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이선경은 익숙하면서도 더없이 낯선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측면 얼굴의 재현이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극적으로 고양되어 있다.
그녀의 자화상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눈이다. 한쪽으로 몰린 눈동자는 모든 것을 응시하고 말하고 내면을 투사한다. 심지어 그 눈에서 한줄기 물이 흘러내리든가 연필이 가득 쑤셔 박혀있기도 하고 빨갛게 충혈되거나 파란 액체가 흘러내린다.
이 눈은 공포스럽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복잡한 심리의 굴곡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매개로 등장한다. 눈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회피하거나 은폐되거나 가려질 수 없다. 눈이 없다면 세상은 없다. 눈 없는 얼굴은 상상하기 어렵다.
본다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며 자신을 둘러싼 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복잡한 인식작용과 내밀한 심리가 연쇄적으로 반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항상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내 얼굴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타자들이 뜯어먹는 이미지이지만 나 스스로도 내 얼굴을 수시로 들여다 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작가는 그 꼬리들을 그려나간다. 얼굴에서 얼굴이, 입에서 입이, 눈에서 눈이 그려진다. 입으로 마구 토해내는 자신의 얼굴들, 자신 속에 들어와 사는 무수한 나, 나이면서도 타자이고 타자이면서도 나인 그런 얼굴이다. 그것은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자기 자신에 대한 피곤한 독백이자 넋두리다.
작가는 파스텔과 목탄 등의 재료를 사용해 드로잉을 한다. 부분적으로 그려지다 멈춘 자리에 비어 있는 화면이 여백처럼 자리한다. 선의 맛이 두드러지고 강렬하고 인상적인 얼굴들만이 독립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그런 화면이다.
작가는 다양한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다. 그는 거울 앞에서 연기하고 자신을 쳐다보고 관찰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독백이자 마임의 형태로 다가온다. 초상화나 자화상의 범주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자신의 얼굴을 변형하고 유희하고 재맥락화 하는데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자기현시와 모멸, 자기혐오와 애증이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의 차원에서 증폭된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 자기혐오와 자기도취가 마구 뒤섞여 혼재한 이 얼굴에는 무수한 자신이 증식되어 나온다. 그것은 다중적이고 복수적이자 무한하다. 따라서 이 얼굴은 작가 자신이 초상이자 보편적인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 눈을 뜨고 응시한다. 강렬하게 거울을, 관자를 바라보고 있다.
“거울을 본다. 어색하게 쌍꺼풀진 눈, 군데군데 박혀있는 주근깨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눈빛. 혓바닥을 스윽 내밀어 본다. 다르다. 좀 전과는 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 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이 사람은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낯설다. 하루에도 수십 수만 번씩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착하거나, 사악하거나, 혹은 순진하거나 음흉하거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저 아래 깊숙한 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의 얼굴 그리기는 이런 나 자신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 처절한 자기혐오와 자아도취에서 비롯되었다. 친절함과 불편함, 선과 악을 오가며 상대편의 뒤통수에 악마 같은 미소를 비수처럼 꽂아놓는 나의 얼굴은 명실상부한 모순의 형태인 것만 같다. 다중인격의 결정판인 것만 같다.” (작가노트)
필자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그녀의 자화상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눈이다. 한쪽으로 몰린 눈동자는 모든 것을 응시하고 말하고 내면을 투사한다. 심지어 그 눈에서 한줄기 물이 흘러내리든가 연필이 가득 쑤셔 박혀있기도 하고 빨갛게 충혈되거나 파란 액체가 흘러내린다.
이 눈은 공포스럽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복잡한 심리의 굴곡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매개로 등장한다. 눈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회피하거나 은폐되거나 가려질 수 없다. 눈이 없다면 세상은 없다. 눈 없는 얼굴은 상상하기 어렵다.
본다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며 자신을 둘러싼 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그것은 복잡한 인식작용과 내밀한 심리가 연쇄적으로 반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항상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내 얼굴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타자들이 뜯어먹는 이미지이지만 나 스스로도 내 얼굴을 수시로 들여다 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작가는 그 꼬리들을 그려나간다. 얼굴에서 얼굴이, 입에서 입이, 눈에서 눈이 그려진다. 입으로 마구 토해내는 자신의 얼굴들, 자신 속에 들어와 사는 무수한 나, 나이면서도 타자이고 타자이면서도 나인 그런 얼굴이다. 그것은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자기 자신에 대한 피곤한 독백이자 넋두리다.
작가는 파스텔과 목탄 등의 재료를 사용해 드로잉을 한다. 부분적으로 그려지다 멈춘 자리에 비어 있는 화면이 여백처럼 자리한다. 선의 맛이 두드러지고 강렬하고 인상적인 얼굴들만이 독립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그런 화면이다.
작가는 다양한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다. 그는 거울 앞에서 연기하고 자신을 쳐다보고 관찰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옮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독백이자 마임의 형태로 다가온다. 초상화나 자화상의 범주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자신의 얼굴을 변형하고 유희하고 재맥락화 하는데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자기현시와 모멸, 자기혐오와 애증이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의 차원에서 증폭된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 자기혐오와 자기도취가 마구 뒤섞여 혼재한 이 얼굴에는 무수한 자신이 증식되어 나온다. 그것은 다중적이고 복수적이자 무한하다. 따라서 이 얼굴은 작가 자신이 초상이자 보편적인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 눈을 뜨고 응시한다. 강렬하게 거울을, 관자를 바라보고 있다.
“거울을 본다. 어색하게 쌍꺼풀진 눈, 군데군데 박혀있는 주근깨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눈빛. 혓바닥을 스윽 내밀어 본다. 다르다. 좀 전과는 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 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이 사람은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낯설다. 하루에도 수십 수만 번씩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착하거나, 사악하거나, 혹은 순진하거나 음흉하거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저 아래 깊숙한 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의 얼굴 그리기는 이런 나 자신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 처절한 자기혐오와 자아도취에서 비롯되었다. 친절함과 불편함, 선과 악을 오가며 상대편의 뒤통수에 악마 같은 미소를 비수처럼 꽂아놓는 나의 얼굴은 명실상부한 모순의 형태인 것만 같다. 다중인격의 결정판인 것만 같다.” (작가노트)
필자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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