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 아름다운 시인 도종환의 '아름다운 실천'
신작시집 인세 전액 베트남 초등학교 건립에 기부
도종환(52) 시인이 신작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을 펴냈다.
심신 허약으로 쉽게 피로가 찾아오고 질병 치료가 더딘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병으로 2003년 3월 요양에 들어간 이후 3년만이다. 지난 2002년 펴낸 ‘슬픔의 뿌리’ 이후 4년 만이다.
도종환 시인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동문회관에서 ‘아름다운 가게’(이사장 박원순)와 함께 ‘시와 노래로 베트남 평화학교 짓기’라는 이름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출판기념회 내내 상기된 표정을 짓던 도종환 시인은 쑥쓰러운 표정으로 시집 인세 전액을 베트남의 한 마을에 초등학교를 짓는 데 보태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이 펴낸 이번 시집의 인세는 도종환 시인이 소속된 충북 민예총(회장 이철수)에서 추진중인 베트남 푸옌성 마을 호아빈에 초등학교 건립 지원금에 보태지게 된다.
이번 시집은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아름다운 가게’ 홈페이지에 매주 한편꼴로 기증했던 60여편의 시를 묶은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한 시 60편 묶어
박원순 아름다운 가게 이사장은 “맨 처음 아름다운 가게의 홈페이지 조회수가 오르지 않아 도종환 시인에게 시를 부탁했는데 흔쾌히 시를 기증해줬다”며 “도종환 시인이 출판기념회를 안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는데, 베트남에 학교 짓는 지원금을 모은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흔쾌히 응해줬다”며 감동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병으로 인해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요양해오던 도종환 시인은 2004년 2월 결국 사직서를 내고 교직을 떠난 뒤 그동안 충북 보은군 법주리 산방에서 홀로 지내오며 시를 써왔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책 읽고, 글 쓰고, 텃밭 가꾸는 일로 소일했다”며 “이 과정에서 시는 자연이 주는 소리를 베껴적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할 정도로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세상 살이 시대의 의무를 고민하던 예전 ‘화엄의 삶’에서 지금은 풍랑이 그치고 삼라만상이 온화해지는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해인의 삶’을 살면서 이를 시 속에 담아냈다.
"풍랑 그치고 삼라만상 온화해지는 해인의 삶을 살았다"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해인으로 가는 길’ 중)
이날 행사는 동료시인과 지인, 아름다운 가게가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준비해오고 장소도 연세대측으로부터 무료로 제공받는 등 그야말로 돈 한푼 들이지 않은 도종환 시인다운 형식의 출판기념회로 진행됐다.
도종환 시인은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 여는 출판기념회에 돈을 들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는데, 주변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장소를 기부 받고 여러 사람들이 시 낭송, 공연, 떡과 과일 등 음식과 술 등을 십시일반 보태줬다”며 “또 이 소식을 들은 분들이 김밥과 잡채에다 수십병의 오가피주까지 가져와서 오늘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은 날인 것 같다”며 감격해했다.
장소와 음식 기부받고 돈 들이지 않는 소박한 출판기념회
그는 “아프지 않았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일상의 반복이 됐을텐데 아픈 바람에 마음껏 읽고 쓰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학교에 사직서를 낸 뒤 두고온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청소년사업을 하려 했는데, 마침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에 먼저 함께 하게 됐다”며 행복해했다.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봄꽃만 축복이 아니다/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축복’ 중)
시집 해설문을 쓴 이문재 시인은 “요즘 하지 않는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시집 해설을 해달라는 연락이 와, '요즘 촌스럽게 출판기념회를 하냐'라고 생각하며 이 자리에 왔다”며 “그런데 병마에서 돌아온 그가 베트남에 학교를 짓기 위해 갖는 기념회라는 말을 듣고 숙연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동안 몸을 치유하고 돌아온 그는 시집에 나오는 용어들처럼 후회, 성찰, 발견을 통해 존재의 재탄생을 이룬 것 같고 그래서 해설문 제목을 ‘그의 귀환, 우리의 출발’로 정했다”며 “다시 돌아온 세상에서 그의 시는 새로운 문명과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동 시대인과 시인들에게 새출발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거덜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은 역시 시"
도종환 시인은 시집 뒤에 붙인 산문에서 “지금 거덜난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시입니다. 그래서 그걸 드리는 것입니다”라며 “시로 인해 생긴 이윤이 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은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시절,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부인과의 사별을 주제로 발표한 <접시꽃 당신>은 1백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교직생활과 시 창작을 병행하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이후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으며 교육운동을 하다가 해직 10년 만인 1998년 진천덕산중학교로 복직했다. 민예총 충북지부장을 맡는 등 교육·문화운동에 힘을 쏟아 왔다.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등이 있다.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시집에 실린 시 '산경' 전문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이문재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시 속의 나는 산 '옆에' 있다. 산의 위나 아래,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이다. 상하 혹은 전후는 지배관계다. 위는 아래를 누르려 하고, 앞은 뒤를 무시하려 든다. 하지만 옆은 다르다. 옆은 바로 동행하는 사람의 자리다. 벗은, 사랑하는 이는 옆에 있다. 위로, 앞으로 나서기보다, 말없이 그의 옆으로 가자. 더불어 함께 가자”고 적었다.
