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 침체 직격탄 맞은 남대문시장
[폭발직전의 대한민국] <2> 1백년래 최대불황으로 신음
대지면적 2만평에 점포수 1만여개, 하루 유동인구만 30~40만에 이르는 국내 최대 재래 시장, 일제 때도 왜상들에게서 상권을 지켰고 한국전쟁때도 지켰던 한국 부동의 재래시장이다. 한때는 평당 자릿값이 4천만원을 넘기도 했던 황금시장이었고, 지금도 탱크 말고는 뭐든 구할 수 있다는 곳이다. 서울 중구 남창동 49번지 ‘남대문 시장’의 화려한 역사이자 외형이다. 그러나 유통시장 개방 10년을 맞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남대문 시장의 예전 화려한 명성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남대문 시장을 찾은 9일은 여름휴가 기간이라 일부 상가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러나 주력업종인 숙녀복 상가나 외향점포, 노점상 등은 여전히 영업중이었다.
숭례문 동쪽으로 위치한 남대문 시장 정문을 들어서자 외향점포와 노점상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재래시장 특유의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상인들의 박수소리, 그 흔한 고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장에 부대낌이 없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에요?”
“날도 더운데 소리 지르면 뭐할 거야. 그냥 오면 좋고 안오면 할 수 없는거지. 온다고 물건만 죄다 후벼파놓고 갈 건데 뭐.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안오는 게 나아.”
남대문 시장 정문 1번 출입구와 인근 7, 8번 출입구는 주로 수입상가들이 위치해있다. 일본인들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는 7, 8번 출입구에 이들을 내려준다.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수입상가 쪽을 훑고 지나가는 날은 그나마 상인들에게 수지가 맞는 날이다. 30~40대의 일본인 주부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물건은 배용준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 사진, 티셔츠 등이다. 덤으로 한국산 김을 비롯한 건어물이나 도자기 등도 간간히 사 간다.
‘배용준 골목’이라는 애칭답게 수입상가 골목 곳곳에는 배용준 대형 포스터에서부터 배용준 양말, 심지어 배용준 안경까지 일본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수입상가 직원은 “양말이든 티셔츠든 어떤 물건에 배용준 얼굴만 딱 박아놓으면 일본인들이 혹 해요. 그런데 올 초부터 이런 배용준 효과도 끝난 것 같아요. 남대문을 들르는 일본인도 적은 것 같고 전반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배용준이 요즘 드라마 안 찍는데요? 드라마 좀 찍으라 해요. 배용준이 드라마 안찍으니 더 이상 새롭게 팔아먹을 게 없잖아요”라고 농을 건넸다.
이 곳에서 10년 넘게 수입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조(가명. 36) 씨는 현재의 남대문 시장 경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해 바뀔 때마다 최악이다. 바닥이 어디인지를 모르겠다” 김 씨는 정부가 지난 5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내놓은 일련의 대책과 관련해 야박한 평가를 쏟아냈다.
“활성화 대책? 똥밟는 소리다. 자기들이 직접와서 보지도 않고선 그냥 무슨 실험하듯 대책인가 뭔가를 내놓기 바쁘다. 우리가 무슨 실험실 쥐인가? 이거 해보고 안되면 또 저것도 해보고 그러게...”
그는 한-일간의 독도문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걱정이다.
“막말로 한국 사람으로서 독도가 지들 땅이라고 우길 때 화가 나기도 하고 화가 나야 정상이지만 일본인 관광객 돈 보고 먹고 사는 우리들로서는 그럴 입장도 못된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만 계속되고 있다.”
남대문시장 내 관광안내소도 한산했다. 남대문 시장 내에는 서울시 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안내소 1곳과 남대문시장주식회사(건물주와 상인이 함께 운영하는 관리법인)에서 운영하는 안내소 1곳이 있다. 관광안내소의 한 직원은 “예전보다 일본인 관광객이 좀 줄어든 느낌”이라며 한류 열풍이 한계점에 다달았음을 시사했다.
