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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을 걸어가는 생뚱맞은 영국형 신사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것은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그로 인한 비극성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한국전쟁은 이 땅에서 치러진 가장 끔찍한 전쟁으로 기억된다. 한국전쟁은 전면적인 성격을 띤 전쟁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대부분의 가족이 구성원의 죽음. 실종. 상해를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전사와 실종, 행방불명으로 가족을 잃거나 남북으로 갈라진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분단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분단이 지속되는 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처를 지우기는 쉽지 않다. 전쟁기에 국가는 물론 이웃조차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절대 고독 속에서 홀로 남은 자신과 흩어진 가족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안식처, 고통스러운 현실의 도피처였다. 전쟁으로 인한 허무의식의 최종종착지가 가족과 나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가의 위기는 개인의 위기를 초래한다.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당시 화가들은 이른바 종군화가단에 가입되어 활동했다. 그것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장욱진(張旭鎭,1918-1990) 역시 종군화가단의 일원으로 중동부전선에 가서 군에서 필요한 그림들을 그렸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 충남 연기군으로 피란을 가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시기에 그려진 자신의 자화상이다.

흔히 장욱진 하면 동산과 나무, 집, 가족이 조그맣게 요약된 형태로 등장하는 소박하고 탈속적인 작은 그림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그는 아주 작은 화면에 마치 시인이 언어를 절제하듯 선이나 색을 극도로 절제해 그림을 그린 이다. 그러나 절제를 거듭한 끝에 오는 풍요로움이 녹아있었다.

그는 평생을 철저하게 사물을 보는 눈, 철저한 작업, 철저한 자유를 꿈꾸며 가장 단순한 삶을 추구한 화가로 기억된다. 마치 그런 그의 인생처럼 그림들은 간결한 선과 요약된 형태로 세상을 관조하듯이 순수한 시정의 세계를 담고 있다. 상형문자와 같은 원초적인 형태만을 입고 그냥 나열식 구도로 펼쳐져 있는 데도 그 그림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짜임새 있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은 어느 현대적 미술사조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유화 물감을 의도적으로 묽게 사용해 수묵화의 담백성과 투명한 정신성에 근접하면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드러내는 편인데 특히 천진하고 순수한 서정을 통해 소년 시절의 추억과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가 하면 동양인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던 선비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저간에는 분명 현실 도피를 통해 자신만의 이상적인 공간, 상상의 세계를 꿈꾸었던 다분히 자폐적인 자아의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 자화상은 너무도 열악했던 피란 시절에 그려진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포연과 피비린내와 가난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지옥 같은 현실과 무관하게 고고하고 이상적인 자신만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그림은 전쟁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시기에 그려졌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창작의욕이 솟구쳤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다. 캔버스를 구할 길이 없던 그는 갱지에다 물감을 석유로 개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그런 참혹한 상황 아래서도 무려 40여점을 그렸다고 한다.

이 시절 대표작이 바로 이 <자화상>이다. 51년 초가을에 그려진 자화상에는 누렇게 익은 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좁은 길 위에 연미복을 입고 우산을 든 영국형 신사모습의 작가가 서 있다. 다소 ‘생뚱맞다’. 아무도 없는 논 한가운데로 난 길 위에 낯선 연미복 차림을 하고 걸어가는 모습은 조금은 이질적이다. 오로지 개 한 마리가 뒤를 따르고 하늘에는 새가 날아갈 뿐이다. 땅에는 벼가 가득하다. 자연은 여전히 풍성하고 싱싱하다. 그는 그렇게 자연에 난 길만을 따르고자 한다. 인간의 길이 아니라 자연의 도리를 뒤따른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신사처럼, 선비처럼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림 하단에는 그 길이 막다르게 위치해있다. 작가는 꽤 먼 길을 걸어왔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곳에 멈춰 서서 약간 위를 올려다본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듯한 막막한 표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외롭고 가파른 이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예정이다. 그 길은 바로 예술의 길이고 그가 깨닫고 이해했던 작가의 길이다.

한국 전쟁 당시의 충격과 상처를 안고 살았던 그였지만 그는 예술로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고향에 피란해 있을 때 겪었던 작가의 심리적 상황이 표출된 이 자화상에는 자신이 맞닥뜨린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빚어내는 괴리감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전쟁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외부로부터 한계량을 넘는 자극이 쇄도하여 자아의 방어막을 파열시킬 때 빚어지는 증상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 외상성 신경증은 전쟁이나 재앙, 사고 등과 같이 극단적인 충격이 정상적 의식에서 분리되어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환각, 악몽, 플래시백 등의 형태로 돌발적으로 재귀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현실과의 원활한 관계를 거부하는 트라우마는 어떠한 공간이나 시간의 질서에도 쉽사리 편입되지 않으며, 오로지 공허 속에 머물고자 한다.

장욱진의 이 자화상은 어쩌면 그토록 끔찍한 전쟁기를 외면하고 고독하고 자폐적인 자기 길로 침잠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상이다. 그것은 자신이 간직한 트라우마에 대한 역설적인 드러냄이다. 최악의 상황을 부정하고 자 한 희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화가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술의 꿈을 고고히 추구한다.
박영택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0 0
    sprite1001

    양질의 글 고맙습니다.
    또한, 호소하는 마음담아 전합니다!!
    요즘 수도권 시내버스에도 광고되고 있는 유투브 컨텐츠에요.
    감상하시고 옳은 판단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https://youtu.be/2QjJS1Cnr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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