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처음으로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는 이날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뉴질랜드 오클랜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의 등반가이자 탐험가 힐러리는 1953년 셀파 텐징과 함께 엘리자베스 2세 즉위일에 맞춰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봉우리에 인류 사상 첫발을 디뎠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양봉을 하던 33세의 청년 시절인 1953년 5월29일 네팔의 셰르파족(族)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영하 30도의 극한추위 속에서 후일 '힐러리 스텝'이라 이름 붙여진 12m 높이의 수직빙벽을 돌파,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세계사에 족적을 남겼다.
그는 등반 후 "어떻게 그 높은 산을 최초로 정복했느냐"는 질문에, "한 발 한 발, 걸어서 올라갔다"고 답해, 끈기 있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한 경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영연방 소속의 한 젊은이가 해발 8848m의 세계 최고봉 정복에 성공했다는 뉴스는 나흘 뒤인 6월2일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날 공표돼 더 큰 환희와 감격을 몰고 왔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힐러리에게 '기사'(knight) 작위를 수여해 이후 힐러리경으로 불렸다.
힐러리경은 1955~58년 비비언 푸크스가 이끄는 영연방 남극횡단 탐험대에 참가한 뉴질랜드 팀을 지휘했으며, 1958년 1월 4일 개조 트랙터를 몰고 다시 남극원정에 나서 남극점을 밟는 데 성공했다.
그는 당시의 탐험담을 1958년에 푸크스와 공동으로 집필한 〈남극횡단기>(The Crossing of Antarctica), 1961년작〈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No Latitude for Error)에 각각 수록했다.
1967년의 남극 원정에서는 고도 3282m의 허셸 산을 최초로 정복했고, 1977년에는 탐험대를 이끌고 최초로 제트 보트를 이용해서 갠지스 강을 거슬러 올라갔으며, 막바지에는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여 산맥에 있는 갠지스 강의 원류까지 도달했다.
그는 특히 작년 1월에는 '스콧 기지'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87세의 나이로 손자 데이비드 헤이먼과 함께 남극을 다시 방문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힐러리경은 뉴질랜드 최초로 생전에 지폐에 얼굴이 실리는 영광을 누렸지만 지인들은 그가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1975년 자서전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thing Venture, Nothing Win) 출판 직후 인터뷰에서 힐러리경은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능하다"면서 스스로를 범인(凡人)으로 묘사했다.
그는 함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셰르파 노르게이와 자신 중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한 팀으로 함께 정상에 올랐다"며 노르게이가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먼저 정상을 밟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힐러리 경은 1960년대 '히말라얀 트러스트'란 단체를 설립해 셰르파족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셰르파족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쳤으며 네팔 정부는 2003년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을 기념해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그는 환경보호에도 힘써 1987년에는 유엔이 선정한 '글로벌 500' 환경보호운동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힐러리 경은 자신이 '평범한 능력을 가진 평범한 뉴질랜드인'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결의와 겸손, 관용의 삶을 산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부총리도 "힐러리 경의 이름은 모험, 꿈과 동의어"라고 말했다.
애도의 물결은 뉴질랜드를 넘어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는 등 수십년간 네팔을 위해 공헌한 힐러리경을 기리는 네팔 시민들의 추도의 물결이 이어지는 등 세계인들이 그의 명복을 빌고 있다. 네팔 국회의원인 모한 마하두 마스넷 의원은 "힐러리경은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것 뿐만 아니라 네팔을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라며 "네팔은 물론 전세계의 손실"이라고 애통해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결의와 겸손, 관용의 삶을 산 영웅으로 평가받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 등정의 기록을 세계사에 남긴 채 영면했다.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