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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도어를 법으로 막겠다니...

[옛날 정치 지금 정치] <3> 마타도어의 정치사

마타도어는 60~70년대 유권자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단어를 일깨운 것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 금지법안'이다.

요즘 정당들은 법을 아주 가볍게 본다.

법이든 정책이든 국민은 국회토론을 보며 내용을 알게되고 찬반 여론이 형성되고 법 시행에 대비한다. 그런데 요즘 국회는 법안에 대한 토론을 안 한다. 제안조차 충동적이다. 예를 들자.

지방자치단체 선거 공직자 주민소환은 가볍게 다룰 법이 아니다. 공청회는 반드시 거쳐야 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즉흥적으로 내놓고 날치기로 처리했다. 이 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선거 공직자는 유권자 17%가 합동하면 해임할 수도 있다.

정치공작 금지법안도 마타도어 규제가 목적이다. "대선 때 마타도어에 무너진 이회창 후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한나라당의 예방용 법안이다. 마타도어와 공작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법에 공작금지라는 팻말을 달았으니 연구 없이 충동적으로 내놓았다는 증거다.

마타도어라는 흑색선전이 맹위를 떨친 건 1967년 국회의원선거다. 3선 개헌이 쟁점이던 선거에서 박 대통령의 공화당은 돈과 선심공약을 무기로 했다. 야당의 대응무기는 마타도어였다. 사례를 보자.

◆지프차로 보리밭을 짓이긴다. 목격자에게 "B후보 사무실 차다. 고장이 나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변명하다 틈을 봐 도망가 버린다.
◆B후보 진영 운동원을 가장해 유권자한테 돈 봉투를 전한다. 한참 지나 그 집을 방문해 "옆집에 전하는 건데 실수했다. 미안하다"며 돈을 회수해 간다.
◆마을에 두 세 집만 골라 돈 봉투를 돌린다. 그리고 이틀쯤 지나 철이네 하고 순이네 집에 B후보가 돈 봉투를 돌렸다고 소문을 낸다. 확인해보니 헛소문이 아니다. "괘씸한 것 같으니, 날 무시해"라고 흥분하게 만드는 수법이다.
◆"내일 B당 총재가 지원유세를 오는데 나오는 사람에겐 차비와 점심값을 후하게 드린다"고 홍보한다. 물론 그런 유세계획은 없다.
◆음식점에 B후보 이름으로 예약을 한다. 실은 가짜 예약, 크게 손해를 본 음식점 주인은 다음날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B후보 험담을 늘어놓는다.
◆A후보 운동원이 두 패로 나뉘어 같은 술집에 들어간다. B후보 운동원 행세를 하는 쪽이 A후보 운동원에게 시비를 걸어 두들겨 패고 도망간다. 경찰도 오고 신문기자도 오고 결국 B후보 운동원은 깡패로 몰린다.

마타도어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후보의 전략과 일정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적중할 마타도어가 가능하다. 이를 위한 작전이 감자 캐기다. 감자 캐기란 상대진영에 첩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지원에 나선 선거라서 공무원 부정선거계획을 폭로하는 'V(베트콩)작전'도 기승을 부렸다.

이 선거에서 격전지가 목포였다.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목포는 박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당선시키라고 지령한 정책지구"라며 "관권선거, 부정선거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박정희 정권의 물량공세에 맞서 프로적 선거작전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도 목포를 두 차례 방문했다. 투표 10여 일을 남긴 5월 25일, 2차 방문 때는 목포에서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호남공업화계획을 협의하고 야당의 호남푸대접 주장을 반박 해명하는 지원연설도 했다. 지원연설을 안 하기로 했던 박 대통령의 유일한 예외였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역효과를 불렀다. 김대중은 공화당 김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과 싸우고 있다는 선전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해준 꼴이었다. 이래서 그 동안의 마타도어까지도 도리어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그뿐인가. 목포는 전국의 관심을 끌게 돼 김대중 후보는 정치주가를 올리는 이득도 봤다.

선거작전에서 김병삼 후보는 수세, 김대중 후보는 공세였다. 육군소장 출신이라는 김병삼의 경력을 김구 살해의 공범자로 연결시키기까지 했는데도 효과적인 대응을 못했다. 김병삼 캠프는 마타도어에 속수무책, 변명하고 해명하다 선거를 끝냈다.

