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시간을 잊으십시오..."
<뷰스칼럼> '승자의 저주' 걸린 박현주 회장 지금 어디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15일 신문에 낸 광고 카피다.
미래에셋은 요즘 연일 광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 몰빵투자 및 브릭스 투자 등 잇딴 해외투자 실패로 해외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새로운 뉴스가 못된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주식형펀드에서조차 순유출 사태가 발발하는 등, 상황이 자못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데 따른 비상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에 다른 증권사보다 높은 수수료를 내고도 막대한 원금 손실을 입은 투자가들을 더욱 울화통 터지게 하는 것은 광고 내용이다.
"2008년 현재 세계시장엔 많은 변동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IMF때나 9.11테러, 롱텀캐피탈 파산, 이라크 전쟁 등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며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긴 호흡의 장기적립식 투자가 더 좋은 결과를 위한 투자전략이 된다는 것-"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도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여 평균 매입 가격을 낮추는 적립식 투자라면, 지금의 어려운 시기도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또다른 기회가 되어줄 것입니다. 국내펀드는 물론 해외펀드도 적립식 투자가 방법입니다. 미래에셋은 적립식 투자를 추천합니다."
국내외에서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몇달 전부터 녹음기를 튼듯 되풀이되는 광고 카피다. 2000에서 1900으로, 1900에서 1800으로, 1800에서 1700으로...그리고 1400에서 1300으로 급락한 지금도 변함없다. 지금이 '바닥'이니 시장에 들어오라는 거다.
지금 당면한 위기를 IMF사태, 9.11테러, 롱텀캐피탈 파산, 이라크 전쟁 등에 비유하는 안이한 시각도 변함없다. 이번 위기는 1929년 세계대공황에 버금가는 최악의 위기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유럽과 각각 7천억달러와 2조5천억달러의 재정을 투입해 주요 은행들을 모조리 국유화하는 것만 봐도 위기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가 글로벌 불황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길게는 10~15년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셋만은 이번 위기를 '일회성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 조금 시간만 지나면 다시 급반등하는 V자형 경기회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펀드 자금 유출을 막아야 하는 미래에셋의 절실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최근 마포사옥을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유동성 확보에 초비상이 걸린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시장의 신뢰를 얻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미래에셋의 얼굴은 박현주 회장이다. 잘 나갈 때는 박 회장이 어떤 CEO를 만났다는 소문에 그 회사 주가가 오를 정도로 대단했다. 지난 1월1일초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월가 등이 모두 자신의 뒤를 따라올 것이란 호언했던 박 회장은 그러나 폭락 장세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단지 신문 광고만을 통해 "나를 믿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보낼뿐이다.
IR(기업설명회)의 ABC중 하나가 "위기때는 CEO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실적이 좋을 때는 부회장 등을 내세워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투자가 등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혀 원성이 자자할 때는 CEO가 전면에 나서, 자신이 잘못했으면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어떻게 피해를 보전해줄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밝혀야 한다.
지금 투자가들 사이에선 박 회장에 대한 원성이 대단하다. 박회장 말처럼 몇년 지나면 상황이 호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금의 절반이상을 손해 본 수많은 투자가들에게 박회장의 침묵, 그리고 매너리즘적 신문광고는 불신을 더욱 짙게 할 뿐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박회장은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렸다"고 지적한다. 최근 몇년간 호실적에 스스로 도취해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오만함이 오늘날 박회장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쓴소리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박회장은 스스로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찾고 시장의 위기 돌파에 기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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