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커피 원가 120원' 발언 일파만파…
이재명 '커피 원가 120원' 발언 일파만파… 원가는 원두값 인건비·임대료는
오수진 2025. 5. 18.
16일 이재명 군산 유세 발언 '후폭풍'
인건비·임대료는 누가 올려놓았느냐
소상공인을 악덕 폭리사업자로 모느냐
소상공인의 피땀 어린 생계를 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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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재명 후보는 지난 16일 전북 군산 유세 도중 과거 자신의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계곡 불법영업 근절 사례'를 자랑하는 과정에서 닭 5만원 받으면서 땀 삐질삐질 흘려 1시간 동안 고아서 팔아봐야 3만원밖에 안 남고, 커피 한 잔은 8000~1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알아보니 원가가 120원이더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굳이 그 말을 꺼낸 것은 후보자 본인도 그 사실에 공감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라며 이재명 후보는 사실은 소상공인들을 악덕 폭리사업자로 보고 있던 것 아니냐라고 질타했다.
이어 일반적인 커피숍 등 자영업자의 비용 부담 구조는 인건비와 임대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그 외에 원재료비, 각종 세금과 수수료도 있다. 그럼에도 그 가격구조를 외면하고 단순한 원재료비만 놓고 가격이 과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얘기한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건비는 누가 그렇게 올려놓았느냐. 임대료는 왜 그렇게 올랐느냐며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가격 인상이 결국 소상공인의 부담을 늘리고 가격을 올려놓은 주범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김혜지 중앙선대위 상근부대변인도 이 후보의 발언은 단순한 실언을 넘어,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민생 경시가 낳은 참사라며 임대료·인건비·세금·감가상각 등 자영업자들이 짊어진 현실은 외면한 채, 원두값만 보고 폭리를 취하는 듯 묘사한 건 자영업 현실에 대한 총체적 무지이자 오만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부대변인은 대파값으로 정부를 조롱하던 그가, 이제는 국민의 삶을 조롱하고 있다며 스스로 '경제 대통령'을 자처해왔지만, 커피 한 잔의 원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은 결국 들통 났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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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50518115221032
1921. 9.
[ ...... 그 理由는 거긔에 運搬費가 붓고 仲介人의 手數料가 잇고 또 商人側으로 보면 그 집貰, 使用人 給料, 그 物品이 곳 팔리지 못하면 그 本價金에 대한 利子 其他 一切의 所費를 그 商品의 本價우에 添付치 아니할 수 업슨즉 그만한 利金을 부티지 아니하면 計算이 되지 아니하니까 ........ ]
[ ..... 작은 일, 큰 일에 압서는 것은 돈이나 都是 그것의 不給 때문에 어찌 할 수 업는 것이 今日의 우리가 아닌가. ....... 이 크다라한 經濟的 憂慮의 소리는 不知中에 合하고 또 合하야 듸디어 우리 一般을 擧하야 産業的 運動을 開始하게 되엇도다.
.... 「우리도 남과 가티 살어야 하겟다.」 .....
..... 經濟的 壓迫으로부터 脫出할 道를 講究치 아니하면 이것이고, 저것이고 손을 대여 볼 수가 업겟다. ......
이제부터의 우리야말로 生存競爭場裡의 新勇士가 되는 셈이며 이 싸움의 勝負이야말로 우리의 民族的 死活을 判斷함이 될지로다. ....... ]
우리의 産業運動은 開始되엇도다
개벽 제15호
1921년 09월 01일
金起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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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날 鍾路 某雜貨店에서 펄렁펄렁하는 넥타이 하나를 삿는데 1圓95錢을 주엇다. 그런데 암만 보아도 그러케 갑이 만흘 것 갓지는 아니하얏다. 그러나 그 갑을 주지 안코는 살수가 업섯다. 그 일이 암만하야도 마음에 켱기어 하루는 京城工業專門學校에 단기는 K君에게 그 實物을 보이며 이것을 손수 짜서 지을 것 가트면 그 갑이 얼마나 되겟는가 한즉 40錢內外이라 한다. 40錢 內外의 原産物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에 1圓4,50錢의 딴돈이 附加된다 하야서야 消費者의 苦痛이 넘우나 甚치 아는가 하야 이를 다시 雜貨業하는 某友에게 그 內容을 探問한즉 그 某友는 나에게 이러케 말하야 주엇다.