도매 중심 남대문, 지방 경기 악화로 지방상인 발길 뚝...
그러나 의류상가 쪽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퀸프라자상가 내에서 20년 넘게 여성복을 팔고있는 정미향(가명 54)씨는 “2~3년 전부터 역대 최고의 불황을 해마다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금은 얼마나 오르는지... 오늘 아침에도 주민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 씨는 지방 경기 침체가 이 곳 남대문 시장 경기 위축을 부르는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대문 시장은 도매업이 70%를 차지한다. 지방상인들이 물건을 떼러 많이 와야 남대문도 산다. 그런데 지방 경기가 다 죽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겠나?”
그래도 정씨는 상가 휴가가 시작되는 13일 전까지는 죽어라 팔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최대한 옷을 빼고 휴가를 가야 한다. 지금 못 팔면 이제 여름 옷 재고는 모두 떨이로 넘겨야 한다. 안 그래도 남는 게 없는데...”
정씨는 “대책이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책? 바라는 것이 있는 시기도 지났다. 이제는 남대문 끝났다. 다 죽었다.”
정 씨 옆 점포 상인인 정화자(가명 47) 씨도 거들었다. “대책이 어딨어? 죽지 못해 사는 거지. 갈 데도 없어. 어디를 가겠어. 이 나이에...”
“동대문이 남대문을 이겼다고? 젊은 애들이 불황을 모르는 거다”
흔히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과 견주는 시장은 동대문 시장이다. 동대문 시장은 시설현대화로 종합쇼핑몰 타운으로 발빠른 변신을 통해 남대문 시장 매출을 몇 년 전부터 훌쩍 앞질렀다. 그에반해 남대문 시장은 시설노후와 시장 전체의 어두운 분위기로 쇠락해 가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그것만이 남대문 시장의 불황을 말해주는 요인은 아니라고 했다. “동대문은 주로 누가 찾나? 젊은 애들이다. 젊은 애들은 부모들한테 돈 타다 써잖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 제낀다. 동대문이 불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동대문을 들르는 젊은 애들이 불황을 모르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은 2~3년전부터 일부 상가 건물들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대문의 시설현대화를 벤치마킹 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시장 내 들어서있는 대부분의 상가들이 40년을 훌쩍 넘긴 노후건물이라 안전 문제가 걸려있는 것.
지난 달 리모델링이 끝나고 새롭게 오픈한 대도은남상가를 찾았다. 대도은남상가는 1층에 숙녀복을, 2층에는 도소매 아동복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부르뎅아동복을 비롯한 아동복 코너가 들어서있는 상가다. 그러나 아직 점포들이 완전히 들어차 있지 않았다.
정부ㆍ서울시 말로만 재래시장 대책 “현장 상황은 전혀 몰라”
이 곳에서 만난 한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비어있는 점포들이 많은지 금새 알 수 있었다.
“리모델링을 작년 5월쯤인가 하기로 했는데 말이 많았어. 이 곳에서 20~30년씩 옷 장사를 한 점포주들은 리모델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뚱한 반응을 보였다. 상가 내 지주들(각 점포의 실제소유주)이 리모델링 값을 우리같은 점포주(임차인)보고 내라는 거야. 자기들이 장사할 것 아니니까 리모델링 비 아까우면 나가라고 하데. 어떻게... 할 수 없이 점포주들이 냈지. 나도 돈 천만원 빚 내서 했지.”
결국 리모델링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인들은 적어도 10년 넘게 일한 터전을 버려야만 했다.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하는 상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모델링을 하는 1년간 마땅히 장사를 할 곳이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재래시장 경기활성화 대책을 외치던 정부와 서울시는 이같은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지원금? 아, 지주놈들도 안내겠다는 돈을 정부나 서울시가 도와주겠어? 그래 놓고서는 문화상품권이다 뭐다 쓸데없는 정책들로 ‘할만큼 하고 있다’ 그래 선전만 하는거야. 시설 노후 어쩌고 소방서에서 위험하니 시설 바꾸라고 그런 말은 도대체 왜 하는거야. 불나서 타 죽으나 장사 안돼 굶어 죽으나 똑같은 거 아냐?”
