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절 싫으면" vs "주지를 갈아칠 수도"
<뷰스칼럼> 모험주의가 증폭시키는 '한나라 분당' 확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주지가 싫지, 절이 싫은 게 아닌데. 주지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친이-친박의 속내다. 겉으로 말만 이렇게 하지 못할뿐, 내부 분위기는 말 그대로 '분당 전야'를 방불케 하는 살풍경, 그 자체다.
"절이 싫으면 중이..." vs "주지를 갈아칠 수도"
이명박 대통령의 특명후 친이계는 세종시 당론 변경에 본격착수했다. 그것도 보통 당론이 아니다. 당원이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당론'이다. 이 또한 "결론이 나면 따라야 한다"는 이 대통령 특명에 기초한 것이다.
만약 '강제당론'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당행위'다. 경고 등의 경징계도 가능하나, 최악의 경우 '제명'까지 할 수 있다.
친이계는 당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가 다수파이고 주인인데 왜 나가냐"는 식이다. 친박계도 마찬가지다. "누가 살려낸 당인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나가라 하냐"고 반문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 생활'에 진저리를 친다. 과거 10년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집 나가면 춥고 배고프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서로 안 나가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딱 하나다. 내쫓는 거다. 숫자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내치는 거다. '해당행위'라는 징계절차를 거쳐. 이래서 지금 정가는 물론 국민들이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파국적 양상으로 발전하는 한나라당 내홍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다.
과연 박근혜를 내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의원은 169명이다. 세종시 당론을 바꾸기 위해선 재적의원 3분의 2, 113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외형상 친이계는 90~100명, 친박은 50~60명, 중립은 20~30명 정도로 분류된다.
친이 직계는 대통령이 특명을 내린 만큼 '당론 변경'이 가능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가 2년밖에 안 지나 서슬이 시퍼런 현시점에서 '현실권력의 파워'를 무시할 의원은 친이계나 중립진영에 거의 없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대통령 말 한마디에 꿈뻑 죽기란 친이계는 말할 것도 없고, 중립진영 상당수도 오십보백보였기 때문이다.
세종시 강제당론을 채택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앞서 당론을 바꿔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해당행위자'로 몰려도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져 세종시 수정을 저지하겠다는 의미다. 친박도 박 전 대표 뒤를 따른다면, 한나라당이 강제당론을 채택해봤자 국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왜 친이는 '강제당론' 드라이브를 거는 걸까. 이래서 친박은 차제에 "박근혜 전 대표를 내치려 하는 것"이라고 의심하는 거다.
박근혜를 내친다면...여소야대
그러나 정말 박 전 대표를 내칠 수 있을까.
박 전 대표가 제명되면 최소한 50명 안팎의 의원들이 그 뒤를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본다. 2년 뒤 치러질 다음 총선에선 이 대통령보다 박 전 대표의 '지원 여부'가 의원들의 명줄을 결정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영남권 의원들이 이런 생각을 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박 전 대표가 50여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다 치자. 당연히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의 8명이 합류할 것이다. 이러면 숫자는 60명 선으로 불어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세력은 자유선진당이다.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선진당이 박 전 대표와 손을 잡을 공산이 크다. 특히 선진당 의원들은 세종시 논란 과정에 충청권에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이 급등한 만큼 "박 전 대표와 손 잡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아우성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면 숫자는 80명 선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현재 88석의 민주당과 '제1 야당' 자리를 놓고 경합할 정도로 단숨에 막강 파워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친이계에게 무엇보다 치명적인 대목은 한나라당이 제1당 자리를 고수하더라도 곧바로 '여소야대' 블랙홀에 빨려들 것이란 사실이다. 한국정치에서 여소야대란 대통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레임덕'을 의미한다. 세종시 수정이고, 4대강 사업 강행이고 '올 스톱'이다. 이에 앞서 6월 지방선거에서도 보수표가 분열하면서 집권여당은 궤멸적 타격을 입을 게 불을 보듯 훤하다.
노태우, 김대중 등 역대대통령은 여소야대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갖 연합을 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친이계가 독자적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면서 구조적으로 여소야대 상태다. 과연 친이계는 박 전 대표에게 차기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정치적 자살골인 여소야대를 택할 것인가.
모험주의...MB의 선택은
중립 지대에 서 있는 이한구 의원은 친이계의 세종시 강제당론 채택 드라이브에 대해 "만일에 채택이 된다면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라며 친이직계의 모험주의를 질타했다.
그는 "우리 당을 생각하는 사람 같으면 거기에 쉽게 동조를 못한다"라며 "정권 재창출하려면 박근혜 전 대표가 꼭 필요한데..."라며, 박 전 대표 제명시 당원과 지지자들의 전면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했다.
지금 이 대통령 주변의 참모와 직계들은 모험주의적 정면돌파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감 있게 건의한 세종시 수정이 실패할 경우 자신들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최종선택은 결국 이 대통령 몫이다. 누가 봐도 모험주의의 앞날은 뻔하다. <조선><중앙> 등 보수신문들이 펄펄 뛰며 세종시 수정을 접으라고 주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치에는 언제나 합리적 선택만이 존재했던 건 아니다. YS는 이회창에 대한 증오감 때문에 정권을 DJ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여러 측면에서 앞으로 보름간이 정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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