友 『그 넥타이를 大阪都賣商으로부터 直輸入할 時는 每一件에 60錢이오. 만일 그것을 京城 진고개 日本人都賣商으로부터 購入할 時는 1圓20錢이며 그것을 鍾路나 其他에서 散賣할 時는 1圓90錢 或은 2圓이 되는 것이다.』
記者 『그러면 우리 朝鮮商人들은 모다 大阪으로서 直輸入하는가.』
友 『直輸入도 하지마는 만히는 진고개의 商人으로부터 間接輸入하는 것이니라.』
記者 『웨 直輸入을 行하지 못하는가.』
友 『勿論 計算上으로 보면 直輸入하는 것이 可하겟지마는 우리 朝鮮人에게는 그러케 될만한 交通의 길이 열리지 못하얏다. 交通의 길이라 하면 普通으로는 汽車汽船을 聯想할지나 그러나 그것은 交通의 機關은 될지언정 直接 그것이 交通의 길은 아니니 적어도 商業上 意味에 在한 交通의 길은 能히 그 去來할 相對方의 言語文章을 通하며 그곳의 商慣習을 解得하며 또는 그곳의 新聞雜誌를 購讀하야써 그곳 經濟界의 變化를 暸知한 然後에 비롯오 彼此間 交通의 길이 열리는 것이니 우리 朝鮮商人은 이만한 商事經營上의 實力을 所持치 못하얏스며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생각할 것도 업시 무슨 因緣으로나 市內의 어떤 都賣商과 去來를 始하얏스면 十年이던지 百年이던지 그대로 因襲할 뿐이오. 거긔서 한 거름 나아가 어떠케 하면 더 조흔 輸入方法이 잇슬가 하는 것 가튼 일은 꿈에도 생각지 아니하니라.』
記者 『그것은 學術的 知識을 應用하여 하는 商業이 아니오. 商人中의 多數는 오즉 從來의 因習을 그대로 遵用하는 일이라. 依例히 그럴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商人들의 原價 5,6拾錢에 不過하는 것을 2圓을 밧는 것은(16) 넘우 無理가 아닐가. 이뿐 아니라 내가 日前에 本社 代理部에 委托하야 上海로부터 腕卷時計 한 개를 부텨왓는데 關稅 아울러 其價가 14圓이라. 이를 南大門通 某時計店에 보내어 이곳의 市價를 探한즉 적어도 25圓은 주어야 되겟다 하니 其故- 如何오.』
友 『그것은 알고보면 족음도 異常한 일이 아니지. 問題의 넥타이로 말할지라도 大阪서 60錢하는 것이 서울 진고개에 와서 都賣가 되면 1圓20錢되고 또 한번 구을러 散賣가 되면 2圓이 되는 것을 볼지라도 商品은 原産地를 遠隔하면 遠隔할스록 其價는 高하는 것이라. 그 理由는 거긔에 運搬費가 붓고 仲介人의 手數料가 잇고 또 商人側으로 보면 그 집貰, 使用人 給料, 그 物品이 곳 팔리지 못하면 그 本價金에 대한 利子 其他 一切의 所費를 그 商品의 本價우에 添付치 아니할 수 업슨즉 그만한 利金을 부티지 아니하면 計算이 되지 아니하니까…』
記者 『그러면 結局의 損害는 最多數者되는 消費人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거긔에 대한 그대의 생각이 어떠한가.』
友 『勿論 消費者의 損失이 되고 마는 것이다. 損失을 防備할 對策으로는 (一)一日이라도 速히 朝鮮工業의 發展을 策하야 多數의 商品은 그 原産地를 朝鮮內로 하게 할 것. (二)不得已 外國에서 輸入할 것이면 間接輸入을 그치고 直接輸入을 行하되 그리하기 爲하야는 商業上의 學文을 修得하야써 機械的 賣買뿐이 商事가 아니라 頭腦로 經營하는 것이 商事임을 事實로써 나타내이게 할 것. (三)消費者된 自身은 消費組合과 如한 自護機關을 設置하야써 될 수 잇는대로 原價에 近한 代價로써 商品을 交換할 것을 取할 것 等이라.』고.
