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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수요집회 '7백회'

15년 동안 매주 빠짐없이...국제평화운동으로 자리매김

15년 전인 지난 92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30여명의 할머니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여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후 일본에 의해 벌어진 인권침해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는 일본대사관 앞에서부터 광화문, 탑골공원까지 단 한 차례의 중단 없이 매주 수요일 정오에 계속됐다.

15년째가 되는 2006년 3월1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대사관 앞 항의집회가 7백회를 맞는다.

일본총리 사죄...유엔총회 등 국제사회 공론화 성과

그간 수요집회는 국내외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정신대에 대한 공식적인 사회쟁점화를 꺼리던 한국정부는 할머니들의 집회 이후 정부차원의 진상조사에 나섰고 일본정부에 공식적인 배상을 요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003년 열린 5백68회째 수요집회에서 일본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정대협 제공


정신대의 공식존재를 부인하던 일본정부도 최초 집회 이후 5일 만에 일본군의 관여를 시인했고 이듬해 서울을 방문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는 전후 처음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국제여론의 관심도 활발해져 92년 유엔총회에서 첫 의제로 다뤄진 이후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논의가 공론화됐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위안부 피해사실도 속속 제기됐다.

윤정옥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 “1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할머니들이 해 온 수요집회는 이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세계적인 평화운동으로 자리잡았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위안부 문제가 한국인 동남아의 문제가 아닌 국제인권운동의 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국가차원 배상 거부...여전히 고통겪는 할머니들

그러나 일본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차원의 배상을 거부하며 공식적인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 또한 65년 한일협정을 통해 청구권이 말소됐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대부분 80대를 넘어선 고령의 피해 할머니들 중 일부는 끝내 일본의 공식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지난 2월 박두리 할머니의 영면으로 이제 남은 피해자는 110명에 불과하다.

93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 지원법’ 제정 이후 공식등록 된 225명 중 절반 가까운 수치다.

남은 피해 할머니들 또한 전쟁에서 얻은 상처와 노환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며 정부보조금에 의존해서 생활해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수요집회를 국제평화운동으로 승화시켰다. 시위 도중 일본대사관을 지켜보는 할머니들. ⓒ 정대협 제공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비롯, 서울과 영남지역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정부보조금으로 지원받는 금액은 적게는 45만원에서 지역에 따라 많게는 106만원.

하지만 이같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이 지난 95년 ‘여성과 아시아평화를 위한 국민기금’이라는 민간기구를 통해 지원의사를 밝혔던 5천만원 상당의 보상금에 대해 “우리는 일본정부의 공식사죄를 입증할 정부차원의 배상 이외에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대해 윤 연구원은 “할머니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배상이 아니다. 일본정부의 반성과 사죄이다. 다만 사죄가 법적으로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배상이고 그래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돈 몇푼으로 지난 시절 여성으로서 유린당하고 민족적으로 차별당한 한을 풀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지금 살아계신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지난 시절 인권유린으로 인해 입은 정신적 상처를 동시에 안고 있어 진실규명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며 “이제는 그동안의 시민사회단체와 피해 할머니들의 노력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 화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7백회 집회 계기로 전국민, 전국 대상으로 집회 확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의장 신혜수 외 2명, 이하 정대협)는 7백회 수요집회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및 자발적인 소수의 시민들과 함께 해온 수요집회의 방식을 우리사회 전반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수요집회 7백회째를 알리는 정대협 홈페이지 모습 ⓒ 뷰스앤뉴스


이에 따라 15일 열리는 7백회 수요집회는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함과 동시에 서울뿐 아니라 전주, 마산, 울산,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또한 일본의 7개 지역을 비롯한 독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평화운동단체 중심으로 ‘일본의 공식사죄와 책임 있는 배상’을 요구하고 일본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동일한 연대집회가 열린다.

매월 한 차례씩 ‘테마가 있는 수요집회’를 통해 일반시민, 학생, 외국인 등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

정대협은 3월8일 열렸던 세계여성의 날 연대집회를 시작으로 매월 과거청산, 성노예 추방, 올바른 역사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연대활동도 강화해 8월에는 남북 해외동포, 9월에는 일본시민과 함께 수요집회를 갖는다.

임지영 정대협 간사는 “올해 수요시위는 기존의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단체 위주의 집회문화를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시민들과 어울리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 간사는 “정대협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그동안 공식배상을 거부하는 일본정부와 소극적 외교로 일관한 한국정부에 지속적으로 동일한 목소리를 내왔다”며 “7백회 집회에서는 살아서 지난 긴 세월동안 용기 있게 진실을 밝혀온 할머니들과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잊지 말자는 각오를 다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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