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방송인 KBS2 TV에서 20여분간 정규방송이 중단되는 사상 최악의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KBS, 사상최악의 방송사고
이번 방송사고는 14일 오후 11시8분 ‘위기탈출 넘버 원’이 방송되던 KBS2 TV의 화면이 갑자기 녹색으로 변하면서 시작됐다. 11시11분쯤부터 ‘방송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는 자막이 나온 후 광고방송이 송출됐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가 20분 가까이 계속됐고, 11시20분쯤에는 ‘드라마시티’의 초반부가 나오면서 방송이 정상화되는 듯했으나 잠시 후 다시 화면이 녹색으로 바뀌는 등 먹통 상태가 반복됐다. 이후 드라마 대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현상까지 생겼으며 11시28분쯤에서야 완전 정상화됐다.
이에 대해 KBS는 주조정실 송출장비인 디먹스(Demux)의 고장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송출팀 관계자는 “남산 송신소로 비디오 신호와 오디오 신호를 분리해 보내주는 장치인 디먹스가 갑자기 고장났다”면서 “이를 확인하고 장비를 교체하는 과정이 지체되면서 방송 중단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14일 KBS 2TV의 정규방송 도중 전국방송이 20여 분 간 중단되는 대형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방송이 중단 된 뒤 시청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대체영상을 내보내고 있는 KBS2TV 장면. ⓒ연합뉴스
시청자 더 분노케 한 늑장 대처
시청자들을 더 분노케 한 것은 KBS의 늑장 해명이었다.
KBS 2TV는 방송이 재개된 지 1시간이 지나 '드라마시티'가 끝난 뒤에야 아나운서가 방송사고 사과 멘트를 했다. 홈페이지 등에 대국민 사과문이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2시간 반이 더 지난 뒤인 15일 오전 3시였다. KBS는 경영진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국가기간방송으로서 20여분 동안이나 정상적인 방송을 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예기치 못한 공영방송의 장기 방송 중단으로 다수 시청자들이 불안감과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더없는 늑장 대응이었다.
이날 사고로 KBS 홈페이지 등에는 시청자들의 항의성 글이 빗발쳤고, KBS는 15일 사고의 책임을 물어 주조정실 기술감독 등을 대기 발령하고 사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원인 파악에 나섰다.
K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는 방송중단 사태 및 늑장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폭주해 15일 오후 3시간가량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KBS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시청자 네티즌 김채영씨는 ‘허술하고 황당한 KBS’란 글에서 “이렇게 허술한 관리체제로 인해 참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KBS 무얼 믿고 이리 나가시는 거냐?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냐”라고 분노했다.
또 서민경씨는 ‘KBS 방송사고 이대로 좋은가’에서 “왜 매달 수신료는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그에 따른 서비스는 영...게다가 다시보기에 넘 과다하게 광고를 넣어서 볼 때마다 짜증 지대로...1TV는 안 넣다가 요즘은 꼭꼭 2개씩이나 광고를 해서 정말 짱난다. 그럴거면, 왜 수신료는 받나? 지발, 이 기회에 국민을 위한 방송, 말로만 떠들지 말고, 서비스 개선 좀 하라”고 비판했다.
"KBS, 기본적 매뉴얼조차 안 지켜"
방송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와 관련, “대부분 방송국이 기술적 결함으로 방송사고가 나더라도 3분을 넘지 않도록 송출시스템이 이중으로 구축돼 있다”면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3분도 긴 시간인데 20여분이나 방송이 중단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부인의 돌발행위가 아닌 방송사의 기술적 결함과 실수로 인해 지상파TV 전국방송이 20여 분이나 중단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실제 1999년 6월 영상합성기 고장으로 MBC ‘뉴스데스크’가 3분간 화면이 끊기는 사고가 있었고 2001년 5월 KBS1 ‘아침마당’이 전원공급 시스템 장애로 2분간 방송이 중단되는 등 몇 차례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 2, 3분 안에 복구해 방영을 재개했다.
즉 KBS의 위기대응 시스템이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방송사고가 발생하면 송신소에서 비상용 테이프를 내보내도록 하고 있지만 이날 사고는 한동안 녹색 화면이 뜨면서 음성까지 나오지 않았다. 주조정실 근무자의 대응방식이나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정연주 파문의 부산물
방송계는 이번 사고를 '정연주 파문'의 부산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KBS는 정연주 전 사장의 임기가 끝난 지난 7월 초부터 지금까지 ‘선장’ 없는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9월 말에는 노조가 사장추천위원회 제도화 등을 주장하며 송신탑 점거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총파업 돌입 직전 파업이 유보되는 등 회사 분위기가 더없이 어수선하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 정기공채와 가을 정기개편이 미뤄지는 등 KBS는 업무혼선과 내홍을 겪어왔고, 끝내 사상최악의 방송사고를 낳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방송계 관계자는 “국가 기간방송이 이렇게 장시간 중단된 사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KBS가 후임 사장을 제대로 선출하지 못해 경영진의 공백상태가 길어지면서 방송사의 기강 해이와 관리 부재의 현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