産業運動開始의 經路
經濟的 哀話로써 右의 두 가지 例를 적엇다. 그러나 어찌 이뿐이리요. 試하야 今日의 우리 朝鮮사람들로 하야금 一時, 그 모든 所云爲를 그치고 經濟的 壓迫으로부터 어든바 哀話를 적어보라 하면 누구나 다 이만한 例는 들것이다. 試思하라. 今日 우리들의 움직이고저 하는 어느 곳에서 經濟的 壓迫에 遭遇치 아니한 적이 잇는가. 우리는 훌륭한 目的으로 어떠한 會社를 組織코저 한다. 그러나 株金이 拂込되어야 하지. 新聞雜誌를 經營코저 한다. 代金이 回收되어야 하지. 무슨 會務의 發展을 圖코저 한다. 또한 돈이 잇서야 하지. 其他 한낫 學校를 세우고저 할지라도,(17) 아니 한낫의 講習所를 세우고저 할지라도 돈 때문에 實現이 困難하며 其外 작은 일, 큰 일에 압서는 것은 돈이나 都是 그것의 不給 때문에 어찌 할 수 업는 것이 今日의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 「이 돈을 어떠케 하면 어들 수가 잇스며 이 艱難한 生活을 어떠케 하면 裕足한 生活로 化할가」함이 우리 一般의 晝宵焦慮하는 바이엇다. 구름이 자조 보이면 비가 나리는 세음으로 이 크다라한 經濟的 憂慮의 소리는 不知中에 合하고 또 合하야 듸디어 우리 一般을 擧하야 産業的 運動을 開始하게 되엇도다. 그 著例는 지난 7月 30日로써 發起總會를 열은 全鮮産業大會의 組織 그것이며 天道敎靑年會에서 特히 實業部를 둔 것이며 朝鮮勞働共濟會에서 消費組合을 到處에 施設하는 中에 잇는 그것이며 其他 團體 團體, 個人 個人間에서 互相産業發展의 策을 講究하는 것이 다 그것이라.
가만히 近年來 우리 사람들의 自覺의 經路를 보면 「우리도 남과 가티 살어야 하겟다.」하야 물불을 헤아리지 안코 從來 惰力의 桎梏中에서 뛰어나온 것이 그 始作이오. 『그러면 어떠케 하여야 남과 가티 살겟느냐. 오라! 爲先 남과 가티 알아야 하겟다.』하야 敎育의 必要를 부르지즌 것이 其二요. 『敎育도 하여야 하겟지마는 爲先 目前의 經濟的 壓迫으로부터 脫出할 道를 講究치 아니하면 이것이고, 저것이고 손을 대여 볼 수가 업겟다.』하야 産業的 運動을 일으킨 것이 其三이라. 우리의 나아가는 길도 이리하야 漸次 佳境에 드는 셈이오 우리의 하는 일도 이리하야 더욱 深酷한 맛을 띄게 되도다. 이제부터의 우리야말로 生存競爭場裡의 新勇士가 되는 셈이며 이 싸움의 勝負이야말로 우리의 民族的 死活을 判斷함이 될지로다.
經濟力面의 歷史的 閒却
말하자면 우리 朝鮮사람은 여태까지 經濟問題를 모르고 산 셈이엇다. 經濟問題는
(一) 一般的 奢侈의 容認
(二) 人口의 異常한 膨脹
(三) 强隣의 經濟的 侵掠
이 업시는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런데 從來의 우리 朝鮮에서는 어떠 하얏는가. 멀리는 말하지 말고 李氏朝鮮에 들어온 以後를 볼지라도 (一)克己的 儉德을 무엇보다도 尊重한 儒敎의 文化 미테서는 一般의 奢侈를 絶對로 否認한 同時에 一般社會에서는 器具나 食糧品가튼 實用物을 需要하는 以外에는 다시 무엇을 求할 것이 업섯스며 딸아서 器具나 食料品을 製造하는 者 側에서도 一般의 實用에 適하게 함으로써 標準을 삼앗슬 뿐이오 그 以上으로 如何히 하면 一層 需要者의 奢侈心을 (18) 滿足케 할가 하야 現在 以上의 技巧를 加하며 더 새로운 發明을 行함과 가튼 생각은 할 까닭이 업섯다. 그 當時에 잇서 或 누구가 異常한 奢侈品을 가젓거나 또는 製造한 者가 잇섯다 하면 그는 곳 社會의 罪人이오 國法의 罪人이엇다. 이것은 곳 直接으로 商工業의 藝術의 發達을 沮止함이 되엇스며 間接으로 一般의 經濟的 慾望을 減殺케 하야 스스로 經濟的 方面의 일을 閑却케 함이 되엇다.
(二)人口問題로 말하면 勿論 때로 增減의 다름은 잇섯슬 것이나 醫療機關의 不備와 其他 社會制度의 缺陷은 近日 日本이나 獨逸과 가티 異常하게 人口가 膨脹한 事는 업섯슬지며 또 잇섯다 할지라도 그 當時는 朝鮮內에도 荒蕪地가 多有하야 그곳으로 移殖할 수가 잇섯는 바 人口의 膨脹으로 經濟問題가 생길 理가 업섯다.
