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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눈물 흘리는 자화상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오랜 전의 일이다. 나는 우창자의 작품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런데 이름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여자 이름에 아니 웬 창자? 우창자면 소창자란 얘기인가? 남의 이름을 갖고 이런저런 생각과 상념의 나래를 펴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이름은 너무 강렬했다. 그런데 그 이름 못지않게 우연히 전시장에서 본 그녀의 작품은 더욱 셌다.

줄줄 눈물을 흘리는 두 사람의 얼굴인데 그것은 작가의 자화상이자 분신이었던 것 같다. 이후 작가에게 연락을 취해 포트폴리오를 받아 보고자 했다. 그러니까 그때가 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모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며칠 후 약속날 그녀는 미술관으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 왔다. 스커트 차림에 단발머리로 자신의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로 작은 귀걸이가 반짝였다. 의자에 앉아 자료를 펼쳐놓고 함께 얘기를 나누는 순간 나는 공연한 미안함에 시달렸다. 말을 하는 도중 그녀는 머리로 가린 얼굴을 순간순간 드러냈는데 그 얼굴은 지독한 화상으로 덮여 있었다. 비로소 그녀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뜨거운 불에 의해 녹은 안면은 흉측하고 무서웠지만 그런 얼굴로 평생을 살아갈 그녀의 마음은 더욱 황폐할 것이다. 우창자의 그림은 한결같이 울고 있거나 얼굴이 녹아서 흐르는 장면이다. 이것은 분명 그녀의 자화상일 것이다. 화상에 의해서 녹아내리는 얼굴이거나 그런 얼굴로 인해 눈물로 지새웠을 본인의 얼굴인 것이다. 훼손되고 상처 입은 얼굴, 본래의 얼굴에서 많이 지워진 얼굴, 그러나 그 얼굴은 본인의 것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완벽하게 노출된 장소다. 나보다 타인들이 더 많이 나를 본다. 내 얼굴을 뜯어먹는다.

“미학적인 측면에서 인체 중에서 그 일부만 망가져도 전체성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부분은 얼굴이외에는 없다.” (게오르그 짐멜)

인류 역사에서 나병은 얼굴의 모양을 망치기 때문에 여러 시대와 문화에 걸쳐 가장 두려운 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인 나병환자가 건네 준 담배를 받아 피우는 장면이 기억난다. 그는 그 상처, 얼굴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그에게 도움을 준다.

11세기에 중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역시 얼굴과 상처에 대한 내용을 전해준다. 부유한 상인의 아내가 도교의 길을 따라 영생과 깨우침을 얻고자 했다고 한다. 득도를 위해 먼 곳으로의 여행을 가고자 했다. 긴 여행길을 준비하고 여행 도중에 중국의 가부장적 사회의 남자들의 겁탈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손상시킨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 냄비에 얼굴을 갖다 대어 그 얼굴을 추악하게 만들어 버렸다. 얼굴, 아름다움을 희생하여 영생과 깨우침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작가는 단단한 하드보드지 위에 물감을 칠하고 종이를 벗겨내서 얼굴과 눈을 그려 보인다. 눈동자는 부재하고 깊은 구멍처럼 뚫려있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는 얼굴을 그린 이 <Two Blubberers>는 화상 입은 자신의 얼굴과 그로 인한 상처받은 내면의 자화상이다. 내가 접한 가장 슬프고 아련한 자화상이다.

90년대 중반에 작가의 작품을 만나고 매우 매력적인 이 자화상을 늘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작가는 그 이후 연락이 끊기고 미술계로부터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로서는 그녀가 그 좋은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정직하게 드러낸 그동안의 작품을 그녀는 아마도 버거워했었던 것 같다.

박영택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0 0
    sprite1001

    기사 잘 봤어요.
    또한, 호소하는 마음담아 전합니다!!
    요즘 수도권 시내버스에도 광고되고 있는 유투브 컨텐츠에요.
    감상하시고 옳은 판단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https://youtu.be/2QjJS1Cnr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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