이곳에서 만난 파자마 상인 박미자(가명 65)씨는 남대문을 40년 넘게 지킨 그야말로 남대문 전문가다. 전문가(?)의 입에서도 역대 최고의 불황 얘기는 어김없이 새어나왔다.
“내가 40년을 이 곳에서 장사했어. 남대문 전문가야. 70~80년대에는 지방에서 물건 떼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나서 주차 문제로 싸움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런데 이제는 지방에서 물건 떼러 오는 사람들도 없어. 그나마 동대문은 좀 있다 그러더구만. 근데 동대문도 뭐 젊은애들 옷 말고 되는 게 있을라구.”
박 씨는 이야기를 풀어가며 더욱 더 흥분했다.
“요즘 경기가 개판이야. 미스터 박(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니 뭐니해도 그 때가 좋았어. 그 때는 실업자가 있었어? 요즘은 명문대 나와도 취업이 안돼. 회사에 취업하는 게 아니라 안방에 취업해. ‘안방취직’이란 말이지. 민주화? 개똥이지. 그까짓 것 뭔 소용 있어? 민주화 하면 뭐해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데. 이미 경기고 뭐고 다 죽었는데 이거 뭐 대책 있겠어? 다음 번 대통령은 엄청난 경제박사여야 해.”
바닥 모르는 불황, 시장 상인간 갈등도 커져
바닥을 모르는 불황의 늪에 시장 내 상인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남대문 시장 내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숙자(가명 52) 씨는 “할인점에 밀리고 동대문에 밀리고, 거기다 남대문 시장 안에서도 밀린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가 바깥 노점에서 중국산 싸구리 옷 죄다 갖다놓고 파는 데 가격 경쟁이 될 게 있어? 우리 제품이 훨씬 질 좋다고 선전하면 뭐해? 어차피 남대문 오는 사람들 빤하잖아. 다 서민들이야. 서민들이 질 좋은 거 따지겠어? 거기다 같은 남대문 시장거라고 도매급 취급하는데...”라며 노점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노점상을 운영하는 이희도(가명 53) 씨는 “중국 옷? 중국 옷은 사람입는 옷 아냐? 제품 떨어진다고 누가 그래? 옷도 옷 나름이지. 지들이 장사 못하는 게 왜 우리 탓이야? 우리는 뭐 잘되는 줄 알어?”라며 거친 숨소리를 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상가 상인과 노점상 상인들간의 갈등에 대해서 “으레 재래시장이면 있는 일”이라면서도 “불황이 깊어지고 다들 안돼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와 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사는 밥 장사다. 이 곳 식당 업주들은 남대문을 찾는 고객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올려주는 매출로 가게를 꾸린다.
40년간 남대문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김혜선(가명 63)씨는 “입으로만 안되는 게 아니라 진짜 안된다. 인근 밥장사도 죄다 휴가 가 버렸다. 얼마나 안됐으면 보름씩이나 휴가 가는 식당도 있겠냐”며 “해마다 어째 휴가기간이 길어지네. 그게 좋은 건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백반장사 잘 될 때는 7평짜리 식당이라도 배달 직원만 4~5명이나 뒀지. 다 옛날일이야. 지금은 다 까먹고 나랑 친구랑 둘이서 해. 고기도 놀던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그래도 여기를 떠나지는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김기태 남대문시장주식회사 기획주임은 “무엇보다 문제는 경기가 살아나야 된다는 점”이라면서도 “그나마 정부에서 시장 경기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좀 내놔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김 주임은 “남대문 들어설 때 노후한 간판만 봐도 허름하고 캐캐한 느낌을 풍긴다. 그래서 서울시에 상징물도 좀 세우고 간판도 근사한 걸로 하자고 하니까 문화재청에서 숭례문 인근이라 힘들다는 답변을 내놔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 주변 가로조명등 설치 문제도 다 그러한 행정절차에 걸려있다”며 “정부가 말로만 대책, 대책 그러지 말고 좀 현장을 둘러보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지금 그나마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대문 시장을 찾은 9일은 여름휴가 기간이라 일부 상가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러나 주력업종인 숙녀복 상가나 외향점포, 노점상 등은 여전히 영업중이었다.
