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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노트 위기' 북한의 탈출카드는?

<기고> 딜레마에 빠진 북한의 '대미 위폐전략'

최근 들어 북핵 문제가 소강상태로 빠져 들었다. 북한의 달러 위폐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북-미간 양측 모두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근본적인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떤 경우든, 부시 행정부와는 핵협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핵협상을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간끌기식 전략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미국은 선거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부시행정부의 임기는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북한의 판단이다. 미국의 다음정권으로 민주당이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 북한의 태도이다.

그래서 굳이 북한의 대미 핵전략을 표현한다면 “접촉을 통한 타협 회피 전략” 이나 혹은 “소극적 타협을 위한 시간벌기 전략” 이라 언급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평양은 자신들이 딜레마에 빠지게 되면 이 양자의 전략을 번갈아 가면서 대미협상에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북한이 이런 전략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과 접촉을 하지 않고 타협을 회피하는 전략을 펼칠 경우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워싱턴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체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몰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워싱턴의 의중을 탐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항상 필요했다.

둘째, 북한이 의도적으로 접촉을 피할 경우엔, 이는 결국 워싱턴의 네오콘들에게 북한이 핵무기 제조 강행을 결심한 것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고, 이러한 상황오인이 자칫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평양은 워싱턴과의 핵협상에서 두 가지의 확신을 갖고 있다.

첫째, 현 상황으로서는 워싱턴과의 핵협상에서 어떤 만족할 만한 타협의 결과물도 얻어 낼 수 없다는 확신이다.

둘째, 대화를 위한 접촉을 중단하면 이것 자체가 곧 워싱턴의 대북한 군사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접촉 중단으로 생성될 수 있는 긴장을 막으면서, 실질적인 협상과 타협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북한의 대미 핵전략이다. 솔직히 말해, “대화는 하되 협상은 소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현재 평양이 갖고 있는 대미 핵전략의 핵심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 달러 위조지폐

그런데 최근 들어 북한의 이와 같은 대미 핵전략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달러 위조지폐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과의 접촉 자체를 소극적으로라도 이행하면서, 실질적인 협상은 다음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피하고, 더불어 시간을 벌어 가겠다는 것이 북한의 유용한 대미 핵전략이었는데, 이번엔 역으로, 달러 위조지폐 문제 때문에 스스로 대미접촉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그동안 추진해 왔던 “접촉을 통한 타협 회피 전략”이나“소극적 접촉을 통한 시간벌기”전략의 실효성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달러 위조 문제가 북한의 대미 핵전략에 수정을 요구하는 현안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핵 문제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상위의 협상 어젠더가 됨은 물론, 결국 북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자금원이 동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핵무기 제조에도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심지어 핵문제 협상까지도 장기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북한이 먼저 풀어 나가야 할 문제는, 당연히 달러 위조지폐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북한은 마카오에 밀사를 보내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 측에 북한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풀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마카오 당국은 그를 쫓아 버렸다.

마카오 당국이 북한의 밀사를 쫓아 낸 것은 중국의 중앙 정부가 북한의 관리를 쫓아낸 것과 같다.

지난 2월에는 북한 대변인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북한의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방해하고 있다”는 불평을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논평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키 위해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지난 1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긴급하게 중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월17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 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 계좌에 북측 고위 인사들의 명의로 들어 있는 돈이 모두 차질 없이 북한으로 안전하게 송금되도록 중국 정부가 정상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는 협조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둘째, 북한의 달러 위조지폐 제조 문제가 중국의 영토에서 발생된 일이었기 때문에 자칫 이 문제로 인하여 조-중간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한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 차원의 방문이었다는 것이다.

셋째, 달러 위조지폐 문제가 가져올 북-미간의 긴장강화를 막기 위해 중국에게 중간 조정자 역할을 강화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겉으로는 온화한 입장을 보였지만 속으론 매우 난감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유는 바로 미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금융난을 도와주기 위해 북한이 마카오에서 자금 세탁을 할 수 있도록 눈을 감아주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중국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중국이 자국의 땅에서 발생한 달러 위조지폐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고 처리해 나가는가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도 북한의 달러위조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혹시, 천만분의 일이라도 중국이 북한의 위폐달러 세탁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나온다면, 미-중간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중국 정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북한 내부 상황에 밝은 중국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정부와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에 입금된 자신들의 자금에 관한 동결 해제문제를 협의했고 중국정부의 동의까지 구했으나, 중국이 차일피일 미루며 실행을 하지 않아서 이근 외무성 미국국장을 미국에 직접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미국과 직접 교섭을 통하여 위폐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조선의 소장파 인민대의원들은 '중국에 실망하고 미국에 거절당한 이상, 우리들(북한)의 갈 길은 핵 실험뿐! 연내에 강행하여 자주라도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위조지폐 해결을 위하여 미국으로 갔고, 지난 3월 7일 북-미 접촉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안을 내놓았다.

