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평양 가고, 김정일 뉴욕 초청하라"
<기고> 북한 강경파와 미국 네오콘의 반격을 무력화해야
그 시작은 2006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10월 9일 핵실험 이후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던 한반도의 핵먹구름이 지난 ‘2,13 합의문’의 전격 도출로 한반도 비핵화에 새로운 희망의 근거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힐은 김계관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번 회담이 극적으로 성안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영향과 큰 틀은 이미 북미간의 양자대화란 형식이 6자회담 이전에 전격적으로 두 차례나 있었던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김계관을 놓치지 않겠다는 크리스토퍼 힐의 적극성이 돋보인 것으로 확인된다.
올해 1월 16일에서 18일 이틀 동안 힐과 김계관 간의 베를린 회동이 이번 북핵 협상에 대한 양국 간의 합의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인식한 '절반의 합의'를 이룬 전반부 미팅이었다면, 지난 1월 베이징에서의 힐과 김계관의 2차 양자 회동은 이번 베이징 합의문 창안에 결정적인 의견일치의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절반의 합의'를 낳은 후반부 회동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베이징에서의 힐과 김계관 간의 2차 북미회동시 이미 북미양국은 큰 틀에서의 '2.13 합의문' 형식에 서명까지 하기로 내심 의견일치를 마친 상태였음이 북측 소식에 밝은 한 인사의 전언이다.
지난 1월 베이징에서 힐과 김계관이 단독 회동을 하면서 북미 양자 간의 입장 조율을 하던 중, 북측의 김계관은 힐의 제안과 힐과의 협의 내용에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본인이 직접 힐에게 "당신의 제안과 우리 두 사람이 협의 해 온 내용들을 평양으로 가지고 들어가 당 지도부의 입장과 결과를 받아 가지고 나오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이에 힐이 "그러지 말고 김계관 당신은 이곳 베이징에 나와 함께 남아 있고, 대신 당신 밑에 있는 부하 직원을 보내서 답을 가지고 오도록 하자" 고 할 정도로 힐이 김계관을 적극 붙잡고 논의한 것이 북미간 큰 이견이 노정되지 않은 결정적 요인으로 전해진다.
부시 '하노이 제안'의 중차대성
이번 '2.13 합의문'이 도출되는 과정과 배경에는 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이제 이를 차치하고 베이징 합의문의 본원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9.19 공동성명 이행 초기조처’ 합의 내용 중 워킹그룹을 가동하여 한반도 비핵화,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경제.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의 복합적인 문제를 전방위적이면서도 6자회담 참가국들 간의 다자속의 양자관계와 양자속의 다자간 협상 방식을 선택하여 회담을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할 수 있는 협의 틀에 대한 합의 내용을 발표한 점은 기존의 어떤 북핵 폐기 방식과도 다른 매우 다차원적이고 포괄적인 합의 내용인 것이다. 즉, 이는 북한이 핵을 CVID 방식으로 확실하게 폐기만 한다면 북한이 원하는 모든 외교적 이익의 미래는 얼마든지 열려 있음을 예시해 놓은 거시적 인센티브인 것이다.
‘2,13 합의문’이 94년 제네바 합의문의 수준보다 빼어난 합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기존의 하무라비 법전식의 팃포텟 (tit for tat) 방식의 '이에는 이 ,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맞대응 정책에서 핵폐기 작업을 이행하면 보상하겠다는 기브엔테이크(give & take) 정책으로 전환되었고, 보상의 적용 대상과 내용도 훨씬 구체적이고 디테일하다는 점이다.
