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84세로 영면하다
박정희 시절이후 온갖 영욕 경험
박 명예회장은 오후 5시20분 급성 폐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운명했다.
고인은 앞서 지난달 9일 호흡 곤란으로 한쪽 폐와 흉막을 모두 절제하는 '흉막-전폐절제술'을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급성 폐손상을 겪으며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고인은 무공훈장 수훈 등으로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유족 측의 신청을 거쳐 예상대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별세 소식에 "우리나라 산업화에 공이 큰 분이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고인은 1927년 경남 양산 출신으로 5.16 군사쿠데타때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이래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1968년 일본의 청구권 배상금을 토대로 포항제철을 건설하면서 포철 사장으로 지명돼 이른바 포철 신화를 이룩했다.
그는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는 1980년대 이후에는 민정당(11대.81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해 영욕을 맛봐야 했다. 그는 13, 14, 15대 국회를 거쳐 1990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으로 3당 합당에 의한 민자당 창당을 맞았고, YS에 맞서다가 92년 10월 민자당을 탈당하고 이듬해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면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까지 되고는 4년간의 일본 망명생활을 지내고 1997년 국회의원으로 컴백한다.
그는 자민련 총재로 영입된 뒤 DJ-JP 연합을 통해 탄생한 김대중정부 시절(2000년) 공동정부의 자민련 몫으로 총리까지 지냈으나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4개월만에 물러나야 했고, 그후 잊혀진 세월을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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