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 별세
지난해 전립선암 진단 받고 투병. '톨레랑스' 역설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1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7세.
장발장은행 등에 따르면 홍 은행장은 이날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9년 한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인민위원회 사건'(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망명한 뒤, 파리에서 택시를 운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 자전적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펴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해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위원을 맡았고, 2011년에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지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흑백논리의 폐단을 지적하며 톨레랑스(관용)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2015년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형편이 안 돼 노역할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최고 300만원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을 설립해 은행장으로 활동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선씨와 자녀 수현·용빈씨가 있다.
장발장은행 등에 따르면 홍 은행장은 이날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9년 한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에 체류 중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인민위원회 사건'(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망명한 뒤, 파리에서 택시를 운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 자전적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펴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귀국해 한겨레신문 편집국 기획위원을 맡았고, 2011년에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지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흑백논리의 폐단을 지적하며 톨레랑스(관용)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2015년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형편이 안 돼 노역할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최고 300만원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을 설립해 은행장으로 활동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선씨와 자녀 수현·용빈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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