심신 허약으로 쉽게 피로가 찾아오고 질병 치료가 더딘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병으로 2003년 3월 요양에 들어간 이후 3년만이다. 지난 2002년 펴낸 ‘슬픔의 뿌리’ 이후 4년 만이다.
도종환 시인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동문회관에서 ‘아름다운 가게’(이사장 박원순)와 함께 ‘시와 노래로 베트남 평화학교 짓기’라는 이름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출판기념회 내내 상기된 표정을 짓던 도종환 시인은 쑥쓰러운 표정으로 시집 인세 전액을 베트남의 한 마을에 초등학교를 짓는 데 보태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이 펴낸 이번 시집의 인세는 도종환 시인이 소속된 충북 민예총(회장 이철수)에서 추진중인 베트남 푸옌성 마을 호아빈에 초등학교 건립 지원금에 보태지게 된다.
이번 시집은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아름다운 가게’ 홈페이지에 매주 한편꼴로 기증했던 60여편의 시를 묶은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한 시 60편 묶어
박원순 아름다운 가게 이사장은 “맨 처음 아름다운 가게의 홈페이지 조회수가 오르지 않아 도종환 시인에게 시를 부탁했는데 흔쾌히 시를 기증해줬다”며 “도종환 시인이 출판기념회를 안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는데, 베트남에 학교 짓는 지원금을 모은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흔쾌히 응해줬다”며 감동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병으로 인해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요양해오던 도종환 시인은 2004년 2월 결국 사직서를 내고 교직을 떠난 뒤 그동안 충북 보은군 법주리 산방에서 홀로 지내오며 시를 써왔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책 읽고, 글 쓰고, 텃밭 가꾸는 일로 소일했다”며 “이 과정에서 시는 자연이 주는 소리를 베껴적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할 정도로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세상 살이 시대의 의무를 고민하던 예전 ‘화엄의 삶’에서 지금은 풍랑이 그치고 삼라만상이 온화해지는 마음의 고요한 상태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해인의 삶’을 살면서 이를 시 속에 담아냈다.
"풍랑 그치고 삼라만상 온화해지는 해인의 삶을 살았다"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해인으로 가는 길’ 중)
이날 행사는 동료시인과 지인, 아름다운 가게가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준비해오고 장소도 연세대측으로부터 무료로 제공받는 등 그야말로 돈 한푼 들이지 않은 도종환 시인다운 형식의 출판기념회로 진행됐다.
도종환 시인은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 여는 출판기념회에 돈을 들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는데, 주변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장소를 기부 받고 여러 사람들이 시 낭송, 공연, 떡과 과일 등 음식과 술 등을 십시일반 보태줬다”며 “또 이 소식을 들은 분들이 김밥과 잡채에다 수십병의 오가피주까지 가져와서 오늘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은 날인 것 같다”며 감격해했다.
장소와 음식 기부받고 돈 들이지 않는 소박한 출판기념회
그는 “아프지 않았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일상의 반복이 됐을텐데 아픈 바람에 마음껏 읽고 쓰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학교에 사직서를 낸 뒤 두고온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청소년사업을 하려 했는데, 마침 베트남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에 먼저 함께 하게 됐다”며 행복해했다.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봄꽃만 축복이 아니다/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축복’ 중)
시집 해설문을 쓴 이문재 시인은 “요즘 하지 않는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시집 해설을 해달라는 연락이 와, '요즘 촌스럽게 출판기념회를 하냐'라고 생각하며 이 자리에 왔다”며 “그런데 병마에서 돌아온 그가 베트남에 학교를 짓기 위해 갖는 기념회라는 말을 듣고 숙연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동안 몸을 치유하고 돌아온 그는 시집에 나오는 용어들처럼 후회, 성찰, 발견을 통해 존재의 재탄생을 이룬 것 같고 그래서 해설문 제목을 ‘그의 귀환, 우리의 출발’로 정했다”며 “다시 돌아온 세상에서 그의 시는 새로운 문명과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동 시대인과 시인들에게 새출발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거덜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은 역시 시"
도종환 시인은 시집 뒤에 붙인 산문에서 “지금 거덜난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시입니다. 그래서 그걸 드리는 것입니다”라며 “시로 인해 생긴 이윤이 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종환 시인은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시절,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부인과의 사별을 주제로 발표한 <접시꽃 당신>은 1백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교직생활과 시 창작을 병행하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이후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으며 교육운동을 하다가 해직 10년 만인 1998년 진천덕산중학교로 복직했다. 민예총 충북지부장을 맡는 등 교육·문화운동에 힘을 쏟아 왔다.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등이 있다.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시집에 실린 시 '산경' 전문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이문재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시 속의 나는 산 '옆에' 있다. 산의 위나 아래,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이다. 상하 혹은 전후는 지배관계다. 위는 아래를 누르려 하고, 앞은 뒤를 무시하려 든다. 하지만 옆은 다르다. 옆은 바로 동행하는 사람의 자리다. 벗은, 사랑하는 이는 옆에 있다. 위로, 앞으로 나서기보다, 말없이 그의 옆으로 가자. 더불어 함께 가자”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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