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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차라리 30억 주는 게 낫다"

<뷰스 칼럼> 한국 정치권력의 자체 치유불능 '정치 암'

몇해 전 일이다. 한 대형시중은행장이 개탄했다. 외부의 '낙하산 인사' 압력 때문이었다.

"차라리 정권에서 한 특정인사를 찍어 30억 주라고 하면 그냥 주겠다. 1년에 10억씩 3년에 30억 줄테니 회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게 백배 낫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외부인사들의 공통점은 연봉에 만족하지 않고, 분수를 모르고 밤 내라 대추 내라는 식으로 회사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는 거다. 실무에는 깡통이면서 말이다.

그뿐인가. 더 심한 경우엔 외부세력의 민원 창구 노릇을 하기까지 한다.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라, 어느 기업에 일을 맡기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휘말려들면 해당 기업은 30억 주는 정도가 아니라, 3백억, 3천억의 손실을 보기 일쑤다. 잘못하면 기업이 망하기까지 한다. IMF때 망한 기업이나 금융기관 중 상당수가 이런 외압의 희생물이었다."

시중은행장의 푸념보다 더 몇해 전,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을 때 일이다. 김대중 당선은 'DJP 연합'의 산물이다. 정치권력은 DJ, 경제권력은 JP가 쥔다는 게 DJP 연합의 골간이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JP가 DJ를 찾아왔다. JP는 말없이 봉투를 꺼내 DJ에게 전했다. DJ는 봉투 내용물을 슬쩍 훑어본 뒤 아무 말 없이 이를 배석한 측근에게 전하며 이대로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봉투 안에는 1백여명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어느 기관 감사, 어느 공기업 사장, 이런 식이었다. DJ정권 출범 직후 봉투 안 내용대로 대대적 낙하산 인사가 단행됐다.

2년 뒤 DJP 연합이 깨지자 반대현상이 목격됐다. JP 낙하산을 탄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수뢰혐의로 쇠고랑을 차기까지 했다. 이들의 '빈 자리'는 DJ 인사들이 대신 메웠다.

낙하산 인사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치유불능한 권력형 질환인가. ⓒ연합뉴스


참여정권은 출범하면서 '투명한 인사'를 약속했고 이를 위해 '공모제'를 도입했다. 낙하산 인사의 폐단에 대한 국민 불만이 폭발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뒤 '코드 인사'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재연됐다. '공모제'는 위선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이때 참여정권은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코드가 같은 사람을 쓰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홍세화 위원의 표현을 빌면 "공격적 뻔뻔스러움" 그 자체다.

정권말 공기업-공공기관 감사 21명이 '이과수 폭포' 집단외유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21명의 한가지 공통점은 정치권 출신 낙하산들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만들기' 공신들이거나, 집권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 청와대 출신, 시민단체 친노인사 또는 열린우리당 선거출마자들이다.

파문이 일자 이들은 첫 기착지인 미국 LA에서 급거 귀국키로 했다. 비즈니스석 비행기 삯만 날린 셈이다. 이 부담은 모두 공기업-공공기관, 본질적으론 국민 몫이 됐다. 이들 공기업이 부실해졌을 때마다 모든 부담은 국민이 떠맡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푸념할지도 모른다. "외국 한번 갔다 오는 걸 갖고 뭐 그리 난리냐. 이를 문제 삼는 너희 기자들은 그런 적이 없냐"고. 한술 더 떠 "임기말 '노무현 죽이기'가 아니냐"고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들 공기업 감독업무를 맡고 있는 기획예산처의 요즘 반응을 보면 충분히 상상가능한 반응이다.

요즘 친노-반노 전쟁을 보면 친노인사들이 정동영-김근태-천정배 등 전직 장관출신들을 공격할 때 쓰는 주된 무기가 "누가 장관을 시켜줬는데..."이다. 일반인들 입장에서 보면 한번 장관이 되면 평생 먹거리가 해결된다. 두툭한 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기업 감사 등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재임기간중 해마다 수억원씩의 연봉을 받고 대형 집무실이 제공되고 운전기사가 따라붙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퇴직때는 일년에 몇달치씩을 계산해 또 한 뭉터기 돈 다발을 안겨준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 출신들이 눈이 벌개져 이런 자리를 탐내는 것이다. 특히 정권 후반부에 갈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 권력이 끝나기 전에 한 몫 챙겨야 한다는 초조감의 산물이다.

참여정권은 이미 몇달 남지 않았다. 더이상 참여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운운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일 게다. 그보다는 몇달 뒤 나라를 책임맡을 대선주자들에게 묻는 게 훨씬 효율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당신들도 집권하면 또 그럴 거냐. 신세진 사람들을 줄줄이 낙하산 부대로 만들 거냐."
박태견 대표/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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