숭례문 동쪽으로 위치한 남대문 시장 정문을 들어서자 외향점포와 노점상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재래시장 특유의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상인들의 박수소리, 그 흔한 고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장에 부대낌이 없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에요?”
“날도 더운데 소리 지르면 뭐할 거야. 그냥 오면 좋고 안오면 할 수 없는거지. 온다고 물건만 죄다 후벼파놓고 갈 건데 뭐.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안오는 게 나아.”
남대문 시장 정문 1번 출입구와 인근 7, 8번 출입구는 주로 수입상가들이 위치해있다. 일본인들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는 7, 8번 출입구에 이들을 내려준다.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수입상가 쪽을 훑고 지나가는 날은 그나마 상인들에게 수지가 맞는 날이다. 30~40대의 일본인 주부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물건은 배용준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 사진, 티셔츠 등이다. 덤으로 한국산 김을 비롯한 건어물이나 도자기 등도 간간히 사 간다.
‘배용준 골목’이라는 애칭답게 수입상가 골목 곳곳에는 배용준 대형 포스터에서부터 배용준 양말, 심지어 배용준 안경까지 일본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수입상가 직원은 “양말이든 티셔츠든 어떤 물건에 배용준 얼굴만 딱 박아놓으면 일본인들이 혹 해요. 그런데 올 초부터 이런 배용준 효과도 끝난 것 같아요. 남대문을 들르는 일본인도 적은 것 같고 전반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배용준이 요즘 드라마 안 찍는데요? 드라마 좀 찍으라 해요. 배용준이 드라마 안찍으니 더 이상 새롭게 팔아먹을 게 없잖아요”라고 농을 건넸다.
이 곳에서 10년 넘게 수입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조(가명. 36) 씨는 현재의 남대문 시장 경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해 바뀔 때마다 최악이다. 바닥이 어디인지를 모르겠다” 김 씨는 정부가 지난 5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내놓은 일련의 대책과 관련해 야박한 평가를 쏟아냈다.
“활성화 대책? 똥밟는 소리다. 자기들이 직접와서 보지도 않고선 그냥 무슨 실험하듯 대책인가 뭔가를 내놓기 바쁘다. 우리가 무슨 실험실 쥐인가? 이거 해보고 안되면 또 저것도 해보고 그러게...”
그는 한-일간의 독도문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걱정이다.
“막말로 한국 사람으로서 독도가 지들 땅이라고 우길 때 화가 나기도 하고 화가 나야 정상이지만 일본인 관광객 돈 보고 먹고 사는 우리들로서는 그럴 입장도 못된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만 계속되고 있다.”
남대문시장 내 관광안내소도 한산했다. 남대문 시장 내에는 서울시 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안내소 1곳과 남대문시장주식회사(건물주와 상인이 함께 운영하는 관리법인)에서 운영하는 안내소 1곳이 있다. 관광안내소의 한 직원은 “예전보다 일본인 관광객이 좀 줄어든 느낌”이라며 한류 열풍이 한계점에 다달았음을 시사했다.
도매 중심 남대문, 지방 경기 악화로 지방상인 발길 뚝...
