

"어느날 난 심심산골을 헤매다 갑자기 절벽으로 추락하게 됐다. 천만다행이었을까. 절벽 중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뭇가지를 붙잡아 간신히 매달렸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맹수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고, 나무를 놓는 순간 황천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나뭇가지 위에서 석청이 한 방울씩 떨어져 혀를 적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절벽에 매달려있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불가의 화두 중 하나이다. 현실을 뛰어넘지 못하면 해탈은 없다.

필자

최재천 의원 ⓒ 최재천 의원실
최재천 민생정치준비모임 의원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21 31
    겨울나그네

    최재천의원도 심판의 대상
    초선의원인 최재천의원의 성실성과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탈당파와 잔류파의 차이를 모르겠다.
    노무현대통령과 닫힌당신들당(최의원포함)이 보여준 오만과 무능함을 되돌아 보면
    정권이 바뀌는게 당연하고 내년 총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한 탈당이고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이해할수없다.
    소생은 차마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수 없어 이번 대선에 기권할 것이다.
    오만과 무능함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 우리 나라 정치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리라고 본다. 정말 슬픈 현실이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했을때 당신들 보다 못할까????

  • 24 20
    희망이

    손학규는 이걸 한다던데..
    기득권의 포기. 정말 그럴지는 모르지만, 한번 지켜볼만은 할 듯..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