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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지율 늪'에 빠졌나

[김진홍의 정치in] <13> 권력분점론 등을 보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와 박찬종 전 의원,그리고 이인제 의원. 세 사람의 정치행로는 매우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었다는 점과 함께 상당 기간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은 정치인이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에 출마했던 이회창 전 대표의 경우 당시 대선이 치러지기 전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2년의 경우 초가을까지도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의 대선캠프에서는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중인 데에도 대권을 잡은 양 'A씨는 청와대 비서실장' 'B씨는 법무장관' 'C씨는 경제부총리' 등 조각(組閣) 하마평까지 나돌았다. 15대 대선 이전의 시점까지를 합치면 이 전 대표가 '지지율 1위'를 유지한 날은 아마 8년도 더 됐을 것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박 전 의원은 깨끗한 이미지로 1997년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당히 유력 대선주자 1위를 기록했었다. 1997년 대선에 나섰었던 이인제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언급한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 발언으로 한때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었다.

지지율이 대선 승리로 직결됐었다면 이들 3명 가운데 이미 대통령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노무현-정몽준 연대'와 '이인제 탈당 및 출마' 등의 돌발변수가 있긴 했지만 높은 지지율이 대선에서의 승리를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한나라당의 오만한 모습때문이다. '오만'이란 단어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세력을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말이지만,차기 대선과 관련해서는 한나라당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차기 대선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소속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계속 높게 나오고 있고,정당지지율 역시 한나라당이 크게 앞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오만방자함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벌써부터 권력분점론 등 오만의 징후가 읽히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그룹. ⓒ연합뉴스


사례는 많다.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한나라당내 3인의 대선주자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대통령 후보-총리-당대표로 역할을 분담하자는 식의 얘기가 대표적이다. 또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 가운데 한 사람이 대선후보 경선을 포기하고, 대선 승리에 기여한 뒤 정권을 잡을 경우 총리를 보장받으면 어떻겠느냐는 식의 발상도 마찬가지다. 벌써 정권을 쥔듯한 오만함이 잔뜩 묻어있다. 국민들을 받들기는커녕 국민들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다.

수많은 민생현안을 다룰 정기국회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지지율 1,2위를 다투고 있는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이 차기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나서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한 것도 보기에 썩 좋은 풍경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경선제) 도입 등 '사즉생'의 각오로 뛰고 있는데, '당내 대선주자 3인방의 지지율이 높아 현행 한나라당 제도로 경선을 치러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며 뒷짐지고 있는 것도 자만으로 비친다. 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없다.

'수해 골프' '성추문' '지역차별 망언'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나 원외 인사들의 안하무인격인 언행이 잇따랐던 것도 '이젠 정권을 잡을 수 있겠다'라는 해이해진 의식의 결과다.

불과 2년6개월전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노심초사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지지율의 늪'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수차례의 재보선에서 완승을 거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선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내부 개혁을 통해 내실을 다지고,외연 확대를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는 상황인데,'이대로 큰 변수없이 시간만 가면 대선에서 이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만연하면서 막상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우쭐대고만 있는 형국이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행태들이다. 이회창 전 대표 등의 예에서 보듯 높은 지지율이 대선 승리와 직결되는 게 결코 아니다. 지지율은 매우 가변적이다.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 특히 현재 한나라당 및 한나라당 소속 대선주자들의 지지도가 높은 것은 한나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노무현 정부가 싫어서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한나라당이 일종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상누각과도 같은 게 지금의 한나라당 및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인 것이다.

더욱이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절감한 한나라당이 또다시 지지율의 늪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이렇듯 희희낙낙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론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열린우리당의 분열 가능성 만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내분에 휩싸일 소지도 다분하다. 벌써부터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대선후보 단일화가 실패하고,두 명 모두 대선에 출마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잠복해 있지만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 경선 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는 문제는 한나라당 내분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겨냥해 '불임정당'이라고 비아냥대고,구성원들이 기득권을 꼭 부여잡고 세월만 보낼 일이 아니다. 오만에서 벗어나 수권정당으로서의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알맹이는 없으면서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소리치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교체는 요원하며,한나라당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김진홍 국민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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