영변핵시설의 5MW/50MW/200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공장 등을 폐쇄 봉인하고 IAEA 사찰관을 복귀시켜 핵포기 대상 등 모든 핵프로그램 목록을 협의하면 중유 5만t 상당의 긴급 대북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기본 틀이 비록 94년의 제네바 합의문에 기초한 아이디어로 생각되지만, 북-미 양자회담을 개시하여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해제 과정을 개시할 수 있고,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과정에 진전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받아들이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깊게 묻어 있는 부분이다. 이점은 북한이 핵폐기를 단행한다면 미국은 북-미관계의 정상화에 대한 문호를 열어 놓겠다는 의중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합의문에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과정에 진전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미국이 인정하고 들어간 것은 합의문 내용 중 가장 관심 있게 해석하고 지켜봐야 할 큰 대목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작년 12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에이펙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한국전 종료협정에 공동 서명할 수 있다”고 했었던 발언과 깊은 외교적 일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언론들 대부분이 부시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보도하면서 발언 내용의 해석에만 급급한 나머지 부시 대통령이 왜 이와 같은 발언을 베트남에서 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지정학적 분석은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베트남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돌릴 수 있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한국전 종료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배경에는 어제 미국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과 같은 지구상의 어떤 적성국가도 오늘은 적성국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으며 잠정적 민간무역대표부 설치를 시작으로 얼마든지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강하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2,13 합의문’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점에 필자의 눈이 번쩍 뜨였고, 북한은 물론 남한도 이 부분에 초미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특히 북한이 사용 후 연료봉 추출 플루토늄을 포함하여 모든 핵프로그램을 완전히 신고하고 흑연 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하여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을 불능화 시킬 경우, 중유 95만t에 상당하는 경제 에너지지원, 플러스 인도적지원의 당근을 제시하고 있는 점 또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핵정책이 과거 일방주의적 압박정책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맞춤형 포용정책’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우리나라와 중국식으로 표기한다면 크게 받고 크게 준다는 '대수대수(大授大受)정책'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2,13 합의문’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관찰해 보면, 북한이 기보유한 핵무기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점은 협상의 마지막 단계인 북-미관계 정상화에서 맞교환(trade off) 할 수 있는 최종의 어젠더란 점에서 시작부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합의문이 갖는 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북한의 핵폐기 이행과정 속에서 북한이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신속히 하면 할수록 그리고 핵협상의 지난한 과정인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북한의 핵폐기 이행에 따른 대응과 보상 또한 그만큼 커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매우 치밀하고 미시적인 인센티브 방식을 적용한 점이다.
부시행정부의 대북핵정책이 경제적 봉쇄와 제재로부터 경제적 보상과 해제로 전환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번 합의문이 북측에겐 북핵폐기에 따른 비용(cost)보다는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benefit)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북측으로 하여금 더 큰 당근에 더 큰 유혹을 느끼게 만들고 있고, 이러한 점에서 이번 ‘2.13 합의문’에 반영된 미국의 행동은 인센티브에 대한 북한의 욕망을 더욱 팽창시키고 있다.
부시, 왜 변화했나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대북 핵정책에 대해 이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이라크 정책에 대한 실패와 이란 핵정책 그리고 미국 중간 선거 결과에 대한 민주당의 의회 장악과 2008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핵심 이유들로 분석된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해 왔었다. 그러나 이 악의축의 국가들을 다루는 데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그 중 한 곳이라도 성공한 케이스로 건지고 싶은 욕구가 그 만큼 깊어졌다.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통해 악의 축의 한 부분의 전제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라크란 늪으로부터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문제는 반미감정의 확산 일로에 있는 이라크와 이란인데, 최근 들어 이란이 공개적으로 핵개발을 주장하고 나섰고 이란의 핵 기술에 북한과의 교류의 흔적이 발견되어 미국으로 하여금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것을 계기로 중동 전역의 신정체제에 기반한 군주제 영토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지만, 이라크전의 결과로 사망한 미군 병사들의 숫자는 3,100여명에 육박할 만큼 날로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의 원인을 추적한 결과, 이란이 공급한 무기에 의해 미군 병사가 죽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문제는 이란의 핵문제와 더불어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어떻게 이란문제를 다뤄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주고 있다.