(三)强隣으로 말하면 中國이라 하는 나라가 업섯슴은 아니나 그 나라에도 亦是 우리 貌樣으로 經濟問題가 업섯는 바 經濟的 掠奪을 行할 理가 업섯스며 그곳으로부터 多少의 貢物을 要한 일은 잇섯스나 이것은 經濟的 侵略을 意味한 것이 아니라 寧히 服屬의 意思를 表示케 하는 手段에 不過하얏던 것인 바 經濟問題에는 何等의 影帶이 업섯다. 다못 從來에 잇서 經濟問題가 일어나는 때는 어느 때이엇는가 하면 年事가 凶하야써 穀物이 不足하게 되는 그 한 때이다. 그러나 年事의 凶은 全道가 同一하게 되는 例는 極稀한 故로 南道가 凶하면 그 穀을 北道로부터 移하며 北道가 凶하면 그 穀을 南道로부터 移하거나 또는 그 前年의 秋取 때에 各戶로부터 相當한 穀物을 거두어써 그 翌年의 窮春 或은 窮夏에 補不足하는 賑貸制度를 設하야써 當面의 問題를 解決하얏섯다. 勿論 이러한 制度가 잇섯다 할지라도 그 運用의 失宜로 因하야 凶年에는 餓莩가 道에 橫한 일이 업지 아니하얏스며 또 平年일지라도 班常의 關係와 貧富의 懸隔으로 因하야 生活上 塗炭에 빠진 사람이 업지 아니하얏스나 그 때의 그 細民들은 그것으로써 到底히 免할 수 업는 運命의 所定으로 認할 뿐이오. 어떠케 하면 그 困境을 벗을 수 잇슬가 하야 自己가 무슨 새로운 企業을 策하거나 그러치 안흐면 經濟的 制度의 改善을 圖함과 가튼 일은 夢想도 못하얏던 것이다. 이러케 저러케 되어 從來의 우리는 經濟問題를 몰랏스며 그들의 一般精神은 오즉 立身揚名의 一事에 集中하게 되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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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ma_013_0150_0030
1921.2.
[ ..... 우리가 經濟的으로 努力하자 함은 人의 生을 剝하야써 我의 生을 肥코저 하는 感情에서 出함이 아니요. 我의 有를 發揮하야 人我가 共存共榮하자는 理性에서 ....... ]
經濟方面으로 爲先할 일은
개벽 제8호
1921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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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 自由競爭의 市場에 立하야 어떠한 不足으로 因하야 朝鮮人의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 不及하는가를 恒常 注視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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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 一般의 經濟的 生産 或은 經濟的 宣傳을 賢行함에 至하야는 한갓 外人 或은 外貨를 嫉妬排除하는 態에 出치 말기를 期할지니 是는 우리가 經濟的으로 努力하자 함은 人의 生을 剝하야써 我의 生을 肥코저 하는 感情에서 出함이 아니요. 我의 有를 發揮하야 人我가 共存共榮하자는 理性에서 發하는 것일세며 且 市場의 自由競爭은 억지로 左右할 수 업는 故이라. 다못 問題는 우리가 根本的으로 自覺하야 또 참뜻 참마음으로써 自由市場에 立하야 큰 것에와가티 또 적은 대에서 말보다도 行에서 眞珠가티 토실토실한 結晶을 지을 것 뿐이다. 그리하면 今日 一般의 豫想하는 것보다도 좀 가까운 時日안에 比較的 쉽도다 하는 喜悅裡에 우리의 經濟界도 庶幾할 것이다.<13>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ma_013_0080_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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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 ..... 대도시에서의 상업은 대략 연 20%의 이익을 ....... ]
[ ...... 빈부의 도란 빼앗거나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부유해지고, 모자라는 사람은 가난한 것이다 ....... ]
[ .....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인의를 말하는 것만을 즐기는 것 또한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 ]
[화식열전1] 사마천, 애덤 스미스의 뺨을 치다
[ 한겨레21 2004-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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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여년 전 사마천은 이렇게 기록했다.
“물건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값이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식량 △자재 △제품 △산과 택지의 4가지는 백성들이 입고 먹는 것의 근원이다. 이 근원이 크면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그 근원이 작으면 백성들은 가난해진다.”
“빈부의 도란 빼앗거나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부유해지고, 모자라는 사람은 가난한 것이다.” 교묘한 재주가 있으면 부유해지고…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여들고, 모두 이익을 위해 분명히 떠난다.”
“관직의 지위에 따라 받는 봉록도 없고, 작위에 봉해짐에 따라 받는 식읍의 수입도 없으면서 이런 것을 가진 사람들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소봉(素封·무관의 제왕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음)이라고 한다.”
“만일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고 처자식은 연약하고 명절이 되어도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지 못하며 옷을 입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면서도 이런 것들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비할 바 없을 만큼 못난 사람이다.
