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언한 직후 <중앙일보>가 노 대통령의 통치행태를 맹비난하며 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이 부결되면 조기하야,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당겨 치러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조기하야론'은 노 대통령이 개헌 추진 입장을 밝힌 직후 이명박계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주장했다가 박근혜계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는 미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권영빈 "盧, 개헌 부결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해야"

권영빈 <중앙일보> 논설고문은 <중앙일보> 23일자에 게재한 '노무현식 어젠다의 시작과 끝'이란 글을 통해 "노무현 정권 4년을 정리해 볼 때 가장 특징적인 게 어젠다(의제) 설정 방식"이라며 "재신임 선언에서 개헌론까지 지난 4년은 대통령이 던진 어젠다에 따라 여론이 들끓고 국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권 고문은 '노무현식 어젠다 세팅'의 특징으로 " 명분이 강하고 원론적이며 도덕성이 강한 의제를 택해 끝까지 몰아붙이는 명분 집착형 배수진이고, 어젠다 그 자체가 갈등 분열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장악하는 특출한 시공작전을 전개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권 고문은 화제를 '개헌'으로 돌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임기 말 시점에서 개헌론을 새삼스레 들고 나온 것일까"라고 물음을 던진 뒤, "명분에 적합한 의제다. 독재 권력의 정권 연장을 막기 위한 장치가 5년 단임제였고 민주화 투쟁의 값진 승리였다. 민주화 20년 시점에서 4년 연임제로 환원하는 게 명분에 부합된다"고 자문자답했다.

권 고문은 또 "그렇다면 왜 여권이 분열된 이 시점에서 지지도가 바닥인 대통령이 이미 한번 접은 어젠다를 새삼 끄집어내는가"라고 또다시 물음을 던진 뒤, "이 질문 속에 답이 있다. 갈등.분열을 통한 자파 세력 결집으로 잘 되면 재집권, 못 돼도 야당으로서 '나는 그때 주장했었다'는 정치적 알리바이를 축적하려는 정치 공세라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권 고문은 이어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 "이탈한 여당 의원들까지 개헌을 반대하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개헌을 진정 밀어붙이겠다면 하나의 전제를 분명히 달아야 한다"며 "개헌이 부결될 경우 대통령직을 물러나겠다는 입장 천명"이라며 개헌 부결시 노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했다.

그는 "그래야 명분 집착형 배수진의 노무현식 승부수에도 맞고 소모적 논쟁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끝낼 수 있다"며 "대선을 6개월이라도 앞당기는 게 나라나 대통령직의 표류를 막기 위해서도 나쁠 게 없다"는 주장으로 글을 끝맺었다.

盧 "누구 좋으라고 하야?"

권 고문이 주장한 '하야'에 대해 노대통령은 지난 1월11일 개헌 기자회견에서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개헌 부결시 하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임기단축은 하지 않겠다"며 "개헌이 부결돼 내가 임기를 그만두게 되면 (한나라당은) 당연히 부결시키고 선거를 빨리 하고 싶지 않겠나"라고 반문했었다. 노 대통령은 "개헌이 부결되는 것을 불신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는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개헌안에 제 신임을 걸었을 때 불신임이지, 나는 여기에 내 신임을 걸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책무로서 이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신임을 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은 국정을 착실하게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가는 노대통령 발언을 박근혜계가 강력한 의혹의 눈길을 던졌던 '노-명박 연대' 가능성이 물건너갔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자, 노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했다.

이런 마당에 권 고문이 또다시 '조기하야론'을 들고 나옴에 따라 청와대의 강력반발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 정가 일각에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검증 논란으로 '3월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보수진영의 초조감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