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그리고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뷰스칼럼> 친이계의 꿈은 '일본 자민당 장기집권'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국가권익위원장이 이 대통령 3년차가 시작되는 25일 같은 날 '개헌'을 꺼내 들었다. 이 대통령은 '제한적 개헌'이라며 권력구조 개편을 거론했고, 이 위원장은 '연내 개헌'이라며 시한을 못박았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선거법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도 함께 거론했다.
다음날인 26일, 이명박계 71명이 가입한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안경률 대표는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이원집정부제 거쳐서 내각제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 본다"며 한걸음 더 나갔다. 그는 개헌 시한과 관련해서도 "지방선거후 논의를 시작해 12월안에 끝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친이 정두언 의원은 "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친이계에서 나올 얘기는 다 나온 모양새다.
세종시 논란 과정에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를 "제왕적 총재보다 더하다", "굉장히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같은 친이계 논리에 기초하면, 박 전 대표가 만약 차기대통령이 되면 무시무시한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게 불을 보듯 훤한 만큼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헌을 해야겠다는 거다.
친박진영에서 "예상했던대로 '박근혜 죽이기 2차 공세'가 마침내 시작됐다"고 민감히 반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친이 "개헌은 세종시와 달리 야권지원 얻을 수 있다"
개헌은 권력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후반에 선거구제를 바꾸려는 "원포인트 개헌"을 하려다 좌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계는 개헌을 꺼내 들었다. 어떤 복안이 있기에?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대통령의 25일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제한적 개헌"과 함께, "선거법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을 함께 거론했다. 여기서 말한 선거법과 행정구역은 동전 앞뒷면 관계다. 이 대통령은 여러 개의 행정구역을 하나로 합치는 통폐합을 진행중이다. 이에 맞춰 선거구제도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나가자는 거다.
친이계는 야당들도 내심 이 제안에 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대항마'가 없기란 친이계나 야권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중대선구제는 친노계의 오랜 숙원이고, 신생 군소정당들도 바라는 바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종시와 달리 개헌은 야당에서 상당한 지원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친이 판단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행 5년단임제 또는 4년 연임제를 선호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고립시키며 개헌을 할 수 있다는 게 친이 생각이다.
김종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같아"
"지금 판세를 보면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같다."
김종인 전 수석이 사석에서 종종 쓰는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설공주란 박근혜 전 대표, 일곱난쟁이란 여야의 내로라 하는 대권주자들을 가리킨다. 현재의 차기 대선구도에서 '박근혜 독주'에 대한 비유다.
이는 거론된 당사자들 모두가 예외없이 질색할 비유다. '공주'란 표현은 박 전 대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이고, '난쟁이'란 표현을 좋아할 여야 대권주자들은 당연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수석의 비유는 지금 도래한 '개헌 정국'의 본질을 꿰뚫는 비수이기도 하다.
김 전 수석은 개헌에 대해 이런 얘기도 한다. 그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부탁으로 헌법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개헌전문가이기도 하다.
"개헌의 적기가 언제냐고? 국민들이 '아, 이런 훌륭한 대통령은 한 번 더 대통령을 해야 하는데 이를 막는 5년 단임제가 문제'라고 제도의 문제를 느낄 때가 바로 개헌을 할 때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단임제를 도입한 이래 그런 대통령이 있었나?"
"야권이 결국은 내각제에 동의할 거라고? 과연 그럴까. 그랬다간 곧바로 과거 전두환때 민한당처럼 사꾸라 소리를 듣고 자멸할 텐데."
친이계 구도대로 가면 '구 일본 자민당 시대'로 회귀
개헌은 친이계가 언젠가 꺼내들 것으로 예상됐던 카드다.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아니면 이명박 정권하에서 개헌을 논의할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 있다. 친이계 주장대로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바꾸고 선거구제도 중대선구제로 바꾸면,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 전 몰락한 일본의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요즘 빠르게 쇠락하고 있다. 일본내에선 그 핵심원인 중 하나로 '자민당 일당 장기집권'을 꼽는다. 내각제-중대선거구제는 '국민 심판권'에서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반세기 이상 국민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권과 밥그릇만 챙기다가 결국 일본열도를 침몰의 늪으로 빠트렸다는 거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분명 손봐야 할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여론조사 등을 보면, 지금 국민 다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그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국민에게 가장 불신받는 집단인 정치권에 마지막 남은 견제수단인 '국민 심판권'을 헌납할 생각이 없는 거다.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장치는 권력구조 개편 외에도 부지기수로 많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백년대계 차원에서 개헌을 생각한다면 '제한적 개헌' 같은 엉뚱한 생각 말고 대통령 절대권력을 견제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할 '총체적 개헌'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