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푹 눌러 쓰고서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모자를 눌러쓴 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거울 이미지는 보통 관찰자의 현전을 드러낸다. 측면으로 서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실상 거울이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다. 그는 자신을 응시한다. 급박하게 칠해진 물감과 격렬한 반응을 동반하는 붓질이 너무 뜨거워 보인다. 순간 고정된 자기 자신의 모습인데 얼핏 유령 같고 혼 같고 귀신같다. 그는 자기 속에서 묘한 기운이나 정념의 세계를 힐긋 본 듯하다.
이 그림은 독일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의 자화상이다. 사실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지는 않았다. 판화와 드로잉, 유화로 그려진 몇 점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두가 한결같이 모자를 쓰고 있다는 점과 관자를 노려보는 듯해서 약간은 불편한 감정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눈매가 이른바 ‘포스’가 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작업을 했거나 아니면 작가라는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모자를 소품으로 활용한 듯하다. 그가 대머리여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벗겨진 머리를 대수롭지 않게 그린 세잔 같은 경우도 있다. 간혹 특이한 모자를 쓰고 그린 자화상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놀데는 자신의 사려 깊고 우울한 몽상성을 숨기려는 듯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려 놓았으며 예술가임을 드러내고 싶다는 듯, 콧수염을 단정하게 그려 넣었다. 가운데 검은 띠가 확연하게 강조된 흰색 모자는 옐로우와 주황, 파랑색으로 덧칠된 얼굴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지대에서 태어난 놀데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가구공장과 목공예학교에서 도제수업을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으며 거의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이다. 나이 30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고자 결심한 그는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고, 문화적 환경이나 시민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직관, 자신의 내부에서 길어 올려진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려 한 이다. 동시에 엘리트 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표현주의작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활동을 한 경우도 드물고 거의 자폐적으로 은둔하면서 그만의 그림을 그린 이로 기억된다. 그는 목각사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위암을 앓았고 부인의 사망과 독일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그림이라고 몰수당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으며 가난했고 나중에야 명성을 얻었다. 반유태주의자였고 나치에 동조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은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여타의 20세기 현대미술의 중요 작가들의 삶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그런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1917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0세에 그려진 자화상이다. 당시 그는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 근처 농촌인 우텐바르크에 정착해서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도시를 떠나 고향과 전원에서 혹은 이국을 여행하면서(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도 왔었다)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기질과 성향으로 자신이 거주한 환경 속에서 그림의 세계를 추구한 이다.
드문 그의 자화상 중 가장 인상적인 이 그림은 강하게 반사되고 있는 하얀 셔츠 위로 파란 눈이 무척이나 강조되어 있다. 직립한 이 상반신은 당당한 가슴과 그 위에 붙은 머리를 주목시킨다. 모자를 눌러써서 생긴 그림자와 오른쪽에서 비치는 강한 빛에 의해 두드러진 콘트라스트는 무척이나 격한 감정을 동반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자신의 얼굴을 소박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애초에 없어 보인다. 정확한 묘사를 생략한 채, 마치 불빛이 켜져 있는 듯이 파랗게 빛나기만 하는 두 눈은 얼굴 뒤의 청회색 배경과 다시 공명한다. 배경 부분은 위아래가 대담하게 나누어져 넓은 붓으로 격렬하게 치대어 놓은 듯이 채색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처리는 그 강렬한 표현력에서 인물의 묘사를 훨씬 능가한다. 병고에 지친 사람이나 늙은이처럼 낡은 모자를 아무렇게나 머리에 얹어 놓고는 울음을 참고 있는 지 아니면 억압된 감정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듯이 다소 이상한 경련마저 엿보이게 하는 입언저리를 보여준다. 어쨌든 한 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전적으로 색채와 붓질의 힘에 의해 구축되어 있다. 떨리는 붓놀림, 급작하게 칠해나간 터치, 인물 주변을 선회하는 소용돌이 같은 흔적은 마음이나 정신의 흔적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의도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는 색채를 자기 작품에서 단순히 시각적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로 체험하고 구현하려 했다. 그래서 놀데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색채작가로 기억된다. 놀데에게서 색채는 현실이 등가물이 아니라 정신적 의미부여의 수단이다. 그의 색채가 지닌 매력은 색채의 정신적 가치와 감각적 효과의 공생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색채의 감각적인 효과는 종종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 보는 이를 거의 심란하게 만들 정도로 생생한 물질성을 보여주곤 한다. 이른바 감정표현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는 색채의 시각적 환기력과 물질적 표현력, 이 두 가지에 모두 주목함으로써 색채감각을 더욱 확장시켜 놓은 이로 평가된다. 아울러 그의 그림은 이성적이거나 관습적인 그림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마치 자연이 스스로의 형태를 창조하듯이, 광석이나 수정이 스스로 자기 모양을 결정짓듯이, 색채가 화가인 나를 통해 캔버스 위에 스스로 정연하게 전개되기를 원했다."
"작품이 잘 안 될 때 자신을 성찰해 보면 나는 에너지를 가진, 욕구와 지식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업이 잘 되고 있을 때 자신을 살펴보면 나는 단지 예술가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지식도 없고 겸허하며 조심스럽게 더듬고 있는 한 존재일 뿐, 이런 경우에만 내가 약간은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예술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수태되고 탄생되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초적인 탄생이다."