…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인의를 말하는 것만을 즐기는 것 또한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대체로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길에는 농업이 공업만 못하고, 공업이 상업만 못하다. 비단에 수를 놓는 것이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것만 못하다. 말단의 생업인 상업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를 얻는 길인 것이다.”
“부유해지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은 정해진 주인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와 맞먹고, 거만금을 가진 부자는 왕과 즐거움을 같이한다.”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떻게 2100여년 전 사람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 오늘날과 똑같단 말인가.
어떤가 ‘물건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라는 말은 그 시대 사마천이 이미 애덤 스미스의 수요·공급의 법칙과 비슷한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아니,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요즘 주식투자의 철칙을 말하는 듯하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의 근원이 크면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작으면 가난해진다’는 말은 그대로 성장과 분배에 관한 파이 이론을 연상시킨다. 저 유명한 ‘파이를 키워야 분배의 몫도 커진다’는 것이 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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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식열전이 보여주는 관점은 매우 탁월하다.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은 경제다.
2. 경제는 자유방임주의를 큰 뼈대로 하면서 적절한 국가의 개입을 보완책으로 결합시킨다.
3. 인간의 본성은 부귀를 지향한다.
4. 상업이야말로 인간의 의식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5. 지경학(地經學)도 지정학(地政學)만큼이나 중요하다.
6. 부는 권력, 명예 등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7. 재테크에서는 시테크도 매우 중요하다.
8. 아껴쓰고 부지런한 것은 기본이고, 나아가 반드시 기이한 방법을 사용해 부자가 됐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사마천은 노자류의 고립주의나 한나라의 중농억상(重農抑商)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다. ‘백성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음식이나 옷 습속에 만족하며 서로 왕래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해한다’는 노자류의 가치관은 그야말로 ‘근대의 풍속을 돌이키고 백성들의 귀와 눈을 막으려 하는 것’으로서 실행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또 건국 이래 지속적으로 상업억제책을 써온 한나라 조정과 달리 거시적 관점에서 상업 및 상인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지를 표출한다. 한나라에서는 상인의 대두를 견제하기 위해 △인두세 부담 2배로 늘림 △민간에서의 화폐주조 금지 △소금과 철의 전매화 △균수법 실시로 국가 조달 행위를 상인으로부터 지방관리로 이관 △상공업자에 대한 재산세를 일반인의 2.5~5배로 증세 등의 조치를 취했다.
“노자류의 가치관은 백성 눈귀 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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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일단 전국시대 또는 한나라 초기의 경제 규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국책에 실려 있는 저 유명한 연횡책의 유세가 소진의 말을 경청해보자.
“제나라 수도 임치의 성 안에 7만호의 가옥이 있고, 각 가옥마다 3명의 장정이 있다고 치면 이 도시만으로도 21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부유해서 생활에 여유가 있으므로 음악을 듣는다든지, 투계나 개의 경주를 할 수 있는 회장이 갖춰져 있다. 또 쌍륙(雙六·윷놀이 비슷한 도박)이나 축국(蹴鞠·축구 비슷한 놀이)을 하는 곳도 있다. 한길에서는 수많은 마차가 어지러이 붐비어 수레바퀴가 마주 부딪치고, …사람도 집도 모두 풍요해서 의기가 왕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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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에 따르면 당시 교통이 발달한 대도시에서의 상업은 대략 연 20%의 이익을 적당한 마진으로 보았다.
“한 해에 술 1천독, 식초나 간장 1천병, 소나 양, 돼지의 가죽 1천장, 쌀 1천가마, 땔감 1천수레, 목재 1천장, 구리 그릇 1천개. 말 200마리, 소 500마리, 단사(수은) 1천근, 무늬 있는 비단 1천필, 누룩 1천홉, 말린 생선 1천섬, 절인 생선 1천균, 밤 3천섬, 여우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갓옷 1천장 등(모두 100만전이 본전)을 팔면 20만전의 이익을 얻는다.