첫째, 위조지폐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비상설 협의체를 구성하자.
둘째, 미국 내 북한 계좌를 개설해 달라.
셋째,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를 해제해 달라.

그러나 북한의 이런 요구 사항은 모두 거절당했다. 북한 심층부의 판단은 옳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점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되었다.

우선 그동안 위폐문제와 핵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 나갈 수 없다고 했었던 북한이 자신들의 과거 입장에서 많이 후퇴하여, 위폐문제와 6자회담을 다소 분리해서 대응해 나가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을 상당히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은 그동안 전반적인 금융제재를 없애야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에서 방코델타 은행에 대한 제재만이라도 풀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아, 자세를 상당히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 심지어 이근 미국국장이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 문제에 해당하는 관련 정보를 주면, 위폐 제조자를 붙잡아 종이와 잉크 등을 압수한 뒤, 미국 재무부에 통보해 주겠다”는 입장을 보인 데서는 북한의 태도가 전례 없이 누그러졌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명백한 불법행위는 더 이상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북한의 세 가지 입장은 모두 거절되었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의 중재역할도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핵문제로 인하여 미국이 북한에 발목을 잡혀 왔다면, 이제 위폐 문제로 북한이 미국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북한의 탈출 카드는?

그러면 앞으로 북한은 위폐 문제 해결을 위하여 어떤 탈출 카드를 선택할까?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첫째, 달러 위조지폐 제조 문제를 솔직히 시인하고, 앞으로 재발행 금지를 미국에 약속하며, 달러 위조지폐 제조에 사용되어 왔던 일체의 기계를 완전해체한 후, 분리 수거된 기계 부품들을 미국에 말끔히 이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의 국무성이 바라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모든 요구를 완전 시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이 부분에 대해서 미국이 다소 양보적인 태도를 견지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둘째, 북한은 첫째항의 입장에서 조금 후퇴하여 “부분 시인과 재발행 금지를 약속”하는 선에서 달러 위조지폐 문제를 매듭짓고, 대신 미국도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경제봉쇄를 해제해 주길 바라고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던 달러위조지폐 제조 책임자를 문책한 대신, 미국이 이 문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제문제에까지 확대하지 않은 선에서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속마음을 미국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셋째, 아무런 해결책 없이 달러 위조지폐 문제가 장기화되고, 그로 인하여 6자회담이 계속 교착국면에 빠져들게 될 경우, 북한은 핵협상에 대한 시간지연을 내심 반기겠지만, 이와 동시에 위조 달러 문제로 겪게 될 수 있는 경제적 궁핍은 피해야 하는 현실적 절박감을 안게 된다. 북한은 북미간 대화가 너무 장기간 중단되는 것도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달러 문제에 가려 있는 핵문제를 끄집어내어, 어떻게 해서든 핵 이슈를 위조 달러 문제보다 상위의 어젠더로 돌려놓으려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와 동시에 중국과 남한 그리고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과의 관계교류를 강화시켜 나가는 쪽으로 외교 전략을 수행하면서 고립에 빠진 자신들의 상황으로부터 탈출하여, 역으로 미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외교적 행보를 바꿔 나갈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카드로, 우선적으로 위폐문제를 6자회담장에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미국의 위폐 문제 때문에 북핵문제에 대한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위폐문제와 핵문제는 분명히 별개라는 기본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장에 복귀하여 위폐문제를 논의하길 원한다면 미국도 이를 막지는 않겠다는 태도이다. 다만 6자회담장은 어디까지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기제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핵 대화를 먼저하고, 나중에 위폐문제를 논하자는 것이 미국의 태도이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장에서 최소한 위폐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싶어한다. 바로 이 부분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더불어 위폐문제 해결에 대한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이 끝까지 최소한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분명 핵개발에 보다 빠른 속도로 박차를 가하여 부시대통령의 신경 세포를 자극해 나가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내 여론이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 이상 북한 핵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압박을 가하는 수순을 밟아 나갈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결정타는 핵실험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거나 아니면 동해상공을 향한 미사일 실험 발사가 될 것이다. 단, 그 시점은 현재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차 동해상에 떠있는 미 핵추진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훈련을 마치고 동해와 부산지역을 완전히 빠져 나간 이후가 될 것이다.

필자 소개

장성민 대표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장성민씨는 현재 평화방송 시사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를 진행하는 동시에,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이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대표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14 15
    무학대사

    그래 이런 글이 나와야 해
    이제 재밌는 글들이 올라 오네
    이런 글이 나와야 정리가 되지.

  • 11 21
    전언

    예리한 분석
    이런 품격 높은 기고문이
    이곳 뷰스앤뉴스에 실리니
    전도가 매우 밝게 느껴지는군요.
    한국 언론, 치고받고싸우고
    정치노름이나하는 그런 것에서
    떠나 대~한민국 지성의 장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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