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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의 '제2차 도쿄 대공습'

[소로스의 환투기 공격사(4)] '요카이 소로스'

조지 소로스는 1995년 '녹아웃 옵션'으로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들을 녹아웃시킨 뒤 이번엔 일본 중앙은행을 상대로 총공세를 펼쳤다.

1995년 4월 초순 하루에 엔화가 2,3엔씩이나 폭락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달러화가 80엔까지 곤두박질칠 정세로 도쿄 외환시장은 대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소로스는 다시 도쿄 외환시장을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4월10일 소로스의 '도쿄 대공습'

특히, 4월 10일 도쿄 외환시장을 주무대로 전개된 소로스의 총공세는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월요일인 이날 엔-달러 환율은 83.35엔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것은 전주말 뉴욕 외환시장의 폐장가 83.61엔보다 약간 오른 값이었다. 이렇게 엔화가 상승세로 출발한 것은 도쿄 시장보다 세 시간 앞서 개장한 호주 시드니 외환시장의 영향 탓이었다.

당시 도쿄 외환시장은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 때문에 독자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시세를 결정할 만한 판단력이 취약하기로 유명햇다. 평소에는 전날 뉴욕과 런던 외환시장의 시세가 곧바로 도쿄 외환시장에 반영됐다.

그러나 뉴욕과 런던 외환시장이 주말에 쉰 까닭에 이날 도쿄의 시세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 것이 바로 시드니 외환시장의 환율이었다. 그런데 일본 시간으로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여는 시드니 시장은 시간대상으로 일본은행의 개입이 어렵다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같은 맹점을 최대한 이용해 무더기로 엔화 매입 주문을 냄으로써 엔화를 강세로 출발시킨 주역이 다름아닌 소로스였다. “소로스가 시드니에 개입했다”는 사발통문은 개장 전부터 도쿄 외환시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딜러들의 직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래가 시작된 지 20분쯤 지나서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소로스를 필두로 한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도쿄 외환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던 마르크화를 팔고, 대신 엔화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르크화가 지난주 분데스방크의 금리 인하로 달러당 환율이 안정된 반면, 엔화는 일본은행의 고집스런 금리 인하 반대로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을 이용해 마르크화로 엔화를 키는 절묘한 투기 공세를 펼친 것이다. 마르크화와 엔화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 마르크당 엔화 값이 오르자, 연쇄 작용으로 마르크화보다 취약한 달러화의 폭락이 시작됐다. 소로스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본은행도 백기항복

소로스가 대대적으로 엔화 매입에 나서자, 보유하고 있던 달러화 자산 감소를 우려한 일본 금융기관들과 종합상사, 그리고 대만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정부계 금융기관들도 맹목적으로 소로스 뒤를 좇아 엔화 사재기 경쟁에 동참했다.

거래 시작 90분이 지난 10시 30분께 도쿄 외환 시장에는 자그마치 30억 달러어치의 엔화 매입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고, 엔화는 83엔, 82엔, 81엔 선을 순식간에 깨며 무서운 기세로 80.15엔까지 폭등했다. 불과 90분 만에 엔화 값이 5%나 오른 것이다. 하루 동안의 엔고 상승률로서는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80엔 선이 깨지면 외환시장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가공스런 패닉의 시작이다.” 당시 일본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실제로 이 순간 도쿄 외환시장에는 ‘패닉’ 직전의 공포가 넘쳐흘렀다.

기겁을 한 일본은행은 10억 달러대의 거금을 풀어 달러화를 사들이는 동시에, “마침내 일본은행이 그토록 반대해온 정부의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시장에 흘렸다. 1992년 9월 유럽 통화위기 때 영국 은행이 그러했듯이 일본 은행도 소로스가 이끄는 환투기세력에게 백기항복을 하고 만 것이다.

일본은행에 백기가 게양된 것을 본 투기 자본들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즉각 태도를 바꾸어 대대적인 엔화 매각에 나섰고,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 결국 달러화는 개장가보다 약간 떨어진 82엔대에 거래를 마감할 수 있었다.

일본은행은 그후 4월 한 달 동안에 눈물을 머금고 시장 안정을 위해 추가로 121억 달러어치의 달러를 사들여야 했다. 이 와중에 엄청난 환손실을 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 한 차례 소로스의 일방적 승리였다.

'요카이 소로스'

일본 언론들은 1995년 소로스로부터 일련의 대공습을 당한 후 그의 이름 앞에 ‘요카이(妖怪)’ 또는 ‘검은 유태 마피아’라는 증오감 어린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1992년 유럽 통화 위기때 소로스에게 크게 당한 뒤 그를 ‘갱’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아울러 일본 출판가에는 “소로스를 필두로 한 월스트리트의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강적인 일본을 침몰시키고 세계를 점령하려 한다”는 이른바 ‘유태 마피아의 음모’를 다룬 반(反)유태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일본도 영국 등 유럽들과 마찬가지로 비싼 수업료를 치루고서야 소로스 등 헤지펀드 일파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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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6 개 있습니다.

  • 0 0
    형욱

    재미있게읽었습니다

  • 7 8
    엄정효

    질문있습니다.
    근데 소로스는 어떻게 돈을 번 겁니까?

  • 10 23
    나는뭐니

    바보들아.
    소로스가 한국을 공격하면 환율이 내려야지 ㅋㅋ 지금은 오르고 있는데. 외환보유액 없어져서 화났어? 야!! 너희들은 해외 여행으로 매달 200억 달러씩 쳐 박자나 왜 엄살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7 10
    111

    이번달에도 1250원대에서 체크.
    외환개입하지 않으면 밀고 올라가서 1300원 그냥가버리는방법
    1250원을 넘으면 겁먹으면 외환개입 100억달러이상 빼먹고
    20일부터 월말결재와 1300원대.

  • 10 7
    111

    2009년 4월 위기설 있다 -한달에 100억달러이상 빼먹기로 가고있다
    환율상승의특징....한달내내 외환개입으로 인해 눌렸다가
    7일~8일상승 힘으로만 충분해..
    1250원~1260원 자리잡고 3-4일이면 1300원대로

  • 17 7
    요시키

    그 갱들이 지금 한국을 노린다
    국빈대접을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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