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미 무드를 타고 알카에다 조직이 이란으로 집결할 경우 이란이 이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공급해 주고 은신처까지 제공해 준다면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과 이스라엘 보호정책은 쉽게 곤두박질치게 된다. 여기에 이란이 만일 핵개발에 성공하여 이스라엘의 핵 억지 정책이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되거나 이란이 개발한 핵 탄두가 중동내부의 알카에다로 흘러 들어가 이들이 중동 전역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나설 경우엔 이란의! 현대통령인 아메디네자드의 '굿바이 이스라엘 정책'과 하세미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의 '반유대주의 정책'은 섬뜩한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호전적인 수니 아랍 독재자들은 온건한 시아파가 지배하고 있는 이란의 핵발전정책에 맞서기 위해 핵개발 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고, 이 문제는 급기야 중동의 종파간 핵도미노 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란이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사실상 중동 통제가 쉽지 않게 되며, 미국은 정신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외교적 방법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이란 핵문제 해결에 대한 절박한 인식 때문인 것이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만 이의 여파로 이란의 핵타결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측 의중은 베이징 합의문이 발표되자마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번 합의문은 국제사회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한데 모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란에게 비춰보여 줄 수 있어야만 한다"라고 보인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어쩌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이라크전에서 훈련된 자국 병사들을 동원하여 이란 핵시설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거나 아니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자국의 예방방어 차원에서 기습적으로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중재로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된 것도 일단 북핵문제가 협상으로 풀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EU의 중재로 이란핵 또한 외교적 방법으로 타결 지을 수 있다는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인 이라크를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붕괴시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을 이란과 북한에 과시한 후, 이러한 전쟁의 전시효과를 통해 이란과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토록 강압해 왔던 부시행정부의 기존 정책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선 것이다.
결국 부시 행정부 초기의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전쟁을 통한 강압적인 핵포기 분위기 확산 효과’는 악의 축 국가들의 핵포기 도미노를 결과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고, 이제는 역으로 ‘외교적 협상의 분위기 확산 효과’를 결과하고자 북한 핵문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에 외교적 총력을 경주하게 된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정권창출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불량국가, 테러지원국가로 불렀던 선제공격의 대상인 북한을 상대로 사상 유례없이 외교적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은, 최소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더 이상 북핵확산을 막기 위한 관리적 측면이 강하지만, 최대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북핵폐쇄를 계기로 이라크 외교에 대한 실패를 만회하고, 민주당에 장악당한 의회로부터 공격을 피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부분은 2008년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포석인 것이다.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클린턴 힐러리 상원의원의 백악관 진입과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막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물타기를 가함으로써 더 이상 민주당에게 북핵 이니셔티브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미국의 차기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주게 될 경우, 자신과 측근들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책임을 의회와 후속 민주당 정권으로부터 강하게 요구 받게 될 것이고, 민주당 정권이 주도한 이라크 청문회장에 서서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시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북핵 문제에 관해 부시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북한의 2차, 3차 핵실험 강행과 북한이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민주당이 정권잡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면서, 계속 북핵 사태를 악화시켜 나가는 경우다. 만일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까지 임기 1년밖에 남겨 두지 않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으로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수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공화당의 정권창출은 난망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여기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왜 북핵폐기에 대한 보상지원을 강하게 역설하는 태도로 돌변했는가에 대한 숨은 이유가 있으며, 선거전문가인 칼 로브가 부시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여전히 백악관에서 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채택한 94년 제네바 북핵합의문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포린어페어즈>의 기고문에서 “제네바 합의문은 미국 측 입장에서는 북핵을 돈으로 매수한 '뇌물정책'이었고, 북한 측 입장에서는 '핵공갈' 전략이라고 비판했었다. 결국 제네바 합의문은 미국의 '뇌물과 북한의 핵공갈'의 조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에 이행시점과 매 단계별 이행조치에 대한 보상책을 제시하는 ‘맞춤형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이번 '2.13 베이징 합의문'의 기초를 94년 제네바 합의문에 두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라이스 방북하고, 김정일 뉴욕 초청하라'