아니면 현금 1천관(100만전)을 중개인에게 빌려주고 2할의 이식을 받아도 좋다. …다른 잡일에 종사하면서 2할의 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재물을 활용한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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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6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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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해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조용필이 노래로, 안철수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프로그램으로, 빌 게이츠가 컴퓨터 운영체제(OS)로 그렇게 했다. 시장경제에서 재능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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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줘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조차 이자율이 연 20%에 달한다. 그라민은행은 단독으로는 돈을 빌려주지 않고, 다섯 명에게 함께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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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경제하에서 들볶이며 굶주리던 필자 탈북하여 개방된 중국의 자유시장을 보고는 그 풍요로움에 놀라는 한편 그 자발적인 운영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그 직위에 상관없이 상품의 선택권 가격의 협상권 매매의 결정권 등을 평등하게 갖는 것이 그야말로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권력이 아니라 소비자 즉 대중이 시장을 좌우하고 또 시장은 나아가 생산을 좌우하는 것이 시장경제라면 그것이 대중적인 경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적인 경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상품 앞에서 구매자들이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거기서는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차별시 되는데 누구는 사도 누구는 구경만 할 수 있을 뿐 돈이 있고 사고 싶어도 못 산다. 이러한 구매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국가가 사라고 지령하는 물건만을 살수 있는 공급제도 하에서 주민들을 주는 대로 먹는 우리 속의 짐승처럼 주는 대로 사서 쓰는 우리 속의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소비자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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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북한
[ ...... 열차원들도 신용을 지켜 날라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 형태가 정착 .......
이제는 북한에서도 정보 교환의 중요성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
평양에서 집에 전화기를 놓고 컬러TV를 보면서 사는 사람의 비율이 10년 전에는 열 집에 한 집도 안됐다면 이제는 70~80% 선까지 올라갔다. .......
‘이관비’를 받고 전문적으로 돈을 송금하는 집이 생겨나기 시작.......
장사도 전문화
장사가 생존방식으로 굳어지면서 분업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
집집마다 파는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고, ‘저 집은 순대 잘하는 집’ ......
장마당에서 신용거래도 늘고 있다 ....... ]
2009.11.01 통권 602호(p314~329)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④ ]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집중분석] 장마당의 힘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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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장사의 종말
1990년대 북한이 급작스러운 경제난에 처하자 처음 번창한 것이 ‘보따리 장사’ 또는 ‘배낭 장사’라고 불리는 소규모 장사꾼이었다. 이들은 배낭에 식량이나 공업품을 담아 메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세 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이 때문에 당시 기차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찬 기차 안에 한 사람이 몇 개씩 메고 다니는 배낭까지 실리면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때 북한에서 몰래 찍혀 외부에 공개된 사진에서도 여성이 산처럼 큰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습이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장사의 체계가 잡혀가고 기차도 잘 다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장사꾼이 서로 각 지방의 시세를 교환하면서 장사물품을 수하물로 보낸다. 그러자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 보장돼야 한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장마당이 점차 자리 잡히면서 이런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기차로 수하물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 수하물이 제대로 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도중에 증발돼도 누가 꿀꺽했는지 알 방법도 없었다. 그 때문에 배낭 몇 개를 나르기 위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기차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차가 잘 다니면서 열차원들도 신용을 지켜 날라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 형태가 정착되고 있다. 철도 경비도 심해져서 과거처럼 도둑이 함부로 열차에 침범해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현상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수송망이 안정되고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자연히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 수가 줄어들고, 기차가 혼잡하지 않으니 질서는 더욱 잘 지켜지고 있다. 장거리 버스나 돈을 받고 사람이나 물건을 날라주는 장거리 ‘서비스 차’가 보편화하면서 철도에 집중되던 화물도 분산되고 있다.
직접 메고 다니지 않고 수하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장사가 이뤄지다보니 자연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수백,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거래하는 큰손이 늘고 있다. 과거처럼 배낭 몇 개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경쟁에서 밀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도시 생활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높아질 여지가 크지 않지만 도시는 장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장사가 자리 잡히면서 함께 생활수준도 올라간다.
1990년대 중반에는 도시민이 배낭을 메고 농촌으로 다니면서 물건과 식량을 바꾸어왔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죽 먹는 집이 많지 않다. 강냉이밥에 국수를 먹는 집이 못사는 축에 들 정도다. 오히려 요즘 아사자(餓死者)는 농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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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북한에서도 정보 교환의 중요성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장사하는 집은 전화로 각 지방의 시세를 얻어듣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전화가 없으면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전화기 설치 바람이 불면서 전화기 설치비용이 점점 싸지고 있다. 초기에는 체신소에서 전화기를 설치하는 집까지 전화선을 끌어가는 비용이 컸기 때문에 1대 설치비용이 500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화기를 놓은 집이 많은 까닭에 새로 설치하려면 이웃집에서 선만 따면 된다.
전화설치 비용은 이제 200달러 미만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것이다. 북한에선 전화도 장마당에서 거래된다. 전화기와 전화번호가 함께 팔린다. 지난해 12월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된 휴대전화 가입비도 처음에는 500달러까지 했지만 곧 300달러로 떨어지고 이제는 15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화기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제는 평양시내에 전화기가 없는 집은 드물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사는 집에만 전화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변화다.