김대중 캠프의 선거참모는 선거공작의 베테랑이라고 했다. 선거작전에서 김병삼 캠프와 김대중 캠프는 아마와 프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67년의 6&#8228;8선거에서 여당은 술로 유권자를 마비시켰고 야당은 마타도어로 유권자를 어리벙벙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만취작전의 승리, 공화당은 개헌선인 원내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다. 야당은 전면재선거를 요구하고 국회 등원을 거부했다.

그 해 11월 등원협상 때의 일이다. 지루한 협상에선 발표란 별 의미가 없다. 진짜 얘기는 따로 취재해야한다. 그 날도 다른 기자의 눈을 피해 호텔에서 좀 떨어진 길에서 야당측 대표인 윤제술 의원 차에 동승했다. 뉴스거리는 없다고 했다. "김진만 대표가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회담은 암초에 부딪친 거죠." 그랬더니 윤 의원이 웃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분이 심각한 얼굴이던 날은 회담에 진전이 있었거든요."

어느 새 차가 누상동 윤 의원 집에 당도했다.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러더니 오프 드 레코드로 얘기했다.

사실은 그저께 회의에서 부분재선거로 의견을 좁혔다. 어제 저녁 여당대표가 청와대에 들어가 설명했다. 오늘은 그 얘기만 들었다.

대통령은 국회가 부정선거를 조사해 사퇴 또는 제명해 재선거를 한다는 건 법에 어긋난다며 일축했다. 타락선거 맞다. 야당은 돈 안 썼나. 마타도어는 더 나쁘다며 협상을 불만스러워 했다.

백남억 의원이 야당 쪽에서 대통령의 정책지구까지 들고 나와 우리가 몰렸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은 전략지구는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일어서더니 옷장 저고리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왔다. 수첩을 보면서 7개 전략지구 일곱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서는 안 될 이유를 설명했다.

김형일 한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이권 흥정이었다. 대통령은 김대중에 대해선 "고지서가 발부된 세금까지 깎아달라고 청탁했다. 흥정하고도 약속대로 안하고 한동안 딴전부리기 일쑤다. 겉으로 저만 깨끗하고 애국자고 민주주의자다. 국민들은 그런 걸 모른다"고 말했다. 전략지구 7명의 얘기가 길어져 어느새 새벽 2시가 돼 있었다. 초법적인 협상은 안 된다. 법 테두리 안에서 합의하면 그건 받겠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결국 협상에서 야당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체면치레용 합의에서 협상을 끝냈다.

박 대통령은 이렇듯 유권자 수준에 실망했고 선거를 불신했다. 이런 선거는 안 된다던 대통령은 유신헌법에서 선거제도를 바꿨다. 1구2인 당선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마타도어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 마타도어가 되살아난 것이 2002년 대통령 선거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한인옥(이회창 후보의 부인)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면 선거는 끝난다고 했다. 이회창 후보 이미지는 대쪽이다. 그의 부인이 부패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면 대쪽 이미지는 산산이 부셔지고 표는 달아난다. 그 얘기다. 실지로 민주당은 이회창의 호화빌라와 부패의혹, 아들의 병역, 그리고 한인옥 스캔들까지 만들어 신문 방송에 불어대는 마타도어를 했고 이회창 후보는 손상을 입었다.

마타도어는 투우사다. 투우사는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것이 아니다. 어수룩한 소를 속임수로 무력화시키고 싸울 의지를 잃게 만든 뒤 죽인다. 마타도어가 속이는 것은 상대 후보가 아니다. 유권자를 속인다. 소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유권자가 마타도어의 먹이다.

공작이란 일을 꾸미는 것이다. 마타도어는 공략해야 할 후보와 그 후보의 전략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만들어진다. 후보에 따라선 마타도어의 틈이 없는 후보도 있고 마타도어 재료가 풍성한 후보도 있다. 아무튼 어떤 성질의 마타도어가 만들어질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마타도어는 머리싸움이다.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 머리로 막고 이겨야 한다. 60년대 정치인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타도어가 범람하는데도 규제법 제정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현명한 자는 남의 경험에서도 배운다. 어리석은 자는 제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한다. 한나라당이 마타도어를 법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제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의 되풀이다.
이영석 교수신문 고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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