그러나 의류상가 쪽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퀸프라자상가 내에서 20년 넘게 여성복을 팔고있는 정미향(가명 54)씨는 “2~3년 전부터 역대 최고의 불황을 해마다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금은 얼마나 오르는지... 오늘 아침에도 주민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 씨는 지방 경기 침체가 이 곳 남대문 시장 경기 위축을 부르는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대문 시장은 도매업이 70%를 차지한다. 지방상인들이 물건을 떼러 많이 와야 남대문도 산다. 그런데 지방 경기가 다 죽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겠나?”
그래도 정씨는 상가 휴가가 시작되는 13일 전까지는 죽어라 팔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최대한 옷을 빼고 휴가를 가야 한다. 지금 못 팔면 이제 여름 옷 재고는 모두 떨이로 넘겨야 한다. 안 그래도 남는 게 없는데...”
정씨는 “대책이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책? 바라는 것이 있는 시기도 지났다. 이제는 남대문 끝났다. 다 죽었다.”
정 씨 옆 점포 상인인 정화자(가명 47) 씨도 거들었다. “대책이 어딨어? 죽지 못해 사는 거지. 갈 데도 없어. 어디를 가겠어. 이 나이에...”
“동대문이 남대문을 이겼다고? 젊은 애들이 불황을 모르는 거다”
흔히 사람들이 남대문 시장과 견주는 시장은 동대문 시장이다. 동대문 시장은 시설현대화로 종합쇼핑몰 타운으로 발빠른 변신을 통해 남대문 시장 매출을 몇 년 전부터 훌쩍 앞질렀다. 그에반해 남대문 시장은 시설노후와 시장 전체의 어두운 분위기로 쇠락해 가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그것만이 남대문 시장의 불황을 말해주는 요인은 아니라고 했다. “동대문은 주로 누가 찾나? 젊은 애들이다. 젊은 애들은 부모들한테 돈 타다 써잖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 제낀다. 동대문이 불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동대문을 들르는 젊은 애들이 불황을 모르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은 2~3년전부터 일부 상가 건물들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대문의 시설현대화를 벤치마킹 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시장 내 들어서있는 대부분의 상가들이 40년을 훌쩍 넘긴 노후건물이라 안전 문제가 걸려있는 것.
지난 달 리모델링이 끝나고 새롭게 오픈한 대도은남상가를 찾았다. 대도은남상가는 1층에 숙녀복을, 2층에는 도소매 아동복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부르뎅아동복을 비롯한 아동복 코너가 들어서있는 상가다. 그러나 아직 점포들이 완전히 들어차 있지 않았다.
정부ㆍ서울시 말로만 재래시장 대책 “현장 상황은 전혀 몰라”
이 곳에서 만난 한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비어있는 점포들이 많은지 금새 알 수 있었다.
“리모델링을 작년 5월쯤인가 하기로 했는데 말이 많았어. 이 곳에서 20~30년씩 옷 장사를 한 점포주들은 리모델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뚱한 반응을 보였다. 상가 내 지주들(각 점포의 실제소유주)이 리모델링 값을 우리같은 점포주(임차인)보고 내라는 거야. 자기들이 장사할 것 아니니까 리모델링 비 아까우면 나가라고 하데. 어떻게... 할 수 없이 점포주들이 냈지. 나도 돈 천만원 빚 내서 했지.”
결국 리모델링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인들은 적어도 10년 넘게 일한 터전을 버려야만 했다.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하는 상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모델링을 하는 1년간 마땅히 장사를 할 곳이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재래시장 경기활성화 대책을 외치던 정부와 서울시는 이같은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지원금? 아, 지주놈들도 안내겠다는 돈을 정부나 서울시가 도와주겠어? 그래 놓고서는 문화상품권이다 뭐다 쓸데없는 정책들로 ‘할만큼 하고 있다’ 그래 선전만 하는거야. 시설 노후 어쩌고 소방서에서 위험하니 시설 바꾸라고 그런 말은 도대체 왜 하는거야. 불나서 타 죽으나 장사 안돼 굶어 죽으나 똑같은 거 아냐?”