이 점과 관련하여 필자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에 이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뉴욕 유엔으로의 초청을 계기로 한 북-미 정상회담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을 했었던 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합리적 방법은 북-미 양정상간의 정치적 의지로 인한 타결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 또한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가는 것(bottom-up) 보다는 위로부터 아래로 가는 방식(top-down)이 훨씬 빠르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 정상 간에 서로 핵무기 폐기와 북-미 수교라는 큰 이슈를 행동대 행동의 동시원칙으로 일괄타결 지은 다음, 나머지 세부적인 사항들을 직업공무원인 실무진들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다시 실무진들의 손을 거쳐 양 정상에게까지 올라가는 방식을 밟게 되면, 이런 식의 협상은 아무리 합의문이 좋아도 시간을 끄는 것 이외의 제한된 시간 안에 극적 타결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방식을 선택하여 핵타결을 원한다면, 6자회담 관련국들의 외무장관 회동을 자주 열어 핵 논의의 수준을 격상하고, 그 결과를 각국 최고 지도자에게 즉시 전달하고 훈령을 즉각적으로 받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2.13 합의문’ 이행을 위한 워킹그룹 또한 잘 작동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공전의 공전을 거듭하다 또 다른 합의문을 모색해야하는 지루한 협상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끝으로 이번 ‘2.13 합의문’이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이를 확인함으로써 핵 협상의 최종 단계에서 북-미 국교정상화가 이뤄 질수 있으려면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몇 차례 가진 후 어떤 형식으로든지 부시-김정일 정상회담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양국 정상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향해 김 위원장을 만나 한국전 종료협정에 공동 서명하고 싶다는 공개의사를 밝힌 만큼 이 부분을 김 위원장은 어떤 형식으로든지 부시 대통령에게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 시한의 레드라인을 2008년 12월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김 위원장만 결심한다면 대담하고 속도감 있는 북핵회담을 진행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풀리면 언제든지 북미관계 정상화 또한 성사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클린턴의 임기 말 증후군을 또다시 부시대통령에게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부시 대통령의 임기는 2년이나 남아 있다. 그리고 그는 클린턴의 포용정책 이상의 플러스알파를 북핵협상에서 찾고자 새로운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대통령은 경우에 따라서 김 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보냈던 방북 초청장을 자신에게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도 이와 유사한 북미관계 상황에 접근해 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 김 위원장이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북한 강경파와 미국 네오콘은 반격을 노릴 것이다
끝으로 미국이 진정으로 이번 협상에서 북핵 문제를 매듭짓고 싶어한다면 협상파인 김계관이 북한 내부에서 더 이상 군부 강경파들로부터 코너에 몰리지 않도록 김계관 부상에게 힘을 실어 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국의 노력의 일환으로 힐의 방북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에 대한 암시를 북한에 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북측의 강경파들은 또 다시 김계관의 발목을 잡고 핵협상의 진전을 가로 막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이징 합의문을 백지화시키려 시도할 미국내 네오콘들의 반격에 대비해 이들에 대한 선제공격 또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부시 대통령이 북핵 합의를 성공적인 실행화의 단계로 마무리 지으려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처럼 6자회동 이전에 북미간 직접 대화형식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지나치게 외교적 접근보다는 지금처럼 정치적 접근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를 지속해 나가라는 것이다.
북한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사항들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북핵 협상을 담판 지을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그 기회는 크리스토퍼 힐-콘돌리자 라이스-부시로 이어지는 초고속 라인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라인은 과거 켈리-콜린 파월-부시로 이어지는 라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직이며 시스템이란 것을 북한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우리 정부도 북한과의 전면적 교류 확대의 폭을 6자회담의 분위기에 맞춰 이행해 나가야만 북측 강경파들의 입지 또한 약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거대한 데탕트가 시작되면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의 신용등급도 높아 질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하면서 남북문제를 접근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필자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장성민씨는 현재 평화방송 시사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를 진행하는 동시에,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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