화폭 위에 진흙같이 두텁게 칠해진 색채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이 자화상은 붙잡을 수 없고 결코 시각화하기 어려운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구현하려는 지난한 시도이자 회화의 숙명과 씨름하고 있는 한 화가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이 그림은 독일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의 자화상이다. 사실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지는 않았다. 판화와 드로잉, 유화로 그려진 몇 점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두가 한결같이 모자를 쓰고 있다는 점과 관자를 노려보는 듯해서 약간은 불편한 감정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눈매가 이른바 ‘포스’가 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작업을 했거나 아니면 작가라는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모자를 소품으로 활용한 듯하다. 그가 대머리여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벗겨진 머리를 대수롭지 않게 그린 세잔 같은 경우도 있다. 간혹 특이한 모자를 쓰고 그린 자화상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놀데는 자신의 사려 깊고 우울한 몽상성을 숨기려는 듯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려 놓았으며 예술가임을 드러내고 싶다는 듯, 콧수염을 단정하게 그려 넣었다. 가운데 검은 띠가 확연하게 강조된 흰색 모자는 옐로우와 주황, 파랑색으로 덧칠된 얼굴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지대에서 태어난 놀데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가구공장과 목공예학교에서 도제수업을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으며 거의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이다. 나이 30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고자 결심한 그는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고, 문화적 환경이나 시민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직관, 자신의 내부에서 길어 올려진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려 한 이다. 동시에 엘리트 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표현주의작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활동을 한 경우도 드물고 거의 자폐적으로 은둔하면서 그만의 그림을 그린 이로 기억된다. 그는 목각사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위암을 앓았고 부인의 사망과 독일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그림이라고 몰수당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으며 가난했고 나중에야 명성을 얻었다. 반유태주의자였고 나치에 동조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은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여타의 20세기 현대미술의 중요 작가들의 삶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그런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1917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0세에 그려진 자화상이다. 당시 그는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 근처 농촌인 우텐바르크에 정착해서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도시를 떠나 고향과 전원에서 혹은 이국을 여행하면서(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도 왔었다)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기질과 성향으로 자신이 거주한 환경 속에서 그림의 세계를 추구한 이다.
드문 그의 자화상 중 가장 인상적인 이 그림은 강하게 반사되고 있는 하얀 셔츠 위로 파란 눈이 무척이나 강조되어 있다. 직립한 이 상반신은 당당한 가슴과 그 위에 붙은 머리를 주목시킨다. 모자를 눌러써서 생긴 그림자와 오른쪽에서 비치는 강한 빛에 의해 두드러진 콘트라스트는 무척이나 격한 감정을 동반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자신의 얼굴을 소박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애초에 없어 보인다. 정확한 묘사를 생략한 채, 마치 불빛이 켜져 있는 듯이 파랗게 빛나기만 하는 두 눈은 얼굴 뒤의 청회색 배경과 다시 공명한다. 배경 부분은 위아래가 대담하게 나누어져 넓은 붓으로 격렬하게 치대어 놓은 듯이 채색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처리는 그 강렬한 표현력에서 인물의 묘사를 훨씬 능가한다. 병고에 지친 사람이나 늙은이처럼 낡은 모자를 아무렇게나 머리에 얹어 놓고는 울음을 참고 있는 지 아니면 억압된 감정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듯이 다소 이상한 경련마저 엿보이게 하는 입언저리를 보여준다. 어쨌든 한 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전적으로 색채와 붓질의 힘에 의해 구축되어 있다. 떨리는 붓놀림, 급작하게 칠해나간 터치, 인물 주변을 선회하는 소용돌이 같은 흔적은 마음이나 정신의 흔적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의도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는 색채를 자기 작품에서 단순히 시각적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로 체험하고 구현하려 했다. 그래서 놀데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색채작가로 기억된다. 놀데에게서 색채는 현실이 등가물이 아니라 정신적 의미부여의 수단이다. 그의 색채가 지닌 매력은 색채의 정신적 가치와 감각적 효과의 공생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색채의 감각적인 효과는 종종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 보는 이를 거의 심란하게 만들 정도로 생생한 물질성을 보여주곤 한다. 이른바 감정표현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는 색채의 시각적 환기력과 물질적 표현력, 이 두 가지에 모두 주목함으로써 색채감각을 더욱 확장시켜 놓은 이로 평가된다. 아울러 그의 그림은 이성적이거나 관습적인 그림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마치 자연이 스스로의 형태를 창조하듯이, 광석이나 수정이 스스로 자기 모양을 결정짓듯이, 색채가 화가인 나를 통해 캔버스 위에 스스로 정연하게 전개되기를 원했다."
"작품이 잘 안 될 때 자신을 성찰해 보면 나는 에너지를 가진, 욕구와 지식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업이 잘 되고 있을 때 자신을 살펴보면 나는 단지 예술가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지식도 없고 겸허하며 조심스럽게 더듬고 있는 한 존재일 뿐, 이런 경우에만 내가 약간은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예술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수태되고 탄생되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초적인 탄생이다."
화폭 위에 진흙같이 두텁게 칠해진 색채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이 자화상은 붙잡을 수 없고 결코 시각화하기 어려운 자기 내부의 모든 것을 구현하려는 지난한 시도이자 회화의 숙명과 씨름하고 있는 한 화가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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