전화기의 보급과 함께 생활수준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전화기가 있는 집은 5장6기 정도는 다 갖추고 있다. 최근 평양시내의 전력 사정이 상당히 좋아졌다. 요즘 평양을 10년 전의 평양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평양에서 집에 전화기를 놓고 컬러TV를 보면서 사는 사람의 비율이 10년 전에는 열 집에 한 집도 안됐다면 이제는 70~80% 선까지 올라갔다.
은행도 개인이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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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사를 하려면 송금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은행이 해주지 않는 이 부분을 이제는 개인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실례로 평양과 신의주에 각각 A, B라는 장사꾼이 있다. 신의주에 사는 B는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을 평양의 A에게 보낸다. 앞서 말했듯이 요즘에는 운송의 정확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B는 자신이 직접 평양에 가지 않고 열차를 통해 물건들을 수하물로 보낸다. 이것을 북한에선 ‘올리 쏜다’고 표현한다.
A는 이 물건들을 장마당에 ‘먹인(넘긴)’ 뒤 판매대금을 다시 B에게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돈을 수하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돈 전달을 남에게 부탁하기도 쉽지 않다. 자신이 매번 돈을 갖고 신의주로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서 등장한 것이 ‘이관집’이다. 이관집은 물건을 전문으로 ‘올리 쏘는 집’이나 ‘내리 쏘는 집’을 말한다.
A는 평양에서 신의주로 물건을 계속 ‘내리 쏘는’ 집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은 신의주에서 거래 대금을 받아야 할 집이기도 하다. B가 신의주의 이관집에서 돈을 받는 것만큼 A는 평양에 있는 이 이관집의 대방에게 돈을 넘겨주면 된다. 돈 거래가 정확히 됐는지는 전화로 바로 확인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A가 직접 이관집이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국가 간 불법 돈 거래 방식인 ‘환치기’나, 이슬람식 거래 방식인 ‘하왈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관집’에는 일반적으로 수수료가 없다는 것이다.
ㄱ이라는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 ㄴ이라는 지역으로 갔다가 급히 큰돈이 필요한 경우에도 ㄱ지역과 거래하는 이관집을 찾으면 된다. 이관집은 장마당에서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자기 집에 이관집의 대방을 찾아가 얼마를 넘겨주라는 전화를 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즉시 전화로 서로 확인한 뒤 넘겨준 액수만큼 ㄴ지역의 이관집에서 받으면 된다.
카드 한 장이면 어디 가서나 돈을 뽑아 쓸 수 있는 남한에서 볼 때는 이런 상당히 복잡한 거래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이 제구실을 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돈 거래 방식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런 방식이 퍼져 있기에 망정이지 이전까지는 북한 주민이 허리에 거액이 든 돈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했다.
북한에 등장한 이관집이라는 원초적인 돈거래 방식은 최근 들어 점차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거래수수료라고 할 수 있는 ‘이관비’를 받고 전문적으로 돈을 송금하는 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영업형태는 주요 도시들에 믿음직한 거래 대방만 있으면 가능하다. 현재 시세로 이관비는 북한돈 100만원당 5000원 정도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관집 거래에서 외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돈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한 배낭을 담아도 달러로 한 묶음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중국 위안화나 달러로 결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지방별로 보통 북한돈 대 외화의 환율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환차익은 서로 보상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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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 전문화
장사가 생존방식으로 굳어지면서 분업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지금 장마당에서 매대(매점)를 갖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력이 10년이 넘은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한 품목만 취급하면 자연스럽게 경쟁력도 생기고 노하우도 많아질 뿐만 아니라 믿음직한 거래처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다. 또 분업화에 따른 전문성과 신용도도 크게 늘어나며 효율도 높아진다.
분업화가 가져온 변화를 엿보기 위해 돼지고기 장사꾼을 사례로 들어보자. 대략 5년 전까지만 해도 장마당에서 파는 돼지고기는 장사꾼이 직접 농촌을 돌면서 확보했다. 농촌에 가서 무작위로 돌아봤자 한 번에 걷어오는 돼지는 1~2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군에서 한꺼번에 수십 마리씩 들여온다. 이렇게 대규모로 들어온 돼지를 ‘행방돼지’라고 부른다. 그 군에는 돼지만 전문적으로 잡아 장마당에 보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 사람은 자기 고장의 누구 집에 몇 ㎏ 나가는 돼지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가격을 제시해야 합당한지, 심지어 뭘 먹여서 키웠는지까지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장마당 장사꾼은 이제 예전처럼 자신이 직접 농촌을 돌면서 돼지를 잡을 필요가 없어졌고 단지 팔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사실 하나. 북한에서는 닭이 매우 비싸다. 현재 장마당에서 닭 1마리 가격은 1만원 정도로 돼지고기 1.7~2㎏과 맞먹으며 닭 5마리는 개 1마리와 맞먹는다. 큰 개 1마리는 5만원 선으로 쌀 25㎏과 맞먹는다. 닭이 비싼 것은 사람이 먹는 곡물을 먹여야 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도둑맞기 쉬워 기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분업화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의 실례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장마당마다 술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풍을 쳐놓고 풍로를 돌리면서 음식을 데워 파는데 음식 종류는 거기서 거기였다. 어느 집에서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술과 함께 두부, 두부밥, 순대, 생선찌개 같은 것을 안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장마당 입구 개인집 창고들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쓴다. 그리고 집집마다 파는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고, ‘저 집은 순대 잘하는 집’ ‘저 집은 인조고기 잘하는 집’(콩으로 만들어 돼지고기 맛이 나는 음식) 등의 평판을 듣고 있다.
