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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들 "북한 교화소 성폭행 극심"

"북한-중국 국경서 북한 탈북여성 인신매매 만연"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는 북한여성을 사고파는 인신매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여성 탈북자들은 북한의 교화소나 직결소에 수감되면 누구나 예외 없이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는 여성 탈북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북한-중국 국경서 북한 탈북여성 인신매매 극심"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올해 33살 박명화(가명)씨의 경우, 심각한 식량난으로 끼니조차 잇기 어렵던 4년전 중국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조선족 남성의 말을 듣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돈 만원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고 이 방송과 전화통화를 통해 밝혔다.

박씨는 "우리 북쪽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에 가면 고생 덜 하고 산다'고 해서 두만강에서 넘겨주면서 그 쪽 사람들에게 돈을 얼마씩 받는 것 같았다"며 "우리는 처음에 몰랐어요 돈주고 데려가는지를..그저 자기들 남동생이니까 같이 가라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같이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중국돈으로) 1만원씩 줬대요. 여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말 모르잖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라고 따라 가는데 결국 그 사람들이 소개해 준 사람들한테 돈 주고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당시 박씨 외에 10여 명의 북한 여성들도 돈을 벌 목적으로 함께 따라나섰다가 똑같은 신세가 됐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중국인이나 조선족에게 팔려 농촌지방으로 끌려가거나 성매매 업체로 넘겨졌다.

박씨는 "저번에 한 번 심양에 한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는 처음에 팔려올 때 자기가 돈 2만원에 사왔으니까 (성매매로) 2만원을 다 벌고 나가라 그렇게 한 여자가 있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농촌의 조선족 남자에게 팔려와 3년간 살면서 갖은 노동과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으로부터 도망을 치다가 공안에게 붙잡혀 북송되기도 했고 매를 너무 많이 맞아 현재는 걷기도 불편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내 주변에 북한에서 팔려 온 여성이 너무 많다"며 "이들은 조선족에게 팔려가 국적도 없이 갖은 고생을 하며 살고 또 언제 누구에게 얼마에 팔려갈지 모르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족에게 팔려간 아이들이 더 고생을 하죠. 말이 안통하고 하니까.. 그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이 맘에 안들고 하면 다른 곳에 팔고 돈 받고.."라고 밝혔다.

방송은 최근 상품처럼 팔리고 있는 북한 여성의 몸값은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미화로 수백 달러에 불과하다며, 중국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자가 귀하다 보니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북한 여성을 사고팔기도 하고, 성적 노리개, 심지어는 남한에 정착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 여성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북한여성에 대한 인신매매와 인권유린이 계속되면서 미국 정부도 중국 내 인신매매 근절을 압박하고 나섰으며, 국제사회도 지난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반 인신매매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탈북여성 인신매매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마크 라곤 미 국무부 반(反)인신매매 담당 대사는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중국의 인권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며 "그 중 하나가 중국에서 북한 여성 등을 성적 노예로 사고파는 인신매매 실태다. 국제 사회 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에도 인신매매 근절의 노력을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교화소-직결소에서 성폭행 극심"

북한의 교화소나 직결소에 수감되면 누구나 예외 없이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는 여성 탈북자 증언도 나왔다.

이선화(가명)라는 이름의 한 탈북 여성은 방송과 인터뷰에서 "굶어 죽는 자식들 때문에 중국으로 도강했다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송 당하자 함경북도 한 구류소에서 온갖 고문과 함께 성폭행을 당했다"며 "자기네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여성죄수들의 얼굴을 싸매고 데려 나간다. 여성죄수들은 다 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서 국가안전 보위부 간부가 왔던 날도 한 여성죄수가 끌려 나가더니 밤늦게 돌아왔다. 당사자는 아무 말도 못하지만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며 "나는 당시 4호 감방에 있었다. 감방도 수 십 번씩 바꾸니까 국가 보위부 간부가 왔다고 그때도 2호감방의 죄수가 나갔다 밤늦게 들어왔다. 죄수들이 다 알아요. 말을 못해 그렇지 다 수군수군 댄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구류소 안의 상급자나 하급자 할 것 없이 모든 남성들이 이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서로 비밀을 지켜주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날 수가 없다"며 "직결소 체계가 소장아래, 비서 선생이 하나있다. 그 다음에 예심원이 있다. 예심원은 소장 비서 그다음 예심원 이렇게 3사람이 예심을 하고 그다음에 군관이고, 구류장 조장이 군관, 이렇게 5명이 군관이고 나머지는 줄 대기 하전사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간수들인그 사람들은 총각인데 군관들은 다 가족 살림하는 사람들이고 간수는 다 총각이다. 거기서 밥 먹고 자고 한다"며 "서로 자기 상급들의 비밀을 지켜주며 서로 다 한가지니까 말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직결소 구류소안에 있던 한 처녀 수감자는 중국에서 교회에 나가다가 적발 되어 직통으로 강제 북송된 여성으로 임신하게 되자 강제로 낙태수술까지 시켰다"며 "병원에 데려가서 유산시켰다. 말하기를 중국 아 새끼 임신을 해서 조선까지 나왔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 나이가 어렸다"고 말했다.

그는 구류소에서 나온 후 다시 북한을 탈출해 숨어 살고 있다며, 여성으로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증언하는 것은 외부에서는 아직도 북한에서 이렇게 수없이 일어나는 인권폭행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그는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죄수들이 이렇게 당하고 있는 것을 세상이 다 알아야 한다. 국가안전 보위라는 명목 밑에 법이라는 허울을 쓰고 법관들이 하는 이 짓을 세상들이 알아야 한다. 지금도 죄수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압니까? 모르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 구류에서는 북송된 탈북자들은 역적이라며 머리통을 개조한다는 말을 자주 되 뇌이고 있다"며 "국가안전 이라는 명복으로 군복을 입은 채 자행되고 있는 이같은 성 폭력은 국제 사회가 북한에 대해 보다 강한 응징책을 마련해 근절해야한다"고 분노했다.
김홍국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6 19
    크크크

    자주파들이 그들을 밀어준다
    여차하면 미국으로 튈 준비 다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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