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지 "전술핵 재배치해야", 20년전으로 회귀
美관료 '사견'까지 앞세워 재배치 주장, 한반도 긴장 악화
28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게리 새모어(Gary Samore·사진)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은 26일 (현지시간) 미 터프츠대가 주최한 ‘대북 대응’ 세미나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사견'을 전제로 “한국이 미국에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공식 요구한다면 미국은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모어는 미 행정부의 군축·비확산·대테러 업무를 총괄하는 인사다.
그는 전날 정몽준 의원이 1991년 국내에서 철수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 발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정해진 것이 없지만 한국 정부가 재배치를 공식 요구한다면 미국은 ‘예스’라고 말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의 핵개발로 안보 위협을 느껴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한다면 미국이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위 인사가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현재 미국은 핵잠수함이나 해외 미군기지 등 한반도 인근의 (핵)전력으로 한국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어 전술핵 재배치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정치적 의미가 될 것”이라며 “(재배치가 이뤄질 경우) 전술핵의 양은 적을 것이다. 한반도 철수 직전인 90년대 초 공중 발사용으로 항공기에 적재됐던 분량 정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추진해온 ‘핵 없는 세계’ 정책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미국의 전술핵은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달성되면 즉시 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린 것”이라며 “현재는 한국 내에서 재배치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한국 정부가 그런 (재배치 요구) 결정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중앙일보>는 이같은 인터뷰 기사와 함께 별도 사설을 통해 북한이 ‘핵강국’임을 주장하며 걸핏하면 ‘핵 참화’를 위협하는 발언을 거듭하고 갈수록 군사적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는 상황에서 핵 보유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전술핵 재배치 찬성 입장을 밝혔다.
사설은 "김황식 국무총리나 김관진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마침 미 당국자의 입장 표명이 있는 만큼 주한미군 핵무기 재배치를 정부가 미국에 공식 요청해야 한다"며 '사견'에 불과한 새모어 조정관 발언을 미국 정부 입장으로 기정사실화한 뒤 전술핵 재배치를 거듭 주장했다.
전술핵 재배치 찬성 입장은 보수지 가운데 가장 먼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해온 <조선일보>외에 <세계일보> 등 보수지들도 전폭적 찬성 입장을 밝히는 등 보수지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세계일보>의 경우 지난 25일자 사설을 통해 "북한이 핵을 영구적으로 폐기하지 않는 한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 대응책이 될 수 있다"며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굳건히 지키고 북의 도박을 근원 차단하는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지들은 물론이고 <한국일보> 등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질타하고 나섰다.
<한국일보>는 28일 사설을 통해 중동사태 소식을 담은 우리 군의 대북 유인물 배포와 관련,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지 살포에 우리 군이 가세했으니 민감하게 반응할 만하다. 중동 민주화 사태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중동 소식이 유입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때 지나치게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건 우리도 자제하는 게 좋다"며 질타한 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 공연히 미군 전술핵 재도입이나 핵 보유를 주장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긴 호흡으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전술핵 재배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술핵이 남한에서 철수된 것은 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1991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 냉전시계는 다시 2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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