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찬밥, '사회복지'
[김동석의 뉴욕통신] 레이건이후 모두가 복지 축소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의 양당정치를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4년마다 한번 씩 찾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상엔 선출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정책을 유권자가 선택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정당에서 표방한 정책이 4년 동안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 사안은 역시 일상생활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주는 경제와 사회복지 정책이다. 지난 8년간의 공화당 정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심한 경기불황을 초래하였고 국가재정을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고유가의 장기화와 금융시장의 거품붕괴가 경기불황을 초래했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위한 양당의 차이는 별로 없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시선은 사회복지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사회복지정책 만큼 양당의 정책이 뚜렷이 다른 분야는 없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 가치관에 기초한 정부 개입의 최소화와 사회복지 예산 축소를 주장해 왔다. 반면 민주당은 뉴딜정책을 추진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사회보장법과 존 F. 케네디의 '빈곤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이어받아 사회복지 확충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미국의 사회복지 정책은 1960년 케네디 정부가 설계했던 사회보험, 빈곤정책, 고용정책 프로그램 이라는 기본골격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30년대 시작해서 꾸준하게 발전해온 복지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에 들어서다. 1970년대 말부터 미국기업연구소(AEI)와 헤리티지재단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사회복지가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보수주의 논리를 꾸준히 생산했다. 민주당이 주도해서 발전시켜온 복지정책은 경기침체와 맞물린 보수주의자의 논리에 서서히 밀리게 되었다.
2004년 6월5일 93세의 나이로 숨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냉전을 종식시키고 경제를 되살렸다는 지도자로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소수계와 서민들 위주의 복지정책 면에서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레이건 시절 미국 사회는 정부의 실업자 보조 예산을 줄이고 실업문제를 노동과 절약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동안 실업자들은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더욱 더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논리다. 의료보험 역시 민간 보험회사의 개인보험 비중을 높였다.
복지정책의 3대 기조인 빈곤구제, 실업구제, 의료보험이 모두 전면적으로 축소의 단계로 진입했다. 1981년 총괄예산조정법에 의해서 부양가족아동보조(AFDC :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예산과 빈민계층에 나눠주던 무료배식 예산, 그리고 메디케이드(Medicaid, 영세민 의료보험 지원)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연방정부가 운영했던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어(Medicare)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1983년엔 사회보장수정법(Social Security Amendsments)을 통해서 퇴직연금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퇴직자 자녀에게 부여된 혜택을 폐지했다. 1987년 제정된 가족지원법(Family Support Act)은 빈민층의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세 살 이상의 자녀를 가진 AFDC 수혜자는 주정부가 실시하는 직업훈련을 반드시 받도록 했다.
레이건은 이러한 조치를 완전히 정착시켜 유럽과 아시아의 각 나라들에게 현대복지국가들이 따라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로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부시도 역시 사회복지 정책에 관한 한 레이건의 노선에 충실했다.
1992년, 12년의 공화당 집권을 끝낸 클린턴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클린턴을 지지했던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사회복지 예산의 증액을 기대했다. 그러나 재정적자 축소와 균형예산 달성을 추구했던 클린턴에게 막대한 예산의 증액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클린턴 역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와 마찬가지로 복지예산을 줄이며 보수화된 사회분위기를 정책에 반영했다
2000년 집권한 부시는 클린턴은 물론이고 과거 공화당 대통령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부시의 정책은 조세 삭감과 국방비 증액이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었다. 부시 8년 동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당연히 사회복지 예산의 대폭적인 감축으로 이어졌다. 소득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만 명과 저소득층 3천만 명의 소득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극빈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세금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4일자 뉴욕타임스의 선거관련 기사 헤드라인은 '사회복지정책, 언급하기엔 너무 뜨거운 이슈 ( Social Security Too Hot to Touch ? Not in 2008 )'이다. 오랫 동안 심화된 불평등 요소가 심각한 사회불안 요인이 되어 있지만 지금 선거판에서 그에 대한 치유책을 제시하기엔 양 후보 모두가 중산층 다수 유권자의 표심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의 대중 추종주의로 불리는 포퓰리즘의 폐단이 유권자들의 눈에도 확연하게 보이고 있다. 