이곳에서 만난 파자마 상인 박미자(가명 65)씨는 남대문을 40년 넘게 지킨 그야말로 남대문 전문가다. 전문가(?)의 입에서도 역대 최고의 불황 얘기는 어김없이 새어나왔다.
“내가 40년을 이 곳에서 장사했어. 남대문 전문가야. 70~80년대에는 지방에서 물건 떼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나서 주차 문제로 싸움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런데 이제는 지방에서 물건 떼러 오는 사람들도 없어. 그나마 동대문은 좀 있다 그러더구만. 근데 동대문도 뭐 젊은애들 옷 말고 되는 게 있을라구.”
박 씨는 이야기를 풀어가며 더욱 더 흥분했다.
“요즘 경기가 개판이야. 미스터 박(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니 뭐니해도 그 때가 좋았어. 그 때는 실업자가 있었어? 요즘은 명문대 나와도 취업이 안돼. 회사에 취업하는 게 아니라 안방에 취업해. ‘안방취직’이란 말이지. 민주화? 개똥이지. 그까짓 것 뭔 소용 있어? 민주화 하면 뭐해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데. 이미 경기고 뭐고 다 죽었는데 이거 뭐 대책 있겠어? 다음 번 대통령은 엄청난 경제박사여야 해.”
바닥 모르는 불황, 시장 상인간 갈등도 커져
바닥을 모르는 불황의 늪에 시장 내 상인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남대문 시장 내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숙자(가명 52) 씨는 “할인점에 밀리고 동대문에 밀리고, 거기다 남대문 시장 안에서도 밀린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가 바깥 노점에서 중국산 싸구리 옷 죄다 갖다놓고 파는 데 가격 경쟁이 될 게 있어? 우리 제품이 훨씬 질 좋다고 선전하면 뭐해? 어차피 남대문 오는 사람들 빤하잖아. 다 서민들이야. 서민들이 질 좋은 거 따지겠어? 거기다 같은 남대문 시장거라고 도매급 취급하는데...”라며 노점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노점상을 운영하는 이희도(가명 53) 씨는 “중국 옷? 중국 옷은 사람입는 옷 아냐? 제품 떨어진다고 누가 그래? 옷도 옷 나름이지. 지들이 장사 못하는 게 왜 우리 탓이야? 우리는 뭐 잘되는 줄 알어?”라며 거친 숨소리를 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상가 상인과 노점상 상인들간의 갈등에 대해서 “으레 재래시장이면 있는 일”이라면서도 “불황이 깊어지고 다들 안돼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와 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사는 밥 장사다. 이 곳 식당 업주들은 남대문을 찾는 고객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올려주는 매출로 가게를 꾸린다.
40년간 남대문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김혜선(가명 63)씨는 “입으로만 안되는 게 아니라 진짜 안된다. 인근 밥장사도 죄다 휴가 가 버렸다. 얼마나 안됐으면 보름씩이나 휴가 가는 식당도 있겠냐”며 “해마다 어째 휴가기간이 길어지네. 그게 좋은 건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백반장사 잘 될 때는 7평짜리 식당이라도 배달 직원만 4~5명이나 뒀지. 다 옛날일이야. 지금은 다 까먹고 나랑 친구랑 둘이서 해. 고기도 놀던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그래도 여기를 떠나지는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김기태 남대문시장주식회사 기획주임은 “무엇보다 문제는 경기가 살아나야 된다는 점”이라면서도 “그나마 정부에서 시장 경기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좀 내놔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김 주임은 “남대문 들어설 때 노후한 간판만 봐도 허름하고 캐캐한 느낌을 풍긴다. 그래서 서울시에 상징물도 좀 세우고 간판도 근사한 걸로 하자고 하니까 문화재청에서 숭례문 인근이라 힘들다는 답변을 내놔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 주변 가로조명등 설치 문제도 다 그러한 행정절차에 걸려있다”며 “정부가 말로만 대책, 대책 그러지 말고 좀 현장을 둘러보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지금 그나마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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