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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연수원 동기 '7기생 전성시대'

[김진원의 로펌 이야기] <7> 盧 사시 동기들, 재조-재야 장악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헌재 소장에 내정됐다.

국회동의를 통과할 경우 사상 최초의 여성 헌재 소장이 탄생하게 된다. 1988년 9월15일 헌재가 문을 연 이후 18년만이며, 역대 네번째 헌재 소장이다.

그러나 그의 헌재 소장 내정은 사법연수원을 함께 다녔다는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더욱 관심을 사고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에 이어 또 한 명의 연수원 동기가 최고 사법기관을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인 7기생은 모두 60명. 1975년에 치러진 17회 사법시험에 노 대통령과 함께 합격한 예비법조인은 58명이지만, 사시 16회 합격자 등 2명이 늘어 60명이 함께 연수원을 마쳤다.

사시 동기생인 전효숙씨를 최초의 헌재재판관으로 임명한 뒤 청와대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이런 7기생들의 약진은 노 대통령이 지난 2002년 겨울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법조계 등에선 이때 이미 7기생들의 활약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졸 출신으로 대학동기가 없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법조인의 꿈을 꾸며 2년간 동문수학한 연수원 동기들만큼 가까운 지인(知人)도 드물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연수원 동기인 한 중견 법조인은 기자에게 노 대통령과 관련된 연수원 시절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만해도 사립대학중엔 사시에 합격한 수재가 있으면 대학 졸업장을 주며 자기네 대학 출신 법조인으로 확보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어요. 모 사립대에서 연수원생인 노 대통령에게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등록만 하면 졸업장을 주겠다고 제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수생이던 노 대통령은 며칠후 "안 할랍니다"라며,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제의를 거절하며 "내가 그 대학 나왔다고 하면 남들이 가짜라고 할 것 아닙니까" 라고 분명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고, 이 법조인은 소신이 강했던 노 대통령의 당시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보면 노 대통령의 학력은 1966년 부산상고 졸업(53회)이 마지막으로 돼 있다.

1977년 연수원을 마친 후 약 30년이 흐른 지금 7기생들은 재조든 재야든 법조의 중견이 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 검찰총장과 헌재 소장에 내정된 전 재판관 외에도 7기생들은 다른 어느 기수보다도 법원과 검찰의 요직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법원엔 얼마전 김능환, 안대희 두명의 7기생이 대법관이 돼 자리를 틀었다.

헌재도 7기생중 홍일점인 전효숙 재판관의 헌재 소장 내정에 이어 김종대 창원지법원장이 새 재판관 후보로 내정됐다. 같은 7기생인 조대현 재판관은 로펌인 법무법인 화우에 있다가 지난해 7월 재판관이 됐다.

내정된 대로라면, 소장을 포함해 9명의 재판관중 3명의 재판관을 노 대통령 동기가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같은 7기생인 장관급의 서상홍 사무처장은 헌재의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있다.

7기생중에 워낙 출중한 인재가 많고, 충분한 경륜이 쌓여 이런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의 인연에 빗댄 또다른 '코드 인사' 시비가 일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 싶다. 법조 주변에선 7기생 주변 기수가 상대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입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들리고 있다.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재조 뿐만 아니라 재야에서도 7기생들이 혁혁한 활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주요 대형 로펌의 면면을 보면, 7기 출신 변호사들이 대표변호사 등으로 포진한 가운데 국내 로펌업계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간다.

규모가 제일 큰 김&장법률사무소에 7기생들이 가장 많다. 1974년 1년 앞서 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노 대통령과 함께 연수원을 다닌 신희택 변호사와 사시 17회의 정경택, 양영준 변호사가 모두 노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들이다.

회사법 전문인 신 변호사는 7기생중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노 대통령이 판사로 임관한 반면 그는 군법무관을 마친 후인 1980년 김&장에서 곧바로 로펌 변호사가 돼 화제가 됐다.

사시 17회 수석은 의정부지검장을 끝으로 인천에서 개업한 유성수 변호사, 최연소로 합격한 사람은 안대희 대법관이다.

정경택 변호사는 또 1974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한 수재로, 회사법 분야을 맡아 기업 인수 · 합병(M&A) 사건 등 여러 대형 딜을 지휘하고 있다. 양영준 변호사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특허전문으로 유명했던 중앙국제특허법률사무소에서 오래 근무한 법무법인 한결의 박성민 대표변호사도 연수원을 마치고 판, 검사 대신 로펌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합격자가 채 60명이 안 됐던 당시는 사시 합격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판, 검사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이다. 따라서 이들 네 사람의 로펌행은 로펌업계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얘기되고 있다. 이후 로펌업계의 발전에 견인차가 된 이른바 '연수원 출신 변호사'의 로펌행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80년대 이후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의 로펌행이 이어지면서 로펌업계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로펌에 입사한 이들 신참변호사들이 제각각 전문 분야를 정해 노하우를 터득하고, 외국 로스쿨에의 유학을 통해 국제감각을 익히면서 국내 로펌업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앞의 네 사람이 처음부터 로펌을 선택한 경우라면, 판, 검사로 임관했다가 나중에 로펌에 합류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7기생들도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때 노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한 법무법인 화우의 강보현 대표, 판사 시절 법원내 요직인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을 역임한 법무법인 광장의 김병재 대표,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충정의 장용국 대표변호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또 노 대통령이 집권한 참여정부들어 각각 해당 로펌에서 대표변호사가 돼 지휘부에 진입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의 구성원 변호사인 정인진 변호사는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까지 역임하고 비교적 뒤늦게 로펌에 합류했다. 또 삼성의 이종왕 법무실장은 검찰1과장 등 검찰 내 요직을 거쳐 대검 수사기획관을 끝으로 변호사가 됐다. 이 변호사는 삼성의 법무실을 맡기전 김&장의 변호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어 로펌과의 인연도 없지 않다.

이외에도 7기생들은 30여명이 단독개업 또는 중소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어 재야법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간단치 않다.

재조엔 또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외에도 여러 명의 동기들이 일선 법원장과 고검장 등으로 법원과 검찰을 떠받치고 있다. 김관재 광주지법원장, 손용근 춘천지법원장, 이호원 제주지법원장, 차한성 청주지법원장 등 일선법원장 4명이 고법원장과 수도권 법원장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임승관 대검차장과 이종백 부산고검장은 정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검찰의 막강한 지휘부를 형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7기생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작금의 법조계인 것이다. 법조 주변에선 7기생 출신 법무장관이 나올 것이라는 등, 7기가 한번 더 검찰총장을 맡을 것이라는 등 '7기생 괴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결과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한 중견검사는 오래전 "7기생이 검찰총장이 돼 검찰총장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가 7기생의 검찰내 전성시대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재조를 거쳐 재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 게 우리 법조의 현실이다. 로펌 등 재야 법조계에선 7기생의 전성기가 재조에서 보다도 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5 28
    신민

    재밌다
    김진원씨의 글을 매번 재밌게 읽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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