존 맥케인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가 백악관행을 놓고 대결중인 공화당과 민주당의 향후 대선 캠페인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될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두 후보의 접근 방법과 미국 유권자들의 반응이 이번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 사안은 역시 일상생활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주는 경제와 사회복지 정책이다. 지난 8년간의 공화당 정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심한 경기불황을 초래하였고 국가재정을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고유가의 장기화와 금융시장의 거품붕괴가 경기불황을 초래했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위한 양당의 차이는 별로 없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시선은 사회복지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사회복지정책 만큼 양당의 정책이 뚜렷이 다른 분야는 없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 가치관에 기초한 정부 개입의 최소화와 사회복지 예산 축소를 주장해 왔다. 반면 민주당은 뉴딜정책을 추진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사회보장법과 존 F. 케네디의 '빈곤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이어받아 사회복지 확충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미국의 사회복지 정책은 1960년 케네디 정부가 설계했던 사회보험, 빈곤정책, 고용정책 프로그램 이라는 기본골격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30년대 시작해서 꾸준하게 발전해온 복지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에 들어서다. 1970년대 말부터 미국기업연구소(AEI)와 헤리티지재단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사회복지가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보수주의 논리를 꾸준히 생산했다. 민주당이 주도해서 발전시켜온 복지정책은 경기침체와 맞물린 보수주의자의 논리에 서서히 밀리게 되었다.
2004년 6월5일 93세의 나이로 숨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냉전을 종식시키고 경제를 되살렸다는 지도자로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소수계와 서민들 위주의 복지정책 면에서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레이건 시절 미국 사회는 정부의 실업자 보조 예산을 줄이고 실업문제를 노동과 절약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동안 실업자들은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더욱 더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논리다. 의료보험 역시 민간 보험회사의 개인보험 비중을 높였다.
복지정책의 3대 기조인 빈곤구제, 실업구제, 의료보험이 모두 전면적으로 축소의 단계로 진입했다. 1981년 총괄예산조정법에 의해서 부양가족아동보조(AFDC :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예산과 빈민계층에 나눠주던 무료배식 예산, 그리고 메디케이드(Medicaid, 영세민 의료보험 지원)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연방정부가 운영했던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어(Medicare)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1983년엔 사회보장수정법(Social Security Amendsments)을 통해서 퇴직연금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퇴직자 자녀에게 부여된 혜택을 폐지했다. 1987년 제정된 가족지원법(Family Support Act)은 빈민층의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세 살 이상의 자녀를 가진 AFDC 수혜자는 주정부가 실시하는 직업훈련을 반드시 받도록 했다.
레이건은 이러한 조치를 완전히 정착시켜 유럽과 아시아의 각 나라들에게 현대복지국가들이 따라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로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부시도 역시 사회복지 정책에 관한 한 레이건의 노선에 충실했다.
1992년, 12년의 공화당 집권을 끝낸 클린턴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클린턴을 지지했던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사회복지 예산의 증액을 기대했다. 그러나 재정적자 축소와 균형예산 달성을 추구했던 클린턴에게 막대한 예산의 증액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클린턴 역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와 마찬가지로 복지예산을 줄이며 보수화된 사회분위기를 정책에 반영했다
2000년 집권한 부시는 클린턴은 물론이고 과거 공화당 대통령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부시의 정책은 조세 삭감과 국방비 증액이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었다. 부시 8년 동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당연히 사회복지 예산의 대폭적인 감축으로 이어졌다. 소득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만 명과 저소득층 3천만 명의 소득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극빈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세금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4일자 뉴욕타임스의 선거관련 기사 헤드라인은 '사회복지정책, 언급하기엔 너무 뜨거운 이슈 ( Social Security Too Hot to Touch ? Not in 2008 )'이다. 오랫 동안 심화된 불평등 요소가 심각한 사회불안 요인이 되어 있지만 지금 선거판에서 그에 대한 치유책을 제시하기엔 양 후보 모두가 중산층 다수 유권자의 표심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의 대중 추종주의로 불리는 포퓰리즘의 폐단이 유권자들의 눈에도 확연하게 보이고 있다. 존 맥케인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가 백악관행을 놓고 대결중인 공화당과 민주당의 향후 대선 캠페인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될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두 후보의 접근 방법과 미국 유권자들의 반응이 이번 대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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