장마당에서 음식을 팔아 돈을 좀 번 사람들의 일부는 아예 시내로 나와 고급 식당을 차리기도 한다.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고객을 겨냥한 전략도 고급화와 대중화로 차별되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신용거래도 늘고 있다. 과거엔 신용에 신경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 신용이 곧 돈이라는 점, 단골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단골이 찾아오면 절대 저울도 속이지 않고 가격도 싸게 받는다.
재미있는 사례로 자전거 장사꾼을 들 수 있다. 북한엔 장물 자전거가 많다. 예전에는 도둑에게서 넘겨받은 자전거도 아무렇지 않게 팔았지만 이제는 장물 자전거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팔아먹다가는 장마당에서 신용을 잃어 장사하기 힘들다. 대신 장물은 가격이 싸다.
이런 경우,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하지만 만약 자전거 원주인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낸 경우 장물인 것을 알고 산 사람은 군소리 없이 손실을 안아야 한다. 왜냐면 훔친 물건임을 알고 샀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자전거 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80% 이상은 일본산 중고 자전거다. 그런데 최근 일본산 중고 자전거 가격이 급속히 상승했다. 일본의 대북제재 때문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중고 자전거 가격은 50~60달러였는데 지금은 3배가 넘는 180달러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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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운수업도 등장
날이 갈수록 장마당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실례로 과거엔 장사꾼이 매일 저녁 매대 물품을 집으로 날라 갔다가 아침에 다시 날라 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 짐 보관소에 맡기면 그만이다. 과거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 것이다.
요즘엔 북한에 과거엔 없던 서비스 형태도 등장했다. 실례로 오토바이를 사서 장마당 입구나 역전 입구에서 사람을 태워주는 돈벌이 방식도 요즘 유행이다. 이는 중국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운수업’의 초기 형태쯤으로 볼 수 있다.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 오토바이로 태워주는데 10리당 보통 북한돈 3000~ 3500원을 받는다. 이런 서비스는 단속대상이지만 단속 보안원을 다 끼고 있는데다, 혹 누가 시비를 걸어도 아는 사람을 태우고 가는 중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런 오토바이는 서비스 시간과 휘발유를 절약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오토바이가 많이 없는 지역에서는 대신 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워주는 서비스가 발달했다. 남포에서는 20~25분 자전거를 태워주는 데 1000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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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1105200911050500016200911050500016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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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자유주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자생적 질서론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자유와 자유시장 경제는 화폐나 언어와 똑같이 인간 행동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간 계획의 집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본능에 의한 것도 아니고, 계획한 것도 아닌 문화적 진화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규범, 예컨대 사유재산권에 대한 모럴, 약속과 계약은 어겨서는 안 된다는 모럴, 그리고 책임 원칙 등 자유시장의 기초가 되는 수많은 행동규칙들도 역시 인간이 계획하여 만든 모럴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자본주의 문화는 계획된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니다
자유주의 문화와 시장문화는 정부의 창조물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의 선물이라고 할 경우, 그것은 정부는 이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종류의 화폐도 역시 진화된 제도이기 때문에 통화를 정의할 수도 없고, 이를 목적의식적으로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모든 관행이 전부 그렇다.
자유주의 문화와 시장문화가 문화적 진화의 도태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 남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상황변동에 대한 적응과정, 지식습득 과정과 학습과정을 촉진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유와 자유시장경제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지식의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해 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식이 축적되고, 이에 따라 번영이 이루어진다.
문화적 진화사상은 바로 동유럽의 사회주의 제도의 도태과정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이 제도를 구성하는 도덕적 규범은 사회질서의 형성에 적합한 도덕 규범이 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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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다시보는 하이에크
민경국
시대정신 2000.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