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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386', 아름다운 퇴장 준비해야

[김진홍의 정치in] <17> "盧는 마음이 386이래서 문제"

소위 '386세대'는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으로,이 말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그들이 정치권에 대거 진입한 것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다. 청와대에는 386들이 참모로 자리잡았다. 또 상당수 학생운동권 출신 386들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 안착했다. 집권세력이 이들의 둥지였다. 새로운 파워 엘리트,세간의 이목은 그들에게 쏠렸다. 신선하다는 평가도 나왔고,기대감도 컸다. 그리고 실제 이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을 살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향상시키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지난 4년 가까이 그들이 보여준 행태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았다. 민주화운동 당시의 저항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집권세력으로서의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과거 정권의 잘못을 캐는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국민들이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념갈등은 더욱 증폭됐고,미래의 희망은 제시하지 못했다. '배고픈 문제 보다 배아픈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문인지 정치권에서조차 여권내 386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세력 전체에 오점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데에는 여권내 386의 책임이 크다.

이런 혹평은 386이 자초했다. 사회 지도층이 됐으면서도 1980년대 길거리에서 민주화 투쟁하던 야성(野性)이 몸에 배인 탓인지,전문성을 키우는 등 내적 역량을 다지지 않은채 투사의 모습을 보여 국정운영에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최근 386이 연루된 '일심회' 간첩단 사건도 그렇다. 국가정보원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간첩단사건이 터지자 여권내 386인사들이 국정원을 압박,간첩단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주장이 버젓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교체된 것도 이 같은 갈등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때맞춰 주체사상을 학습하고,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386이 현 정권 실세로 있다는 증언이 보도됐다. 주체사상 학습 등은 이미 과거의 일인 만큼 큰 문제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으나 집권세력의 일환으로서 간첩단사건 수사를 방해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간첩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은 북한에 우리나라를 맡기자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기때문이다. 저항의식과 함께 민주화운동 당시의 주요 가치였던 '자주'와 '민족'이 아직도 이들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고,이것이 국정운영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성인용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 파문 직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파동때 벌어진 청와대 인사 외압설도 386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인사청탁을 관철시키기 위해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막말까지 오갔다고 한다. 철부지라고 하기엔 너무 도가 지나친 월권이라는 생각이다.

현 정부의 잇단 '부동산 가격과의 전쟁' 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등 국가주요 정책들도 표류하고 있다.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386은 현 정부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착수한 분위기다.

눈에 띄는 대목은 여당내의 소위 친노(親盧)그룹이 열린우리당의 차기 당권 장악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점이다. 당권을 잡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여당내 차기 대선 후보 경선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현재 한창 진행중인 정계개편 논의 와중에서도 당권을 꼭 쥐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일이 없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열린우리당내에서는 김한길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강조했듯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리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데 반해 노무현 대통령과 386 측근들은 열린우리당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사들이 열린우리당내에 많아도,열린우리당을 지켜가겠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인식인 것같다. 여당이 두 개로 쪼개질 경우 대선판도는 한나라당에게 더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차기 정권 재창출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여당내에서도 제기된다.

노 대통령은 노사모 핵심 회원들과의 모임에서 퇴임 이후에도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아예 공식적으로 밝혔다. 386과 노사모가 박해받고 있다는 아리송한 말도 했다. '노 대통령은 몸은 60세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386이어서 문제'라는 여권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들이 정치에 집착하는 이유는 집권기간 동안 만든 사회각계의 '코드'를 유지하려는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향후 정치행태는 선동과 흑색논리를 통한 포퓰리즘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이들의 움직임은 새로운 게 아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씨는 일찌감치 "청와대 386은 열의와 순수성은 있지만 업무능력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지고,국회 아니면 갈 데 없는 친구들"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안된다. 자신들이 지난 4년동안 보여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인해 서민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들이 처절한 반성없이 지금까지의 모습 그대로 다음 정부에서도 정치를 계속할 경우 박수보낼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박수칠때 떠나라'고 했는데,아직 박수를 받지 못해 박수받을때까지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일까? 답답하다.

386이 주연을 맡았던 연극은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연극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을 주는 연극이었다. 386은 '다음 연극에도 주인공을 해야지'라는 욕심을 버리고 어떻게 퇴장해야 그나마 아름답게 비춰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다음 연극의 주인공은 노무현 정부의 386이 결코 아니다.
김진홍 국민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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